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웃는 십자가
[예술과 목회] 웃는 십자가
  • 심광섭 목사
  • 승인 2021.04.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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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팔켄(Herbert Falken)의 <웃는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걸림돌(scandalum crucis)이란 제하의 일련의 작품들 중 세 번째 작품이다. 1969년 작이다. 두 개의 십자가의 머리를 맞대 이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형상인데 못자국은 찾아볼 수 없고 얼굴만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 본 형국이다.

입을 크게 벌려 이빨이 다 보일 정도로 크게 웃어서 입안으로 검은 굴이 뚫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가가 웃는 십자가라고 이름을 달아서 그렇지, 오래 보고 있으면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 고통에 절어 있을 검고 깊은 몸뚱아리 구석구석으로부터 나오는 최대의 웃음이요 깊은 어둠에서 흘러나오는 한 줄기 빛으로 보이기도 하고, 부정의 신비 신학(Theologia mystica ex negativo)으로 보이기도 한다. 화가는 가톨릭 사제이기도 하다.

프란체스코 하비에르 경당의 <웃는 예수님>을 기억한다. 예수님의 초상하면 진지하고 경건하며 신성을 느낄 수 있는 상이어야 한다는 관습이 있다. 웃는 예수님 상은 극히 드물다. 물론 예수님의 인성은 고통을 받지만 예수님의 신성은 고통을 받을 수 없다는 신학 때문에 입술에 약간 미소 지은 십자가 위의 예수님 상을 아주 드물게 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십자가 위에서 껄껄 웃는 예수님은 우리의 전통 예수님 상에 대한 신학적 관념과 금기시되다시피 한 교회의 전통을 전적으로 위반한 것이다.

전통 교회와 신학은 예수님은 결코 웃지 않았다고 가르쳤다. 에코는 “나는 당신이 왜 예수가 웃을 수 있었다는 생각을 그렇게 반대하는지 의아스럽다”[에코, 『장미의 이름』, 27]고 쓰고 있다. 이 수도원의 장서관에서 일하는 수도사들이 계속 죽어갔는데, 이들은 모두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의 『시학』 2권의 유일한 필사본이 장서관에 있음을 알고 몰래 읽어보다가 늙은 수도사인 호르헤에게 독살당한 것이다. 기독교는 웃음을 이교적인 것이라 여겼다. 이교도인 가나안의 신들은 웃었고 명랑하게 놀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웃음을 경멸과 조소의 웃음으로 타매(唾罵)해 왔다.

현대신학은 웃음과 기쁨을 다시 되찾아가고 있다. 철학자로서는 드물게 앙리 베르그송은 <웃음>에 대해서 썼다. 헬무트 플레쓰너는 철학적 인간학의 주제로 “웃음과 울음”을 잡았고, 특유한 이 두 몸짓은 인간의 ‘탈중심성’(Exzentrizität)을 대변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인간은 보통 몹시 슬플 때 눈물이 나면서 울고 기쁨이 넘칠 때 웃는다. 웃음도 여러 종류가 있다. 포복절도, 박장대소, 깔깔대고 웃기, 히죽거리기, 낄낄대기, 비웃기, 냉소, ... 그러나 십자가의 고통에서 웃는 예수님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의 승리, 십자가를 통한 인류의 구원 등의 엄청난 의미를 지닌 사건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웃는 것이다, 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옳은 교리적 해석이지만 교리가 넘고 넘어 가닿아야 할 체험적 사건은 아득하게 멀리 있고, 지금 일어나야 할 사건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다. 하여 그러한 개념적 의미부여는 여전히 음울한 회색빛이어서 생동감이 없을뿐더러 자연스럽고 자발적이지 않아 보인다. 시들시들하고 음흉한 억지웃음도 있지만, 웃음은 몸의 현상이기 때문에 인간의 순전한 마음과 진솔한 감정이 활짝 발화한 꽃이다.

화가가 웃는 예수라고 했지만 이 그림은 웃음 반, 울음 반씩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웃는 십자가는 부활의 십자가이다. 그래서 웃는 십자가는 대립적인 것을 서로 적대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밝음과 어두움, 선과 악이 분리되지 않는다. 십자가의 고통이 정의와 사랑을 위한 정열이라면, 십자가는 미와 추의 삶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고 어느 한 부분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가는 웃는 십자가의 예술작품을 통해 생을 긍정하는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술, 예술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예술은 生을 가능케 해주는 위대한 것이며, 생으로 유혹하는 위대한 것이며, 생의 위대한 자극제다.”(프리드리히 니체)

‘웃는 십자가’는 디오니소스적 웃음과 춤을 배제하지 않고 생산한다. 웃음의 십자가는 들뢰즈가 니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대목과 통한다. “위대한 책들은 추악한 현실, 혐오스러운 현실을 다룰 때조차 기쁨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지배적 코드가 난처함에 빠졌을 때 웃지 않을 수 없다.” 추악한 현실이 웃음거리가 되면 생을 죽이는 것이 되지만, 환하게 웃는 자 앞에서 그 현실은 生을 긍정하며 새롭게 하는 현실로 넘어간다.

십자가가 웃음거리일 때 로마의 잔혹한 형틀이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형틀 십자가는 ‘십자가의 지혜’로 바뀌었고, 십자가의 지혜는 生의 오랜 냉가슴에 따스한 평안을 선사하는 ‘웃는 십자가’이다. ‘웃는 십자가’를 통해 슬픔과 눈물이 지배하는 곳에서도 우리는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심광섭 목사

예술목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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