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노매드랜드》 - 광야의 유목민(nomad)에서 본향의 순례자(pilgrim)로
[영화와 복음] 《노매드랜드》 - 광야의 유목민(nomad)에서 본향의 순례자(pilgrim)로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1.05.06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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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 주인공으로 두 명의 동양계 여성을 선택했다. 한 명은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이고, 다른 한 명은 《노매드랜드》로 작품상, 감독상을 거머쥔 중국계 클로이 자오(Chloe Zhao) 감독이다. 이들은 콧대 높은 영국과 미국의 아카데미에서 유색인종의 벽을 거침없이 허물고 당대 최고의 배우와 감독으로 선정되었는데, 미국 사회 비주류의 그늘진 삶을 영화로 표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매드랜드》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Jessica Bruder)의 논픽션 『노마드랜드』을 원작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현란한 자본주의에 가려진 미국의 경제/사회적 사각지대를 조명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가치를 향한 전진을 요구한다. 그것은 자의든 타의든 길 위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목민(nomad)’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연과 생각의 풍요로움으로 가치의 전환을 이루는 ‘순례자(pilgrim)’로의 업그레이드이다.

네바다 엠파이어에 정착했던 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은 2008년 불어닥친 경제위기로 삶의 터전인 석고 광산이 붕괴하고 남편마저 사별하자, 밴을 이끌고 노매드(유목민)의 삶을 시작한다. 거대한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부속품으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펀은 거기서 밥 웰스(Bob Wells)가 이끄는 노매드 공동체를 소개받는다. 공동체와 연대를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접하게 된 펀은 낡은 밴과 함께 여러 지역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가뒀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

하지만, 유목민의 삶은 며칠간의 캠핑카 여행 같은 꿈과 낭만의 환상이 아니다. 경제력을 상실한 ‘길 위의 삶’은 결핍으로 가득하다. 식사도 잠자리도 생필품도 부족하다. 추위와 강도의 위험은 늘 도사린다. 집 없는 현실은 괴롭고 잔인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도 허물어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이렇게 광야로 내몰린 삶은 새로운 가치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무엇이 진정한 풍요이며 의미 있는 삶인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펀은 노매드로 살아가면서 비로소 자연을 만끽한다. 거대한 계곡과 광활한 하늘, 맑고 깨끗한 호수는 그를 위해 준비된 선물이었지만, 팍팍한 삶에서 허둥거렸던 그에겐 가려졌던 보물이었다.

노매드는 순례자로 진보할 때 완성된다. 이 둘의 차이는 목적지인 진정한 거처의 유무이다. 영원한 본향(home)을 향해 가는 그에게 현재의 집(house)은 의미를 상실한다. ‘집은 없어도 거처는 있다(not homeless but houseless)’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할 때,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의 노매드 기간을 거쳤다. 불필요했던 기간일까? 오히려 노매드에서 필그림으로 생각의 전환이 이뤄지는 기간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없었다면, 여전히 애굽의 고깃국을 그리워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과거의 안락을 기억하는 불편한 현실의 유혹은 진보보다는 회귀를 택하기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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