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사진신학③ 유동하는 이미지와 사라진 아우라
[전문가 칼럼] 사진신학③ 유동하는 이미지와 사라진 아우라
  • 최병학 목사
  • 승인 2020.11.2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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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만 해도 딸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중 단연 으뜸인 것은 ‘액괴’였다. ‘액체괴물’의 줄임말이다. 액괴를 주무르는 것이 그리도 재미있는가 보다. 액괴는 형태가 없는 무정형의 물질이다. 물과 같은데, 쏟아지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이러한 부드러운 무정형의 물질을 갖고 노는데(비록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다고는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는 지금 강한 것들의 전성시대로 국가, 자본, 군사력, 경제력, 검찰, 언론, 부동산이라는 견고한 정형(solid)의 힘이 맞대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액괴를 가지고 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물질성을 띤 액괴가 아니라, 영상 이미지를 주무른다. 인물의 얼굴 형태를 변화시키는 앱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큰 딸 아이는 매일 아침 동생들을 이렇게 찍은 사진으로 가족 단톡에 올린다. 그 사진 속 나의 모습은 근엄한 목사, 진중한 선생이 아니라, 웃기는 괴물이 된다.

얼굴 형태를 변화시키는 앱으로 찍은 필자와 세 딸.
얼굴 형태를 변화시키는 앱으로 찍은 필자와 세 딸.

이렇게 ‘유동하는(liquid)’ 액체의 이미지를 성찰한 사회학자가 바로 현대성 이론의 대가인 폴란드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 Bauman)이다. 그는 이론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수많은 주제들을 횡단하며 끊임없이 ‘지금, 여기’를 묻는다.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의 삶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포, 불안, 자유, 빈곤, 도시, 공동체, 진보, 유토피아 등에 관해 살펴보며 근대를 ‘유동적 근대(liquid modern age)’로 호명한다. 쉽게 말하면 ‘액체 근대’라는 말이다. 이것은 근대성이 가진 특성이 액체성, 곧 유동성이라는 말이다.

동시에 액체근대는 “언제 어디에서나 출렁이는 위험 앞에서 우리가 겪는 불확실한 불안에 붙인 이름이며, 그 위협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식 불능성에 붙인 이름이며, 그것에 대항해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판단할 수 없는 우리의 무력함에 붙인 이름”이라는 것이다.

지금 인류가 고체처럼 견고한 사회를 지나 액체(유동적) 근대를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벌써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 이미지, 곧 사진을 통해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 기성세대들의 사진인 양복입고 뻣뻣한 모습의 증명사진을 해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아우라(Aura, 발터 벤야민에게 있어서 아우라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느낌, 작품을 대하는 주체가 그 대상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종류의 거리이다)가 사라진다. 대중문화를 ‘대중기만의 도구’로 비판했던 미학자 아도르노(T. W. Adorno)와 달리, 벤야민(W. Benjamin)은 대중문화를 ‘문명의 진보를 위한 도구’로 본다.

따라서 벤야민은 사진 미디어를 통해 원본/복제본, 기술/마술, 현실/초현실 간의 관계에 관해 논하며, 특별히 사진에는 일반 회화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본다. 사실 베일에 가린 채 먼 곳에 놓여 있던 종교적, 권위적 및 전통적 아우라는 사진과 같은 ‘순간의 미학’에 의해 클로즈업되고 복제되어 만인에게 전시되고 공개될 때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가깝게 다가 온, ‘벗겨진 아우라의 새로운 현실’은 또 다른 신비체험을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일방적이며 폐쇄적인 전통적 아우라는 사라졌지만, 사진 미디어를 통해 도달한 경험 세계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현실과 추상 간의 긴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액괴와 아이들의 사진들이 바로 그 지점을 잘 포착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우만은 유동성을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아이들이 액괴를 재미있게 다루듯이, 동양의 노자(老子) 역시 유동성을 긍정적으로 본다. 강한 것들의 전성시대에, 힘과 강함의 세상에 유동성과 액체성, 유연성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하는 힘이 될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노자는 ‘道(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갓난아이’, ‘다듬지 않은 통나무’, ‘물’ 등과 함께 ‘계곡’과 ‘여인’을 소개한다. 도는 골짜기처럼 자기를 낮은 곳에 두고, 허허하고, 고요하고, 탁 트이고,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 품에서 모든 것을 길러내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사실 그 도(로고스)가 육을 입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아무튼 액괴와 같은 무정형의 물질인 물(水)에 관해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이다. 물은 자기 고유의 성질을 변질시키지 않으면서 어떤 형태로든지 변형되는 특성이 있다. 액괴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의 사진도 그렇다. 따라서 물은 대립, 갈등과 같은 폭력성과 반대되는 이미지를 갖는다. 액괴에 유해성분이 들어 있다고 말리고 또 “사진을 멋있게 찍어주면 안 돼?”라고 말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딸아이의 저 손놀림 속에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액괴 속에 깃든 노자의 생각과 막힌 담을 허신 예수님의 넉넉한 품도 읽어 본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동아대학교 철학생명의료윤리학과
전)경성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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