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회나 후계자를 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교회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후계자를 세우는 데 나름의 고민이 있다.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후계자를 잘못 세워서, 교회의 존립기반이 흔들린 사례는 적지 않다. 이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가 과감하게 종교개혁의 횃불을 먼저 들었지만, 그의 뒤를 이어 횃불을 계속 이어들 후계자가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루터는 그의 후계자를 손쉽게 잘 세운 셈이다. 핍립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이라는 뛰어난 후계자가 루터의 신학을 체계화하는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멜란히톤은 1497년 2월 16일에 선제후의 병기장인, 슈바르체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당시 인문주의자들의 관행에 따라 검은 땅(Schwartzert)을 뜻하는 독일어 이름을 버리고, 헬라어 이름인 멜란히톤으로 개명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멜란히톤은 1518년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마르틴 루터와 첫 만남 이후 로마서와 바울신학에 관심을 가지며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 신학총론의 출판을 계기로, 루터의 신학을 인문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사상을 계승한 멜란히톤을 생전에 이렇게 평가했다. “내 저술이 오합지졸과 싸운 까닭에 대체로 호전적이지만, 거친 길을 개척한 나와는 달리 멜란히톤은 조용하고 온유하게 다가와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 루터는 멜란히톤을 만난 것을 신의 특별한 섭리로 생각했다. 루터가 강경하고 호전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다면, 멜란히톤은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신학적 논쟁이 벌어질 때 누구와의 대화도 주저하지 않았다. 멜란히톤은 자신의 집에 늘 사람들을 초청하기를 즐겨했고, 특히 젊은 학생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겨했다.
신학자 맨슈렉(C. Manschreck) 멜란히톤의 유산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유산은 루터 신앙관의 재정립이고, 둘째 유산은 개혁파와 영국교회에 미친 영향이고, 셋째 유산은 독일사 서술에 끼친 영향이고, 넷째 유산은 교회일치 운동에 끼친 영향 등이다. 이렇게 멜란히톤은 루터의 후계자로서 루터파가 자국 독일은 물론 독일어권 지역의 국가주의 교회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이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