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영화 《박하사탕》 - 순수를 갈망하는 시대와 무기력한 기독교
[영화와 복음] 영화 《박하사탕》 - 순수를 갈망하는 시대와 무기력한 기독교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0.12.1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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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포스터. 출처 영화 홈페이지.
박하사탕 포스터. 출처 영화 홈페이지.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관통하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첫째는 ‘순수’이고, 다음으로 ‘무기력한 기독교’, 마지막으로 ‘시대에 가운데 선 개인’이다. 그의 첫 장편영화 《초록 물고기》부터 가장 최근작인 《버닝》에 이르기까지 이 점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원래 영화감독이기 전에 소설가였던 그는 순수에 대한 근원적 열망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순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변질되고 왜곡된다. 바로 그 변질과 왜곡을 막아줄 유일한 희망이 기독교인데, (최소한) 한국 기독교는 그 점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무력하다는 현실적 절망에 다다른다.

가장 순수해야 할 종교(기독교)마저 현실에 타협하거나 권력에 굽어있기 때문이다. 이미 순수를 상실한 기독교는 더 이상 세상을 정화할 능력도 사회를 계도할 힘도 없다. 다만 공허한 외침만 메아리친다.

20년이 지난 영화 《박하사탕》은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박하사탕’은 순수를 상징한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순수하다. 영호(설경구)는 자신에게 박하사탕을 건넨 가장 첫사랑의 여인 순임(문소리)을 그리워한다. 그런데 시대가 그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1980년 광주의 한복판에서 영호는 시대의 격변과 마주한다. 순수의 상실이며 변곡의 시점이다. 그 변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더욱 강화된다. 군부독재 시절(1984년),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보이는 고문경찰의 길로 들어선다. 민주화의 대망인 1987년의 여름을 맞이하기 전, 자신과 대척점에 서 있는 한 대학생을 고문한다.

다시 시대는 흘러 1999년 IMF 이후, 이미 사회·경제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영호는 누구 하나 탓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해졌다. 그리고 삶을 마무리하는 1999년 고향에서의 봄 야유회, 그는 순수했던 과거로의 회귀를 소리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독교는 영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누군가는 적응하고 타협하여 진리를 찾아갔지만, 최소한 영호에게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그에게 기독교는 시대성을 상실한, 시대를 정화할 능력이 붕괴된 헛된 소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호에게 순수를 떠올리게 만든 건 술집에서 처음 만난 창녀이다.

영화는 굵직한 현대사와 그 속에서 삶을 살아낸 영호의 과거를 더듬어갈 때마다(조금씩 더 순수했던 모습으로 가까이 다가갈 때) 기찻길을 보여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차는 역행할 수 없다. 항상 전진만 가능하지 후진은 없다. 인생이 그렇다. 영호가 뒤늦게 깨닫고 아무리 순수를 향해 돌아가려 해도, 이미 지나온 인생을 되돌린 순 없다. 영호의 절망이 거기서 깊어진다.

영화 첫 장면, 1999년 가리봉 봉우회 야유회에서 그는 ‘나 어떡해’를 부른다. 대구(couplet)를 이루듯 이는 영화 막바지 장면인 20년 전 순수했던 대학 엠티에서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희망을 가진 ‘나 어떡해’가 절망으로 어찌할 수 없는 비가(悲歌)로 전환된다. 영호의 노래는 한 번 더 진행된다. ‘내일 또 내일’이다. 그는 미래를 바라고 소망을 기대했지만, 그에게 내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영호는 질문한다.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과거를 살아왔고 현재를 사는 삶이 과연 아름다운가? ‘아름다움’은 영호에겐 ‘순수’를 지향한다. 영화에서 영호는 기독교에서 그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기독교는 그 답을 줄 수 있는가? 기독교는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가? 최소한 아름답게 보이도록 비춰주기라도 하는가? 왜 치열하게 시대를 살아온 사람은 그 진리의 길을 찾기 힘들까? 예수님의 삶이 과연 누구를 위한 삶이었으며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는지 돌이켜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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