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 박선규 집사(도림교회, 전 문체부차관)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할 젊은 신앙의 일꾼 나올 수 있어야”
[믿음의 사람] 박선규 집사(도림교회, 전 문체부차관)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할 젊은 신앙의 일꾼 나올 수 있어야”
  • 김유수 기자
  • 승인 2021.01.22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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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어머니가 삶이 중심 잡아
종군기자, 앵커로 지혜와 경험 쌓고
청와대 공직에서도 하나님 뜻 구해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니
협력하여 선 이루심 의심치 말아야”

돌아보니 인생이 모두 하나님 계획 속에 이뤄진 일이었다. 하나님 계획안에 있다면, 나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조차도 큰 계획을 위해 사용된다.  청와대에 일하다 쫓겨났다가 3주 만에 차관이 됐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도구로 쓰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사단법인 ‘더불어 꿈’을 통해 청소년들의 꿈과 비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박선규 대표. 김유수 기자

사단법인 더불어 꿈 대표 박선규 집사(도림교회)는 KBS에서 20년 3개월 동안 기자와 앵커로 일하며 치열하게 현장을 누볐다. 종군기자로서 걸프전과 소말리아, 유고 내전 현장에 있었으며 9.11 테러 직후 미국에서 의회 보좌관직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그의 안목과 통찰력을 인정받아 청와대 대변인과 문체부 차관을 역임했다. 이제 그는 대표로 있는 더불어 꿈 활동을 통해 부모의 경제력의 차이 때문에 경험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꿈과 보람 있는 삶의 계기를 마련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박 집사는 크리스천 집안에 모태신앙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31살에 과부가 된 어머니는 가난 가운데 4남매를 키웠다. 그렇게 힘겹게 사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어머니가 삶의 중심을 잡아줬고 많은 이웃과 교회에서 그 신앙의 가정에 큰 도움을 줬다.

박 집사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학교에서 반장이 된 적 있었다. 당시 친구들이 뽑아 반장이 됐지만 부모님이 학급에 재정적인 지원을 해줄 수 없는 가난한 가정 환경이었기에 당시 담임선생은 노골적으로 그를 미워했고, 욕설과 체벌로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줬다. 그때 그는 ‘선생님이 되어 어려운 아이들도 차별하지 않고 보듬어서 잘 키워 내리라’라는 마음으로 교사의 꿈을 가졌고 고려대학교 사범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가 교생실습을 나갔던 1987년엔 권위주의 체제의 부당한 권력이 학교와 세상을 누르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는 교생 대표로 학교의 민주화를 위한 학생운동을 했지만 정작 그가 일할 학교는 그를 경계했다. “그때 학교가 학생과 선생의 관계로만 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이라는 직분을 가진 이들 또한 세상 권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권위주의적인 답답한 체제 안에서 상명하복의 군대식 학교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 계속 있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집사는 그렇게 학교를 떠나 교육행정고시를 준비하다가 우연찮게 방송사 시험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KBS 기자시험에 말 그대로 ‘덜커덕’ 붙었다.

1차 시험에선 마치 누가 아는 문제만 골라서 내준 것처럼 막히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1차 시험에 합격하던 날 밤 큰 누나가 큰 화상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 누나에게 허벅지 피부를 이식해주고 휠체어에 올라 남은 시험과 면접을 봤다. 사실 민주화 운동을 한 기록 때문에 방송국 같은 주요 기관엔 결국 입사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KBS 정구호 사장이 그의 열정과 패기를 높게 보아 그를 합격시켰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학교를 떠난 것도, 때마침 시험에 아는 문제만 나온 것도, 정구호 사장이 나를 뽑은 것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면 그 계획 속에 있는 사람은 심지어 적대적인 사람을 동원하셔서라도 그 뜻을 실현하신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게 하나님이 자기 삶에 역사하심을 확신한 박 집사는 기자로서 모든 일에 용감하게 임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믿음으로 기자 3년 차에 종군기자에 지원했고 전쟁터를 가장 많이 다닌 기자가 됐다. 걸프전에서 국제 정세와 미국을 온몸으로 경험했고 그 경험은 그를 성숙하게 했다. 이후에 미국으로 파견돼 미국 하원의원의 보좌관이 됐다. 미국에서 보좌관으로 일할 때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전쟁 현장에서의 종군기자 경험과 경력이 큰 도움이 됐다.

그때 미국으로 파견 간 덕분에 천국 다음으로 미국에 가고 싶어 했던 어머니를 미국에 모실 수 있었다. 어머니와 미국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렸고 잔디 깔린 마당이 있고 앞에 쇼핑센터도 있는 꿈같은 집에서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평생소원을 이루곤 한국에 돌아와 잠들듯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갔다. 가기 직전에 옷을 차려입곤 평소에 좋아하던 ‘예수 나를 원하네’ 찬송가를 불렀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저 기도하시는 줄 알았다고 한다. 박 집사가 장례를 치르러 한국에 와서 소천한 어머니 얼굴을 보자 아니나 다를까 잠든 듯 평안한 표정이었다. 박 집사는 “내가 잘나서 미국에 간 것이 아니라 미국에 가보고 싶으셨던 어머니 기도에 편승해서 묶여서 보내진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내게 미국을 경험하게 하시고 영역을 확장하는 일에 역사하셨다. 모두 위대한 어머니의 기도가 이어놓은 상황이었다”고 회고한다.

두 팔이 없는 고난을 딛고 그림을 그리는 장애인 화가
석창우 화백의 작품 앞에서 선 박선규 대표. 김유수 기자

한편 박 집사가 한국에 돌아온 뒤 방송전문가를 찾던 당시 정부에서 박 집사에게 공직을 제안했다. 20년을 몸담았던 방송국 일을 그만두고 공직에 나서도 될지 고민했고, 앞날을 위해 치열하게 기도했다. 기도 끝에 그는 청와대에 들어가 언론비서관,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다. 이후 문체부 차관을 지내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실무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유치 성공에 힘을 보탰다. “요셉을 팔아치운 형이 아니었으면, 보디발의 아내가 아니었으면 요셉 총리가 됐을까. 내가 청와대에서 일하다 오해를 받고 쫓겨나 서운하고 속상했지만, 그 덕에 3주 만에 차관이 됐다. 그래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모태신앙으로 항상 하나님이 함께하신 삶이었지만 그의 신앙에도 내적으로 외적으로 위기가 없지는 않았다. 거의 어머니는 평생 교회에 헌신하셨는데, 힘든 시절 교회 장로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도 교회에선 어머니에게 어떤 직분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어머니가 인도한 성도가 어머니보다도 먼저 집사직분을 받았다. 그 서러움에도 어머니는 그 교회를 떠나지 못했다. 박 집사가 KBS 기자가 된 다음에서야 교회는 어머니에게 권사 직분을 줬다. 이후 어머니에게 “박선규는 기도로 키우신 어머니 덕에 잘됐어”라 칭찬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샘하는 말들도 많았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젊은 마음에 그러한 교회 사람들은 행동은 그에게 힘든 상처를 줬다.

 

 

청와대 공직 생활 땐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박 집사가 문화부 차관이 됐을 때 그가 청와대 기독신우회장을 맡아 신우회 활동을 활성화 시키자 불교계에서 기독교 정부가 종교를 차별한다며 강하게 들고 일어났다. 당시 총무원장 스님까지 나서서 종교정책이 업무인 문화부차관이 기독교인임을 나타내며 불교를 탄압한다고 총리 앞에 놓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불교계의 반발은 날로 심해해졌지만 그는 함부로 문제에 대응하지 않고 ‘무위의 위(無爲의 爲)’로 조용하고 유연하게 상황을 넘겼다. 이내 명망 있는 스님들과 불자 국회의원들이 조용히 나서서 그에 대한 오해를 풀어줬다. 이제 박 집사는 “돌아보니 내가 한 일은 다 하나님 계획 속에 이뤄진 일이었다. 하나님 계획안에 있다면, 나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조차도 큰 계획을 위해 사용하신다”며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니 하나님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도구로 우리를 쓰지는 것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고백한다.

공직에 몸담았던 크리스천인 박 집사는 “한국교회는 기도 시간마다 대한민국에 지도자에 대한 기도는 많이 하는데 그 기도가 이뤄지려면 귀찮더라도 교회가 올바른 투표를 위해 정치인들을 존중하고, 알아보며, 구분해야 한다”고 권면했다. 그는 “교회가 올바른 믿음을 길러내 대한민국의 신앙 깊고 유능한 젊은이들이 정치하고 싶어 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대한민국 교회는 복 받는 얘기만 하지 말씀이 행위로 이어져야 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교회는 실행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쳐야 하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할 수 있는 신앙의 일꾼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딛고 성장해 평생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비전을 품어 온 그는 공직생활을 정리하며 청소년들을 위한 사단법인을 준비했다. 그는 단체를 통해 부모의 경제력 차이 때문에 외국 한번, 예술의 전당 한번 가기 힘든 청소년들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는 단체를 통해 전액지원 해외봉사캠프, 음악회, 행복콘서트 등의 청소년 활동사업을 전개하며 “단체를 통해 소외된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경험하고 좋은 꿈을 꿈꾸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 박 집사는 더불어 꿈을 통해 코로나 이후 한일청소년 교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한일관계는 이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한 걸음도 못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청소년들의 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의 비전을 격려하는 일이라 생각한다”며 “한국과 일본 양쪽에 아주 작은 겨자씨만 한 선한 결과가 발아하면 이후에 남북관계까지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평화를 희망하는 그의 비전을 소개했다.

사단법인 더불어꿈의 캄보디아 봉사캠프 단체사진. 출처 더불어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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