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 이혜경 사모 “내 삶은 주님 안에, 주님도 내 안에”
[믿음의 사람] 이혜경 사모 “내 삶은 주님 안에, 주님도 내 안에”
  • 김유수 기자
  • 승인 2020.11.27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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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서 복음 전도 기쁨 경험
남편 독려해 목회자의 동반자로
예배하는 삶으로 주님 인도 따라
“사모가 전도에 힘쓰면 메어있는
마음에서 벗어나 인정받을 수 있어”

목회자 사모 자리는 목회의 최전선이지만, 그림자처럼 보일 듯 보이지 않게 움직여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에 많은 사모들은 평신도보다 소극적이고 냉담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타지에서 남편의 목회를 뒷받침하며 묵묵히 가정을 지탱해 온 이혜경 사모(전 총신대 교수 황규명 목사의 아내)는 사모들이 교회에 기도생활과 전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는 삶의 모든 고단함도 성화(聖化)의 과정이라 고백하며 복음을 담은 전도지를 들고 나서는 전도가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고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사랑과 복음의 길’ 전도지를 들고있는 이혜경 사모. 김유수 기자

이혜경 사모는 양가 3대가 신앙을 지켜온 가정에서 태어났다. 새벽기도와 성경공부, 전도생활에 열심이었던 어머니의 신앙을 보고 그는 어려서부터 삶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의 삶을 살았다. 또한 어려서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찬양하며 합창단 활동을 했던 그는 주일이면 신학생들과 함께 4영리(四靈理)를 가지고 남산공원에서 매주 전도했다. 매주 전도를 나갈 때마다 빠짐없이 다섯, 여섯 명의 결신자를 맺었다. 그때 그는 복음을 전하는 자의 기쁨을 맛보게 됐다.

이혜경 사모가 대학교 3학년 일 때 출석하던 교회의 담임 목사가 위 수술을 받게 되어 황성수 목사가 그 교회에서 잠시 설교를 맡았다. 그때 대학부 부회장을 맡으며 성가대에서 봉사하는 그에게 황성수 목사는 월요일마다 법조인 기도회 반주를 부탁했다. 그는 기꺼이 봉사했고 그렇게 해서 황 목사는 그를 며느리로 점찍었다. 이후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신 대로 황성수 목사의 아들 황규명 목사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

 

시댁 어른들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남편이 법조인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이혜경 사모의 눈엔 남편이 법조계 일엔 별 관심이 없어 보였고 교회 일을 할 때 가장 즐겁고 열정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남편에게 “하나님 일을 할 마음이 있냐?” 물으니 “언젠가는 하려 한다”고 답했다. 이에 “나중에 하려면 차라리 지금부터 하면 어떻겠냐”고 하니 남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법조인이 아닌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는 부부의 결정에 그렇게 믿음이 좋았던 시부모도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부부를 주님께 보낼 준비를 했다.

이후 황규명 목사는 총신대에 입학했고 곧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미국 한인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며 미국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타지 생활은 낯설었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필요했지만, 이혜경 사모는 본인이 열심히 일하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 끝에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마음껏 기도할 수 있으며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세탁소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가게에 도착하면 빠짐없이 매일 아침 세 시간을 하나님께 예배드렸다. 하루하루가 감사 기도회였고 부흥회였다. 당시 건물 주인은 세탁소 위 2층에 살던 유대인 노인이었는데, 그는 3년을 월세 날짜 한번 어긴 적 없이 지불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했다. 매일 건물에 기도와 찬송의 예배 소리를 울려 퍼뜨렸다. 이에 유대인 건물주인은 그에게 마음을 열고 신뢰감을 갖게 됐고 후에 본인이 융자 보증까지 서주며 세탁소 건물을 그에게 팔았다.

시부모인 황성수 목사 부부와 찍은 사진. 이혜경 사모 제공

이후 학업을 마친 황규명 목사는 안수를 받고 교인들이 떠나 시무비도 지급해 줄 수 없는 교회에 청빙을 받게 됐다. 부교역자로 섬기던 교회를 떠나 황 목사 가정이 그 교회에 부임하려 하자 그동안 황 목사를 아껴주던 성도들이 너무 빈약한 교회이니 떠나지 말라고 부부를 말렸다. 그때 이혜경 사모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10명이 100명 되는 것이고, 좋은 교회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쪼그라든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만 중요하다”고 믿음으로 답했다.

그동안 세탁소를 운영했던 그 건물이 잘 정리되어 새로운 집을 구하는 일도, 세 아이들 학비도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이민교회는 단 한 사람도 억지로 끌고 올 수도 없는 환경이었지만 부임 후 육 개월이 지나자 12명 정도의 성도뿐이었던 교회에 자연스럽게 성도들이 하나둘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이혜경 사모는 “그때 우리는 기도한 일밖에 없다. 하나님이 보내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했다”며 “내 삶은 주님 안에 있고, 주님도 내 안에 계시며 항상 세미하게 나를 잘 돌보고 계신다”고 간증했다.

그렇게 필라델피아 교회에서 13년간 목회했던 황 목사는 이후 자신이 수학했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교수로 임용됐다. 그때에도 이혜경 사모는 하나님의 그 세미한 섭리를 경험했다. 앞서 그가 세탁소에서 일할 때, 주말이면 일주일간 모은 돈을 모두 남편인 황 목사에게 맡겼다. 아이들도 있었고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황 목사는 그 돈을 아끼지 않고 가난한 신학생들을 즐겁게 대접했다. 그런데 이후 신학교에서 황 목사를 교수로 임용 할 때 학교에서 동문들에게 황 목사의 평판을 물었는데 모두가 그의 넉넉한 품성을 칭찬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한 이혜경 사모는 “우리는 조금밖에 섬기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큰 덕을 봤다. 처음에 남편이 왜 저렇게 돈을 헤프게 쓰나 생각했는데 그때 우리 남편에게 남을 대접하는 귀한 은사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 부인 모임에서 그동안 목회 사역이 얼마나 힘들었나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나는 그 생활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그리워하고 있다. 힘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너무 누렸다”고 답했다.

미국 신학교에서 성경적 상담을 연구하고 가르치던 황 목사에게 어느 날 총신대에서 한국에도 성경적 상담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당시 한국에 성경적 상담을 전공한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황 목사는 앞 뒤 재지 않고 본인이 한국에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때까지 유색인종 교수가 없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교수로 귀하게 쓰임 받았던 황 목사였기에 주위의 모든 교수들은 물론 학교 총장까지도 황 목사의 귀국을 말렸다. 이혜경 사모에게도 남편을 만류해보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남편의 결정을 듣고 그의 마음엔 반대하는 마음보다 미국에서 마음껏 할 수 없었던 전도를 다시 할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감이 가득 찼다. 그렇게 황 목사는 한국에 귀국해 총신대 초빙교수로, 사랑의교회(당시 옥한흠 목사) 협동목사로 섬기게 됐다. 이혜경 사모에게는 “옛날 남산에서처럼 전도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교수 아파트에 짐을 내려놓은 뒤 매일 고속터미널에 나가 한국 시정에 맞게 직접 만든 ‘사랑과 구원의 길’ 전도지를 들고 복음을 전했다.

이혜경 사모는 상처 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삶을 살아온 비결로 절대로 남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는 “아무리 부당한 일이 있어도 바로 하나님께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늘 묻는다. 내 밖의 소관은 하나님만 다루실 수 있지만, 하나님께 내 잘못을 물으면 내 안의 것은 내가 바꿀 수 있다”며 “내가 5%의 원인 제공만 했어도 내 잘못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부족함을 알려주시고 회개로 이끄신다. 그 후엔 모든 것이 하나님과 나의 잔치요, 하나님과 춤추며 기쁘게 나아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 사모 아카데미에서 사모들의 전도 훈련과 성경적 상담에 봉사해온 이혜경 사모는 우리나라에 와서 사모들의 열정적인 전도생활을 독려해 왔다. 그 자신부터 교회 성가대, 정착자 모임, 전도단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상담을 공부해서 상담사 1급 자격증을 받고 10년 이상 상담 봉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많은 교역자 사모들은 남편이 본인에게 신경 쓰고 잘해주길 바라며 그것이 없으면 소외감과 우울감을 느낀다. 그러나 사모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사역을 개발하면 목사와 교인 모두가 긍정하고 좋아한다”고 설명하며 “사모 중에 전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 사모들도 전도를 개발하고 전도에 힘쓰면 목사에게 전적으로 메어있는 마음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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