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디지털 천국 in 《블랙 미러: 샌 주니페로》
[예술과 목회] 디지털 천국 in 《블랙 미러: 샌 주니페로》
  • 박형철 교수
  • 승인 2020.12.12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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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미러. 출처 '블랙미러' 홈페이지
블랙미러. 출처 '블랙미러' 홈페이지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이번 학기 SF 영화를 보며 토론하는 수업이 있었다. 매주 작품을 정하고 핵심주제 테두리 안에서 ‘기독교와의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굉장히 다양하고 창의적인 질문들이 쏟아졌고, 우리는 그 안에서 머리는 아프지만 치열하게 고민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인터스텔라>(우주/외계 생명체), <레디 플레이어 원>(가상현실), <옥자>(유전자 조작), <아이 로봇>/<엑스마키나>(AI), <설국열차>/<컨테이젼>(환경/바이러스). 대부분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리는 작품들은 인간의 실수로 인한 환경파괴, 식량부족, 빈부격차를 미래의 모습으로 설정하고, 이와 함께 디지털 기술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밖에도 여러 작품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필자에게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건 <샌 주니페로>(<블랙 미러> 시즌 3)였다. 레트로 감성으로 시작하는 장면들, 그런데 볼수록 조금 이상한 전개와 민감할 수 있는 주제들, 그리고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기독교인이라면 더욱) 관심, 흥미, 놀라움, 그리고 나중에는 복잡한 심정과 고민을 품게 만들었다.

OTT(Over the Top, 인터넷 기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대표주자 넷플릭스(Netflix)의 유명한 시리즈 작품 중 하나인 <블랙 미러>의 의도가 잘 반영된 에피소드 <샌 주니페로>가 내포하는 주제는 다음과 같다: 가상현실, 존엄사/안락사, 동성애, 사후세계.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뻔한 척 하면서 어려운 질문은 다음과 같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천국은 어떤 곳인가, 영원한 행복은 가능한가...? (* 다음 단락 줄거리는 스포일러 포함)

‘샌 주니페로’는 첨단 디지털 기술로 구현된 가상현실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 시공간은 원래 노인들의 기억 속 추억의 공간을 재현함으로써 알츠하이머 치료를 돕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영화 초반 등장하는 젊은 두 주인공도 사실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이다.

불치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한 여인과 거의 평생을 침대에서 식물인간으로 산 또 다른 여인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곳, 모든 것이 가능한 마술 같은 곳에서 젊을 때의 모습으로 친구가 되어 사랑하며 행복을 누린다는 이야기. 아름다운 상상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이 던지는 ‘패스오버’라는 개념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한계에 다다른 자신의 육신에 대해서 존엄사/안락사를 선택할 때, 기억(과 정신(?))은 샌 주니페로라는 사후세계로 넘어가게 해 주는 기술. 물론 아직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실현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는 질문과 생각이 복잡해진다.

클라우드 속으로 존재가 넘어갈 때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신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은 단지 디지털 데이터인지 아니면 그 이상이 존재하는지, 정말 가능하다면 샌 주니페로는 영원한 디지털 천국인지...?!

가능할까 싶고, 말이 되지도 않는 것 같고, 기독교인에게는 개념 자체로 복잡하고 불편한 상상이다. 앞에서 언급한 <블랙 미러>의 기획의도에 따른 작품이기에 그러하다. 첨단 디지털 기술 발전에 대한 양면성, 부작용과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들을 다룬다는 것.

그런데 필자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되었다. 영상과 기독교를 접목해서 글을 쓰고 강의하는 사람인만큼 비슷한 다양한 콘텐츠들을 더 많이 접하고 더 많이 불편해져야겠다는 생각, 그래서 더 익숙해지는 가운데 고민을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

블랙미러. 출처 '블랙미러' 홈페이지
블랙미러 '샌 주니페로' 일화. 출처 '블랙미러' 홈페이지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이 질문에 아직 대답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성서를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 세계관, 설교, 상담, 목회의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는 성서에 나오지 않는 현대 첨단기술과 이를 통한 기상천외한 상상들을 받아들이고 설명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준비를 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일단 보고 비판을 하든, 판단을 보류하든, 한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것과 아예 쳐다보지도 않아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과는 천양지차인데 말이다.

개인적으로 청소년 시절부터 교회를 바라보며 해 온 생각이 있다. ‘영상’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에 대해서 너무 겁내지 말고, 배타적으로 대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물론 신과 사후세계가 부정되고 은혜와 구원이 희석되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을 다 수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수와 바울시대 이후 인간은 항상 많은 것을 부정하며 종말을 살아왔다는 걸 기억하면 모든 걸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의 믿음과 기준과 균형이다. 그리고 그것조차 흔들릴지라도 하나님은, 진리와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말 안타까운 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런 것들에 의해 제한 받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쉽게 자주 잊는다는 것이다.

‘만약’과 ‘아직은’이 아닌, ‘이미’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미리 겪음으로 고민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 좋겠다. 좀 어색하고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아도 한 번 입어보면 좋겠다. 두려움이 아닌 치열함으로 함께 고민하며 그 속에서 아름답고 귀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려 노력하자고 권면하는 동행자의 마음이다.

박형철 교수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박형철 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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