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가버나움'의 공간적 의미
[전문가 칼럼] '가버나움'의 공간적 의미
  • 이정배 교수
  • 승인 2021.02.01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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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딘 라바키 감독 《가버나움, Capernaum》(2018)
영화 포스터.

제71회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수상했다.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가 있었는데,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레바논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2011)와 예수상이 랜드마크인 리우을 배경으로 한 《사랑해, 리우》(2014)에 이은 ‘나딘 라바키’ 감독의 세 번째 작품 《가버나움》이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레바논 출신이지만, 주로 프랑스에서 영화배우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레바논 출신이라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과 인접한 레바논은 300년경부터 기독교의 전파로 기독교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국가였다. 600년경 아랍인의 침략으로 이슬람화되어 현재 기독교인과 이슬람의 수가 반반인 국가가 되었다.

십자군 전쟁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레바논은 1923년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1944년 독립했다.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는 기독교인과 중동국가들의 지지를 받는 이슬람 세력 간의 갈등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고, 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난민이 유입되고 최근 시리아 난민마저 유입되면서 레바논은 중동에서 가장 어지럽고 복잡한 지역이 되었다.

예수님은 초기 공생애 동안 갈릴리 호수의 서북부 지역에 있는 가버나움에서 활동하셨다. 가버나움은 다메섹에서 지중해로 왕래하는 통로였기에 예로부터 상업활동이 왕성하였고 예수님 당시에 세관이 있어 마태를 비롯한 다섯 제자를 부르신 장소이다. 백부장의 종을 고치시고 베드로의 장모와 네 명의 친구가 메고 온 병자 등을 고치신 곳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많은 이적과 가르침을 행하신 장소이지만, 가버나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아 책망받은 곳이다. 주님의 예언대로 가버나움은 소멸했고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지역이 되었다. 단지 가버나움이라는 단어가 혼돈이나 혼란을 의미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혼란한 장소를 상징하기 때문에 감독이 영화 제목으로 삼았다.

영화의 공간 배경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다. 구체적인 공간은 베이투트의 최하층민이 사는 거주지다. 베이루트는 오랜 내전으로 행정력이 마비된 그야말로 가버나움이다. 주인공 ‘자인’은 부모가 여동생을 상인에게 팔아버리자 동생을 데려오기 위해 집을 나가 벌이를 한다. 그러다 동생의 죽음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렇게 만든 상인을 칼로 찔러 재판을 받게 된다.

영화 속에는 온갖 사회적 문제들이 포개어져 있다. 빈부 문제, 노숙인, 매매혼, 마약, 의료문제, 여성 차별, 아동노동 착취, 불법체류자, 난민과 그들을 돈 받고 타국으로 옮겨주는 브로커 등등의 문제가 혼재되어 있어 가버나움이라는 제목이 걸맞다. 가버나움이란 공간에선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일들이 온통 왜곡되어 있고 뒤집혀 있기 때문이다.

가버나움의 공간은 자녀가 부모를 걱정해야 하고, 어린아이가 어른을 먹여 살려야 하는 곳이다. 국가는 차별과 폭력을 외면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권위적으로 대한다. 복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죽을 수 있는 절박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희망은 어디에도 없어 보여 생을 저주하며 겨우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가버나움》에서 나딘 라바키는 자인의 변호사 역할로 등장한다.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그를 돕는 자의 모습을 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난민 신청이 받아져 유럽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웃는 일이 없었던 그에게 웃음을 찾아주는 일이다.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어 레바논의 상황을 알리는 일이다.

자인이 먹지도 못하고 길거리를 방황할 때 그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 불법체류자인 ‘티게스트’였다. 티게스트 역시 혼자 갓난아이를 키우고 있어 먹고 살기 위해 험한 일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인을 거두어 돌봐준다. 어려운 이들이 더욱 어려운 이들을 서로 도와주는 모습을 통해 비로소 작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카메라의 초점을 통해 주인공의 동생을 향한 관심과 애정을 감지할 수 있다. 동생을 돌보려는 책임감과 자신을 내어놓는 헌신과 희생을 엿보게 된다. 그 어떤 것도 주인공의 열정을 방해하지 못한다. 그런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이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나아가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예수님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마 5:4)”이라고 하신 말씀이 당시 갈릴리 사람들에게 그리고 낮고 천한 이들에게 복음이었다는 걸 영화는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금도 가버나움과 같은 혼탁한 공간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향한 주님의 관심과 사랑이 여전하다는 것과 그분의 복음이 상황을 변화시키기에 유효하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이정배 교수
이정배 교수
문화예술비평가
예목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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