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 주는 것이 행복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여기는 목사. 매일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동분서주하는 남편의 모습을 매력으로 꼽는 사모.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섬 마을 분교를 자원해 들어간 아들. 자비량으로 구제를 못해 안달이 난 성도가 있어 화제다.
전라남도에서도 행정구역상 최남단에 속하는 고흥군 동강면 죽암리.
바닷가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죽암등대교회가 있다. 김병채 목사(66)가 이곳에 부임해 온지도 벌써 19년 째에 접어든다.
부임 당시 교인은 20명이 출석하던 작은 교회. 지금은 당시 교인들 대부분이 소천했거나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3명만 남았다. 그리고 비어진 자리를 새로운 성도들이 채워 현재 35명이 출석한다.
전형적인 시골의 작은 교회다. 외형적으로 볼 때 다른 교회의 보조로 운영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19년 전 이곳에 부임한 이후, 김 목사의 고집에 따라 보조를 받는 교회에서 보조를 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일까?
“저희는 대형교회 하나도 안부러워라. 물론 목사님들 다 좋으신 분들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목사님이당게요. 그러니 무조건 아멘이지라”
벌써 15년째 회계를 맡고 있는 김성식 집사의 말이다.
처음 회계를 하게 되었을 때 재정은 적자였단다. 장부를 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김 집사. 그러나 김 목사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함께 하면서 곧 재정의 어려움이 풀리는 기적을 보게 됐다고 전했다.
양명수 집사는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러니까, 다른 교회에 비해 헌금이 많이 나오지라”
양 집사는 김목사와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낸 고향 친구다. 15년 전 친구 목사 교회에 출석했던 양 집사는 매일 울면서 다녔다고 전했다.
“처음 은혜를 받았는데, 몇 달을 울고 다녔소. 챙피한지도 몰러. 그냥 계속 울고 다녔응게”
지난 19년간 김 목사의 사역이 성도와 지역주민의 마음을 움직였음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김 목사는 ‘퍼주는 사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30세가 될 때까지 그는 무신론자였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 그에게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병든 어머니였다.
“실제로 묘 자리까지 알아 봤당게요. 그때 돌아가실 줄로만 알았지라” 정유순 사모(61)의 말이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김 목사는 자신도 모르게 기도를 했다고 전했다.
“하나님, 참말로 계시다믄 평생을 교회에서 살믄서 일하는 것을 낙으로 산 어머니 좀 살려주쑈. 살려만 주시믄 나가 주님 일만 할라요”
김 목사의 기도가 간절했을까? 병든 어머니가 언제 아팠는지 모를만큼 회복이 되었다. 죽음의 위기에 선 어머니의 회복이 김 목사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은혜를 받은 김 목사는 가난하게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또 가난한 목회를 하고, 섬이나 시골 등 가난한 곳으로 찾아가겠다고 결단했다. 지금의 아내 정 사모에게도 “만약 목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워지면 리어커를 끌며 생활할 수도 있을 텐데, 그 때 뒤에서 밀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을 정도로 강하게 마음을 먹었던 셈이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정 사모는 그것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었겠느냐고 되물었단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정 사모는 김 목사의 사례비를 받아본 적이 없다. 정 사모가 받은 것은 일정 금액의 헌금뿐이었으니, 실제로 정 사모의 손에는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죽암등대교회 부임하기까지 김 목사는 세 곳의 교회에서 어려운 이웃을 섬겨왔다.
“어려우면 무조건 도와야제. 뭣이 중하것소. 결국에는 모두가 하나님 자녀 아니겠어라”
김 목사에게 사례비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 지출되는 비용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사용해왔다. 지금 당장 급한 병원비가 필요한 사람, 자녀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학비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사람, 쌀이 없어 궁핍함 가운데 있는 모두에게 사용되어져야 할 하나님의 사역으로 여긴다.
어려운 곳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찾아가는 김 목사. 그에게는 어려운 곳만 보이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언제나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단다.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돈이 모여진다. 또 어느 정도 모여지면 신기하게도 도움을 줄 곳이 생겨난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든지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번은 교인 수가 십여명 정도인 교회가 건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노회와 시찰회, 여러 지역에서 도움의 손길이 있었지만, 마무리 공사를 두고 지원이 끊겼다. 해당 시찰회에서도 도저히 도울 수 없는 상황. 부족한 비용은 2천5백만원. 김 목사는 그 소식을 전해 듣고 흔쾌히 도움을 주었다.
사실 그 비용은 벌교 읍내로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모은 종잣돈이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이 딱 맞잖에요. 그것이 하나님이 그 교회 주라는 신호지 않겄어요? 그냥 줘 버렸어요. 그럼 된거지”
이런 김 목사의 노력들이 열매를 맺었다. 35명이 출석하는 작은 시골교회. 그 곳에서 교인들은 지역을 12개 구역으로 나누어 교인과 지역주민들의 어려움을 살핀다. 또 교회에 형편을 알리고 교회차원에서 아낌 없이 지원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1년 예산 8천만원 중에 4천만원이 이렇게 사용된다. 또 교인들도 김 목사를 닮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프로그램이 없어라. 하나님 앞에서 완전 자유제. 제가 만난 예수님을 저들도 만나서 살면 되어라. 그람 돼요”
오직 구제와 헌신, 섬김의 삶을 살아온 김 목사 부부. 그 모습을 그대로 닮은 자녀들과 성도들. 죽암등대교회는 오늘도 지역사회에 빛을 비추며 복음을 세워가고 있다.
죽암등대교회 전남 고흥군 동강면 죽암안길 80-5 전화 061-833-3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