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주인공이다!
주민들이 주인공이다!
  • 최상현 기자
  • 승인 2021.03.2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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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한 교수, 선진국형 의료 모델 제안
낙후된 지역에 병원을 세운 이유
임종한 교수(인하대의학대학원 학장). 최상현 기자.

임종한 교수(인하대의학대학원 학장)는 환경의학 전문가로, ‘화학물질 등록과 평가 등에 관한 법률 및 암예방 특별법’ 자문, ‘질병관리본부 가습기 살균제 관련 폐 손상 조사’위원, 국내 화학물질 및 대기 정책 수립에 참여한 바 있다. 국가유공훈장과 환경부장관상을 받는 등 국민 건강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해온 그는 지역사회의 의료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임 교수는 1989년, 인천의 낙후된 지역에서 의료협동조합을 세워 소외된 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사회의 엘리트 계층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뒤로하고 약자들 속으로, 상처 입은 지역사회 속으로 걸어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내 양을 돌보라

1981년, 임종한이 의과대학 2학년에 재학중일 때였다. 당시 대학 캠퍼스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진압대에 끌려갈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다가 붙잡혀 최전방으로 끌려가 군생활을 시작했다.

책을 좋아했던 그에게 군부대에서 읽을거리라고는 군인신문과 성경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성경을 통독하면서 ‘말씀의 단맛’을 체험했다. 그는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점점 신앙이 깊어졌고 고관절 통증이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나는 의사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임종한은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정의학을 공부했고 주치의로서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는 수련을 받았다. 향후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대학병원에서 할 역할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주임교수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지역 의원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후 기독청년의료인회와 힘을 합해 지역 의원을 세웠다.

“기독청년의료인회는 선배, 동기, 후배들이 있는 크리스천 의료인 모임인데 필요한 재정을 십시일반 모아주셨습니다. 약 40여 명이 참여했어요.”

1989년, 임종한 교수는 동료 의사들과 함께 인천 부개, 일신동 지역에 평화의원을 설립했다. 그는 상처 입은 자들의 주치의가 되어 주민들을 돌보았다. 진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이들도 적지 않았고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너무 많고 재원은 한정적이었다. 그들을 위한 후원을 조직하고 기금을 모으기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으나 박한 봉급과 질병, 육체적으로도 지치는 상황이 오며 병원이 존폐위기에 빠졌다. 임 교수는 절박한 상황에서 주님을 찾았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너무 벅차고 힘듭니다.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그는 비슷한 사역을 하는 병원 모델을 찾던 중 일본의 의료생협 현장을 방문하게 됐다. 그곳에서 임 교수는 큰 영감을 얻었다.

“작은 동네였는데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해 의료생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수준이 대단했어요. 일본은 의료생협의 역사와 경험이 이미 40년간 축적된 상태였습니다. 종전 후 협동조합 운동이 각 지방에서 활성화되면서 탄탄한 기반을 구축한 것이었죠. 지역주민들의 역량 강화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임 교수는 현장 탐방 후에 일본 의료생협 본부를 방문했다. 그곳에는 목회자이자, 일본에서 기독교 협동조합 운동을 뿌리내린 ‘가가와 도요히코’의 동상이 있었다.

“저는 평소에 기도하면서 내가 하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가와 도요히코의 동상을 보는 순간 마음깊이 울리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이곳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어떻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보고 깨달았으니 이제 네가 내 양을 먹이라’”

그는 기독교 신앙과 협동운동이 어떻게 만나고 꽃 피울 수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정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의사고, 더 가진 사람이니 마땅히 가진 것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주체는 내가 아니었어요. 주체는 지역 주민이고 그들이 역사를 만드는 주역이었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이지만 그들에게 잠재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나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임 교수의 역할은 그들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예장사회적경제네트워크 워크숍에서 강연중인 임종한 교수. 최상현 기자.

의료협동조합을 세우다

임 교수는 지역 주민이 공동체를 만들기에는 지난 역사 속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음을 실감했다. 의존적이고, 이기적이며, 서로 다투기 바쁜 사람들. 전쟁과 독재, 가난 속에서 학대받은 이들의 가슴은 차갑게 얼어있었고 타인을 따듯하게 품을 여력이 없었다. 그들이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했다.

그는 2년이라는 준비기간을 두고 조합을 구성하여 의료생협으로의 전환을 결심했다. 걱정하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임 교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1년도 지나지 않아 조합원 300명을 확보했다. 지역 주민들이 평화의원의 진정성 있는 활동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의료 시스템은 공급자 중심입니다. 쉽게 말해서 ‘치료’하는데 집중되어 있죠. 하지만 의료생협은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주치의가 관리하면서 질병이 걸리기 전에 ‘예방’하는 시스템, 즉 사용자 중심입니다. 사회가 고령화 되면서 만성질환 문제가 늘어나고 건강 불평등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전 관리가 매우 중요하고 자기 건강 능력을 강화하도록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 점에서 의료협동조합의 역할이 크죠.”

현재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의사가 약을 처방하거나 검사한 만큼 의료보험 수가를 받는다. 그래서 환자가 병원에 더 자주 방문하게 하거나 검사의 볼륨을 늘리는 방식으로 더 많은 수가를 획득한다. 그런데 선진국에는 환자의 ‘건강성’이 높아지고 질병이 줄어들면 그 가치를 평가해서 보상하는 제도가 있다. 의료 행위의 목적이 환자의 건강이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의료 행위에 대한 성과지표를 평가하고 지표를 바탕으로 연봉에 차별을 두는 시스템이 선진국에서는 이미 확대되고 있다”면서 “의료사협에 이러한 시스템을 둬서 의료인이 지역 주민들의 자기 건강 능력을 강화시키고 건강한 식생활, 만성질환을 관리할 수 있게 신체능력을 끌어올리거나 생활 습관을 바꾸는 형식으로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 현장을 보면 거품이 많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의료시장의 볼륨이 커지면서 비용은 올라가는데 건강수준에는 변화가 없는 위기가 옵니다. 그런데 선진국의 제도를 가져오면 불필요한 검사를 하지 않고도 의료인의 수입을 보장해줄 수 있죠. 그렇게 약속을 하게 되면 환자에게 초점을 맞춘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죠.”

임 교수는 우리 사회의 경제 규모는 커졌으나 소득불균형은 갈수록 심화되는 현실을 우려했다. 대기업과 소상공인 간의 불평등 구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등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엔 제한이 있다는 것. 그래서 교육과 의료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 시스템으로 자리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경제가 발달한 독일의 경우 크리스천 그룹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소수의 재벌과 대기업에 의한 경제가 아닌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경제를 만드는데 크리스천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죠.”

끝으로, 그는 한국 교회가 다시금 야성을 되찾고 맡은 소명을 다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100년 전, 기독교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작은 그룹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상해 임시정부를 만드는 데 기여했죠. 한 세기가 지난 오늘 날, 한국 교회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초기 한국 교회가 가졌던 헌신과 열정,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연약한 자들을 돌보는데 힘쓰고 있는지, 아니면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소외와 배제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는 비전을 품고 있는 교회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지 성찰하고 그 역할을 다하는 교회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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