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어느 가족》 - 진짜 가족으로 살고 싶은 이야기
[영화와 복음] 《어느 가족》 - 진짜 가족으로 살고 싶은 이야기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1.05.12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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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변두리의 어느 마트, 한 남자와 소년이 자연스럽게 장을 보는 시늉을 한다. 이윽고 수신호와 눈빛으로 싸인을 주고받더니, 남자가 주위의 시선을 가로막는 사이에 소년이 물건을 가방에 집어넣어 마트를 빠져나온다. 절묘한 타이밍과 순발력으로 도둑질에 성공한 두 남자는 고로케를 사 먹으며 집으로 향하는 도중, 가정폭력으로 버려진 5살 소녀 유리를 데리고 온다. 또 한 명의 가족이 생기는 순간이다. 영화 《어느 가족》은 이들이 가족을 이루는 과정과 생계를 이어가는 독특한 방법을 오프닝으로 관객에게 묘사한다.

21세기 일본 영화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Hirokazu Koreeda)는 분열되고 왜곡된 현대 ‘가족’의 의미를 여러 편의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한다. 일본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그의 전작들인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은 모두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며, 다양한 관점에서 가족 간의 관계를 조명한다. 특히 마지막 작품 《어느 가족》은 가족영화의 종합선물 세트로 완성되는데, 진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매우 역설적인 방법으로 되묻는다.

《어느 가족》은 가족처럼 생활한, 하지만 진짜 가족으로 살았던 ‘가짜 가족’의 이야기이다. 일본어 제목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 Shoplifters)’은 ‘좀도둑 가족’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 가족의 구성원과 삶이 예사롭지 않음을 드러낸다. 실업 연금으로 생활하는 할머니 하츠에 시바타(키키 키린)를 정점으로, 건설현장 일용직인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세탁공장 노동자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부부로 살아간다. 여기에, 할머니의 손녀지만 처제로 불리는(?) 유흥업소 종사자 아키(마츠오카 마유)가 있고, 데려온 소년 쇼타(죠 카이리)와 막내 유리(사사키 미유)가 함께 생활한다. 이들은 학고방에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지만, 사실 누구도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다. 상처와 아픔으로 점철된 과거를 뒤로하고, 현재는 서로의 부족과 결핍을 채워주며 어느 가족보다 행복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영화는 “낳기만 하면 엄마가 되느냐?”는 노부요의 외침으로 진짜 가족의 의미를 우리에게 묻는다. 현대의 가족은 겉보기에는 정상적이고 멀쩡하지만, 그 내면에는 온갖 문제점이 산재해있다. 가정폭력, 아이유기, 외도, 혼외자식, 가출, 반항, 여기에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결합해 인간소외를 만들어낸다. 이제 ‘가족’은 더이상 가장 안전한 사회 그물망이 아니다. 오히려 벗어나야 참된 행복을 만날 수 있는 모순투성이의 집단으로 전락했다. 반대로 혈연은 아니지만 서로 이해와 공감이 있는 ‘좀도둑 가족’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역설이 발생한다. 사랑과 관심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울림이 크다. 비정규직 문제, 아동학대, 가난, 노숙자, 유령연금, 노인유기, 실업, 가족의 부재 등은 21세기로 접어든 일본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현실이기도 하다. 해답은 없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중요한 키워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스위미’(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거대한 참치를 물리치는 이야기)로 대표되는 ‘연대’의 개념이며, 다른 하나는 공통점을 발견해내는 ‘공감’이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차이’보다는 ‘같음’에 초점을 맞출 때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제안이다.

5월은 가족과 관계된 날이 많은 달이며, 교회 공동체는 모두 형제자매로 불린다. 그렇다면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어떤 의미의 가족관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을까? 형식과 틀에 얽매인 공동체보다는 사랑과 관심으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개성이 강조되고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 전에 공감과 배려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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