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좇는 사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좇는 사회
  • 문상현 교수
  • 승인 2018.04.25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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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라는 타이틀을 붙인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제주도 오두막집에서 연예인이 홀로 전기, 가스와 수도 없이 하루를 보낸다. 숲을 거닐거나 별구경을 하며 소일하고 현실에서 일상화된 멀티태스킹은 금지된다. 단순하고 미니멀한 삶을 보여줘 시청자들이 행복감을 대리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획 의도다. 방송, 영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 소위 ‘소확행’을 내세우는 콘텐츠가 트렌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유래한 ‘소확행’은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하지만 실현 가능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하루키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과 가지런히 정돈된 속옷을 보는 것 등을 소확행이라 했다. 반려견과의 눈 맞춤, 소박하지만 맛있는 한 끼 식사, 마음에 와 닿는 노래를 듣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전화 한통 등은 소소하지만 현실에서 누구나 쉽게 성취할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이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는 이러한 행복 장면들이 넘쳐나고 있다.  


행복은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행복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와 방법론이 있겠지만 행복이 삶의 본질적 목표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난 행복하지 않아도 돼” 혹은 “난 불행해질 거야”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사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미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이나 만족은 희생해도 괜찮다고 믿어 왔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이었던 것이다. 미래의 행복은 물질적 풍요나 높은 사회적 지위의 획득과 동일시되었다. 1990년대 말 금융위기 이전에는 그래도 이러한 물질적 행복이 성취 가능한 목표였다. 높은 경제 성장률과 고금리로 열심히 일하면 재산을 늘려 중산층에 진입하는 것이 가능했다. 대학 진학 여부와 상관없이 취업도 어지간하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허리띠 졸라매고 현실의 즐거움과 여유를 포기하더라도 나중에 더 큰 보상을 받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경제 불황과 저성장이 거듭되며 저축을 통해 부를 쌓는 게 불가능해졌다. 취업 경쟁은 살벌해지고 단군 이래 최고 인재라는 청년세대 실업률은 높아만 갔다. 기술 변화의 속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예언은 삶을 불안의 끝으로 내몰고 있다. 사회 양극화는 치유 불가능한 수준이며 무한 경쟁으로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 역시 바닥이다. 취업, 연애, 취업 등 모든 걸 포기했다는 ‘N포 세대’라는 용어가 자조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는 ‘힐링’과 바랄 수 없는 미래 대신 지금을 즐기라는 ‘욜로’ 열풍이 분 배경에는 이러한 가슴 아픈 현실이 있다. 어쩌면 ‘소확행’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거대담론으로서의 행복을 폐기하고 현실에 맞는 작은 담론으로서의 행복 개념을 복원하려는 시도일지 모른다. 또한 경쟁과 비교라는 공동체적 압박에서 벗어나 올곧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개인 주의시대의 도래를 선언하는 슬로건일지도 모른다. 미래는 불확실하니 현재라도 나만의 작은 행복을 찾아 누리자는 생각은 너무 소박해서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소확행’의 추구가 삶의 충만한 즐거움과 의미 있는 경험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소확행’의 추구가 자본주의적 소비행위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결국 (소소하지만) 끊임없는 결핍과 욕망 추구의 물질주의적 악순환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 진정한 공동체적 관계를 버리고 가상적 관계와 초개인주의적 삶으로 도피하는 경향 역시 걱정스럽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와 한국 교회의 역할이 매우 위중하고 시급하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공동체의 모습과 가치가 회복되어야 한다. 세속적 행복관으로 상처받고 낙망한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충만해지는 기쁨이 무엇인지, 신앙공동체를 통해 경험하는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한국교회가 기복주의와 물질주의의 악습을 끊어내야 한다. 교회가 지금처럼 세속적 성장과 영향력 확대에 앞장서는 한 신자를 포함한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삶이 충만해진다는 말씀에 수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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