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은유와 상징을 통한 치유
[예술과 목회] 은유와 상징을 통한 치유
  • 이영식 목사
  • 승인 2021.02.01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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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온갖 생명을 잉태하여 기르는 것처럼 은유와 상징은 인간의 정신의 뿌리가 된다." pixabay.

상징(象徵)은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나는 신학대학원 시절 어느 집단 상담 수련모임에서 ‘가람’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가람이란 순 우리말로 강(江)이는 뜻이다. 시골 출신인 나는 강을 무척 좋아한다. 강은 끊임없이 흐르면서 수많은 생명을 품어서 기르는 생명의 어머니다. 물길이 닫는 곳마다 숲이 우거지며 인류의 문명을 일으킨다. 그래서인지 성전의 문지방으로부터 스며 나온 물이 큰 강을 이루어 사해로 흘러들며 생명을 살리는 에스겔서 47장의 환상이 정말 마음에 든다.

“가람”이라는 상징은 내가 49세 아홉수를 넘길 무렵 큰 힘을 발휘하였다. 그때 나는 10여 년 간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를 임지 없이 사직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장강처럼 흐르다”라는 제목으로 치유적 자서전을 집필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기억을 더듬어 정리하는 한편 99세까지 살았다고 가정하고 나머지 삶을 과거형으로 서술해가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그래 나는 강(江)이지……. 흐르다보면 강도 거대한 댐에 막힐 수도 있지. 하지만 어떤 댐도 강을 영원히 멈추게 할 수는 없어. 나도 장애물을 만나 잠시 멈춘 듯이 보이지만 기다리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다.’ 나는 이 내면의 소리에 힘을 얻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다음 임지가 결정될 때까지 2년 남짓 안정된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미국 시치료협회(https://poetrytherapy.org)가 규정한 독서치료의 개념을 보면 ‘이야기와 상징, 언어의 힘을 활용하여 사람들의 성장과 치유를 촉진하는 활동(Promoting growth and healing through language, symbol, and story)이라고 한다.

상징과 인간의 정신세계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김용규는 『생각의 시대』(살림, 2019)라는 책에서 은유가 우리의 사고와 언어, 학문과 예술을 구성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도구’라고 한다. 말하자면 은유적 언어를 배제하면 사람의 사고도 언어도, 학문도, 예술도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친숙한 십자가처럼 원관념이 배제된 은유의 한 형태가 상징이다. 물이 온갖 생명을 잉태하여 기르는 것처럼 은유와 상징은 인간의 정신의 뿌리가 된다. 하나의 은유는 그 은유가 품고 있는 상징을 통해서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심지어는 미래까지 담아낼 수 있는 힘이 있다. 30대 초반에 찾아온 ‘가람’이라는 상징이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 즐겨 사용하는 그림책은 은유와 상징의 보고이다. 문자 중심의 소설은 사건을 서술하기 위해서 상당한 분량의 지면이 필요하고 그림은 단 한 장의 화폭에다 이야기를 담아낸다면 그림책은 이 둘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그림책은 36면 내외의 지면에다 모든 이야기를 압축해야하기 때문에 작가들은 은유와 상징 기법을 즐겨 활용한다. 내가 만난 그림책 작가 중에서 상징을 가장 강렬하게 활용한 이가 토미 웅거러(Tomi Ungerer)다.

토미 웅거러는 1931년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 지역인 스트라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까지 그의 고향은 프랑스에 속해서 프랑스어로 프랑스식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독일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자 독일어 교과서로 독일어 선생님에게 독일식 교육을 받게 되었다. 폭격으로 집이 부서지고 그의 가족은 지하실에서 3개월 정도 산 적도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에게 더 큰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왔다. 독일군이 물러나자 프랑스 교사들이 교사로 부임해서 독일어 억양으로 프랑스 말을 하는 학생들을 심하게 꾸짖고 경멸했던 것이다. 토미 웅거러는 학교를 자퇴하고 유럽 지역 무전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끝내 고향을 떠나서 1956년 24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그림책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개와 고양이의 영웅 플릭스』(비룡소, 2004)라는 토미 웅거러의 자전적 작품이 있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노랑색 바탕에 주인공인 고양이가 등장하는 데 그림자는 개의 모습이다. 플릭스(Flix)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flexible"(융통성 있는)이라는 영어 단어를 연상시킨다.

고양이 부부에게서 몹스 종 개의 외모로 태어난 플릭스는 친구들에게 배척당하는 고달픈 삶을 산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플릭스에게 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과 고양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르친다. 어느 여름 방학 물에 빠진 고양이 아저씨를 능숙한 개의 수영실력으로 구해준 덕분에 따돌리던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한편 개의 도시에 유학을 하는 동안 기숙사에 불이 나자 미처 피하지 못한 푸들 아가씨를 나무에 올라가 고양이의 실력으로 구해낸 것이 인연이 되어 둘은 사랑에 빠진다.

중요한 사실은 작품 전체에 수많은 파이프를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파이프는 그의 다른 작품에서 수 없이 등장하는 ”소통“의 상징이다. 개와 고양이의 유전자가 서로 소통하고 적대적 사회가 소통하고 다른 계층이 소통하는 것이다. 빈자와 부자가 소통하고 강대국과 약소국이 소통하여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 토미 웅거러는 파이프라는 상징을 통해서 자신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치유를 꿈꾸고 있었다.

이영식 목사 한국독서치료학회 영남지회 대표비전교회 담임목사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이영식 목사
한국독서치료학회 영남지회 대표
비전교회 담임목사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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