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전제되는 통일운동
평화가 전제되는 통일운동
  • 김은혜 교수
  • 승인 2020.11.1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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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가장 큰 원죄는 분단이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강대국의 쌓여서 소리 내지 못하고 민족이 서로 경계하고 반목하고 증오하고 외면하며 살아온 세월이 길고 아프다. 특별히 분단은 남과 북의 삶을 동일하게 분열과 폭력의 문화를 정당화시킨다는 면에서 한국 현대사의 원죄처럼 깊게 모든 한국사회의 분열의 뿌리이다. 이렇게 분단 사회는 단지 상이한 체제가 공존하는 것을 넘어 언제든 긴장과 갈등, 전쟁을 야기 시킬 수 있는 반평화적 사회이며, 양극화된 정치 대립과 이데올로기 조장을 통한 계층 간, 세대 간, 이념 간 분열을 심화시키는 불안정한 사회이다.

이렇게 민족분단의 현실로부터 야기되는 비인간화, 비민주화, 정치적 억압,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차별, 생태계의 파괴 등을 고려할 때 통일에 대한 무관심은 반 신앙적이다. 한편 이 어두운 그림자는 남북갈등뿐만 아니라 어쩌면 그것보다 더 지독한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며 궁극적으로 민족 공동체의 통일평화를 향해 연합하는 것을 저해하는 폭력적 갈등 문화를 형성시킨다. 군사주의, 군대문화, 힘의 대결, 무기경쟁, 냉전 이데올로기의 극단적 대립의 근원적 문제이며. 아마도 우리 민족에게 허리 잘린 이 분단은 가장 깊은 공동체의 트라우마다. 필자도 어릴 적 고무줄놀이를 하면서“무찌르자 공산당”이란 노래를 불렀다.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분단되지 않은 한반도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이미 허리가 동강 난 우리나라가 마치 정상인 것처럼 일상의 삶을 큰 불편 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정치적, 이념적 통일이 아주 천천히 온다 해도 민족의 화해와 치유 그리고 용서와 사랑의 통일은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띠로 이미 묶여진 민족 공동체의 희망이 사랑과 화해의 신앙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손을 내밀고 평화를 위해 일한다면 통일의 과정에서 반듯이 보장되어야 할 그 평화의 공존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 통일, 마음의 통일, 그리고 부드러운 통일과 같은 점진적 통일 혹은 단계적 통일은 어떠한 이념이나 대립도 넘어설 수 있다. 화해와 평화의 마음은 누구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친북도 종북도 아니며 예수의 길, 십자가의 길 화해의 길, 그리고 진정한 평화의 길을 믿음 위에서 확고히 할 수 있어야 한다. 민족이 서로를 악마화하거나 원수로 보지 않고 적대적 감정을 해소하고 흐릿해지는 민족의 동질성을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사랑의 불씨를 지피는 화해를 통한 평화의 길 위에 서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물리적 통일이나 정치적 통일은 어쩌면 더 큰 민족의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 평화통일을 향한 첫걸음은 민족이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를 실현하는 길에서 만날 때 시작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구체적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은 ‘미리 온 통일’이라 불리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목소리에 교회가 귀를 기울이고 대화의 장으로 그들을 초청하여 함께 토론하며 통일의 주체로서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상호 차이에 대해 발견하게 되고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가치관에 대해서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맥락을 고려한 대화 선교를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애매한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평화통일’을 줄기차게 입에 달고 살지만 필자는 그 ‘평화’가 어떤 평화인지 정확히 배우거나 들은 기억이 없다. ‘평화적 공존’이냐 ‘적대적 대결’이냐의 양 갈래 길뿐이라고 하면 우리는 당연히 ‘평화적 공존’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평화 없이 통일 없고, 통일 없는 평화가 없기 때문이다. 평화통일의 실현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상대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서로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정권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일관되고 분명한 원칙과 정책이 절실하다.

중세의 철학자 에라스무스는 평화를 살 수만 있으면 돈으로 사라고 말했다. 그 돈은 전쟁의 손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통일은 민족사적 대업이다. 정부는 유한하지만 민족문제는 영원하다. 적어도 문화적 통일교류에서는 이념과 체제를 넘어 일관성 있게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실현시켜야한다. 한국의 안보는 미국과의 관계, 경제는 중국과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다. 외세의 지원과 이해를 구하면서도 의존하지 않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과 자주를 실행하기 위하여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이 평화가 정착되어 막대한 국방비를 대폭 감축할 수만 있다면 우리사회는 훨씬 더 선진국가의 변모를 갖추어갈 수 있다. 교회는 분단의 현실 속에서 이 땅에 평화를 갈구하는 모든 사람들과 연대하여 평화 통일의 비전,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특별히 이것은 ‘평화의 영성’(spirit of peace)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종교가 폭력이 일상화된 분단 구조 속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공헌 할 수 있는 활동이 된다. 이 평화의 영성의 중심에는 작은 자들과 함께함으로 섬김의 삶을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행적이 존재하며, 구체적으로는 ‘산상수훈’에 응집되어 있다. 산상수훈에 등장하는 팔복은 참된 평화를 꿈꾸며 폭력과 박해에 맞선 사람들로 하여금 평화와 화해의 사도가 되도록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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