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샘물] 온전한 희생의 구현, ‘성찬’
[영혼의 샘물] 온전한 희생의 구현, ‘성찬’
  • 이성희 목사
  • 승인 2020.12.2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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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순례의 길을 가게 하신 것은 예배하게 하기 위함이다. 구원의 목표는 예배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예배하게 하고 이 일을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가 홈으로 가는 순례의 길에서 예배는 일상이어야 한다. 주일의 예배만 아니라 삶이 예배여야 하고, 예배하기를 즐겨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희생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시며 그 목적대로 사셨다. 예수님은 친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하셨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인 섬김과 죽음은 온전한 희생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수가 있었고, 수치와 저주의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가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대속물이 되신 것을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 2:6)라고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시다. 이 그리스도론은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아타나시우스 신조’를 채택하여 확실하게 신학화되었다. 주후 325년에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소집한 이 회의에서 예수님은 참 하나님(vere Deus)이시며 참 사람(vere homo)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 후 주후 381년 2차 회의인 콘스탄티노플회의, 주후 431년 3차 회의인 에베소회의를 거쳐 주후 451년 칼게톤회의에서 예수님의 두 본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예수님의 한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의 두 성이 있으며, 각 성은 완전하고 유기적이며 나눌 수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 회의에서 예수님의 두 본성은 혼동이 없고(without confusion), 변함이 없고(without change), 분리가 없고(without separation), 분할이 없다(without division)고 정의한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며 동시에 사람으로 오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즉 우리로 하여금 홈에 들어가게 하시려면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셔야 했다. 사람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이셔야 한다.

구약의 제사가 희생이며, 짐승을 잡아 피를 뿌려야 하는 것처럼 피를 뿌리는 희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을 수 없다. 죽지 않는 분을 하나님이라고 한다. 피를 흘리는 것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피를 흘려 우리를 사한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신 것,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피를 흘리신 것, 이 모두가 희생이다. 예수님은 순종과 희생과 부활 속에서 한번으로 영원히(once for all) 구원을 이루셨고, 혼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one for all) 이 일을 담당하셨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의로 인정받고, 성결의 순례길을 가며, 훗날 영광스런 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성찬은 온전한 희생의 구현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빵을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마 26:26)라고 하셨고, 포도주를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7-28)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빵이 아니라 몸이었고, 포도주가 아니라 피였다. 그리고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5)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행하라”고 하신 것은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라는 말씀이 아니었다. 우리의 몸을 쪼개어 주고, 우리의 피를 공급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찬식에서 빵을 나누고 포도주를 나눔으로 성찬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주고 피를 공급하는 희생이 성찬이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성찬은 ‘장기기증’과 ‘헌혈’이라고 해석한다. 예수님의 성찬은 우리 성찬의 모본이다. 예수님의 성찬이 희생이듯이 우리의 성찬도 희생이어야 한다. - ‘홈런’에서 발췌

발행인 이성희 목사(증경 총회장 / 연동교회 원로목사)
이성희 목사
가스펠투데이 명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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