‘복음화와 근대화’는 19C말 시작된 한국 선교의 두 가지 중심축이다. 서울 정동에서 시작된 장로회와 감리회 선교부도 병원. 학교. 교회라는 3각 체제를 통해 통전적 선교를 추진했다. 병원과 학교 사역은 우리사회의 근대화(문명화,민주화)에 기여했고 복음화는 교회 설립을 통해 가시화됐다. 더불어 3가지 사역은 선교부가 주도하는 선교사업이었기에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상호 지원하는 방식으로 공통의 목적을 추구했다. 이처럼 한국 기독교 선교의 토대는 복음화(복음전도와 신앙정체성 형성)를 위한 ‘모이는 교회’와 근대화(사회의 빛과 소금)를 위한 ‘흩어지는 교회’라는 이중 구조로 형성됐다.
한국 기독교 첫 신문으로 1897년 2월과 4월에 각 각 창간된 조선그리스도인회보(감리회)와 그리스도신문(장로회) 등은 기독교인만을 대상으로 한 신문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를 위한 신문이었다. 아펜젤러는 창간사에서 “누구든지 개명에 진보하고자 하거든 이 회보를 차례로 사서 보시기를 바라오”라 밝혔고, 언더우드는 “조선 백성을 위하여 지식을 널리 펴려하는 것이니”라 했다. 즉 한국 기독교 언론이 추구하는 것은 ‘복음화와 근대화’라는 한국 기독교 선교의 두 가지 사명과 일치한다. 한편 1900~1901년 장로회 서울 선교부와 평양 선교부 사이에 있었던 ‘그리스도신문’ 논쟁은 기독교 언론의 정체성 논란이자 선교 정책의 논란이기도 했다. 언더우드와 서울 선교사들은 ‘그리스도신문’이 한국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복음화와 근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마펫과 평양 선교사들은 시사와 농업 등을 다루는 것은 기독교 신문에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 논쟁은 게일이 편집장이 되면서 평양 선교사들의 입장을 수용하는 것으로 매듭 되었다.
논쟁의 배경에는 우선 열강들의 충돌과 맞물린 격랑의 상황에서 해외선교부가 한국 선교의 탈정치화를 강화했다. 언론환경으로는 1898년에 매일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 등 민간중심의 3대 일간신문이 창간되어 시사.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보도와 논평이 본격화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을사늑약을 전후로 장.감연합으로 발간된 그리스도신문(1905) 그리고 한일병탄 이후 창간된 기독신보(1915) 등은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근대화’는 약화되고 신자를 대상으로 ‘복음화’에 집중하는 교회신문으로 자리매김 됐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두 신문을 창간하면서 공통적으로 품었던 기독교 언론의 정체성이 ‘기독교 문명론’에 입각한 ‘복음화와 근대화’였다면, 일제시기 ‘기독교 언론’은 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회 언론’으로 축소됐다.
해방과 6.25전쟁 이후 한반도가 냉전시기를 맞이하면서 국가적 필요와 공산권 선교 등이 맞물려 민간방송으로는 두 개의 기독교 방송이 먼저 개국한다. 1954년 12월 첫 민간방송으로 개국한 CBS는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복음화와 근대화’라는 한국 기독교 초기의 통전적 선교를 추구하는 ‘기독교 미디어’로서 정체성을 견지했고, 극동방송(복음방송)은 공산권 선교라는 ‘교회 미디어(선교방송)’로 설립됐다.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 시기인 1988년 12월 일간지로 창간한 국민일보 역시 ‘성경을 통해 사회 모든 분야를 재조명함으로써.... 빛과 소금이 된다.’라는 창간 목적과 같이 ’기독교 신문‘을 추구했다.
매스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가 상호 교차하는 오늘, ‘기독교 미디어’와 ‘교회 미디어’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정체성을 잠시 살펴본 것은 두 유형의 미디어에 대한 우열이나 옳고 그름을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사회를 대상으로 ‘복음화와 문화 창달’을 추구하는 ‘기독교 미디어’와 ‘복음화’에 집중된 ‘교회 미디어’ 둘 다 각 각의 역할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한국 개혁교회의 정체성 위기와 함께 두 유형의 미디어 역시 모두 정체성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다. ‘교회 미디어’로서 극동방송은 ‘복음화’(공산권 선교와 지역 복음화)에 집중하면서 비교적 안정된 방송경영을 수행하고 있지만 지상파로서 대사회적 기능은 매우 미흡하다. 국민일보는 창간목적과 달리 하나의 신문에 사회신문과 교회신문이 동거하는 형태이다. 개인적으로 더 아쉬운 것은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복음화와 문화 창달’의 오랜 역사를 가진 CBS가 ‘기독교 미디어’로서 정체성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CBS 라디오와 TV 채널의 편성정책이 사회방송과 교회방송 형태로 각기 따로 이다. 라디오만 볼 때도 ‘문화 창달과 복음화’가 융합된 방송이기보다는 일반방송과 교회방송이 한 지붕 두 가족으로 동거하는 형태에 가깝다. TV의 경우 종교채널로서 법적인 한계가 있겠지만, '교회 TV'가 아닌 ‘기독교 TV'로서 사회를 대상으로 한 기독교 콘텐츠와 기독교 저널리즘의 추구가 미흡하다. 어쩌면 오늘 같은 다원화되고 초갈등사회 환경에서는 ‘기독교 미디어’라는 좁은 길 보다는 ‘교회 미디어’를 추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 선교와 기독교 언론의 토대를 쌓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그러했듯이 위기가 고조된 우리사회를 위한 상호응답으로써 ‘기독교 미디어’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다. 이 시대와 소통하는 전문 역량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문제와 위험을 성육신적으로 참여하고 조명할 수 있는 ‘기독교 미디어’를 재구축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