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 표명민 장로(동막교회 원로), “응답받은 기도를 용기 있게 실천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뤄주실 것”
[믿음의 사람] 표명민 장로(동막교회 원로), “응답받은 기도를 용기 있게 실천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뤄주실 것”
  • 김유수 기자
  • 승인 2020.10.14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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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시무한 동막교회의 개척자, 순교자 기념비 옆에서 선 표명민 장로. 김유수 기자 

 

평생 ‘남선교회 맨’으로 헌신하며

중국, 북한, 러시아에 교회 건축

평신도교육대학원 신학교육으로

믿음의 확신 갖고 신앙 위기 극복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도하셨으니

앞으로도 끝까지 인도해주실 것”

하나님이 부르실 때 뭐 하다 왔냐고 물으시면,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하나님 이름으로 교회 세 개 짓는데 봉사하고 왔습니다’하고 우물거리면 그래도 조금은 좋아하시지 않을까 한다.

 

정저지와(井底之蛙), 표명민 장로는 이 네 글자를 써 보이며 지금까지도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했다. 표 장로는 은퇴 후 ‘내려놓음’을 깨닫고 세상 것을 내려놓은 뒤 성경 묵상에 빠져 하나님 말씀에 모든 시간을 쏟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로 이민 갈 준비 중인 표 장로는 내려놓음이 준 선물인 백발을 반짝이며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성경 1,189장 속 수천 년의 이야기를 흥겹게 술술 풀어냈다.

전남 신안 출신인 표 장로는 스물아홉에 과부가 되신 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교회도 없는 시골 동네였지만 분유를 나눠준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20리 길을 걸어 처음 교회에 나갔다. 신앙과 열정이 가득했던 젊은 시절에 그는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과 같이 농촌계몽 운동에 온 힘을 다했다. 낮에는 땅을 일구고 밤에는 야학에서 배우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주산과 영어, 한자를 가르쳤다. 그런데 가뭄으로 흉작이 들어 비료값을 빼니 한해 농사에서 빚밖에 남지 않았다. 서울에서 논 세 마지기 살 돈을 모아 다시 농촌운동에 힘쓰자는 생각으로 23살에 낯선 서울에 향했다. 결국 서울에서 아내를 만나 논 세 마지기 대신 세 아들을 얻었다.

표 장로가 서울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하려 했을 때 아내가 동막교회(곽재욱 목사)를 지키다 순교한 조경의 장로의 손녀임을 알게 됐다. 만일 아내가 그를 따라 다른 교회로 떠나면, 동막교회에서 순교자의 대가 끊어지는 상황이었다. 외고모할머니가 한국 최초의 여성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였던 표 장로는 고민 끝에 동막교회로 신앙의 터를 옮겼다. 이미 집사 직분을 받았을 정도로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순교자 정신을 기리러 옮긴 당시 동막교회에선 한참을 그에게 서리 집사 직분조차 주지 않았다. 물론 표 장로가 교회에서 그의 신앙과 열정을 인정받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만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동막교회에서 장로 직분을 받아 30년 넘게 동막교회에서 시무했다.

 

이후 예장통합 남선교회전국연합회(이하 남선교회)에서 활동했던 표 장로는 동료 장로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연변 연길교회 건축을 위한 모금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시각장애인 류두만 선교사의 간절한 요청으로 시작된 건축으로 연길교회는 5,000명을 수용하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조선족 최대의 대형교회로 완공됐다. 중국에 연길교회가 완공되고 나니 그 소문을 듣고 이번엔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하 조그련)에서 낡은 평양 봉수교회를 재건해 달라고 요청했다. 표 장로는 “조그련 입장에선 남선교회에서 중국 연변에 그렇게 큰 교회를 지었다고 하니, 우리가 엄청나게 크고 부유한 단체로 보였나 보다”라고 웃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교단에선 우선 봉수교회 현황을 살펴보기 위한 실사단을 구성해 북한에 방문했다. 그런데 실사단이 낡은 봉수교회에 도착하자 조그련 측에서는 마치 곧 공사를 시작할 것처럼 벌써 교회를 해체하고 있었다.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돌아온 이후 표 장로는 봉수교회 건축위원회 단장을 맡았고 동료 장로들과 다시 전국을 돌며 모금 운동을 다녔다. 표 장로는 내심 남한에서 자리 잡은 북한 출신의 부유한 성도들이 도와줘 수월하게 모금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시달렸던 이북출신 성도들은 북한이라면 학을 뗐고, 북한교회도 전혀 믿지 않아서 북한에 교회를 지어준다는 사실 자체에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겨우 공사를 시작하게 된 이후에도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북한은 물자 사정이 너무 열악해 남한 기준으로 제대로 된 건물을 지을만한 시멘트, 스티로폼 등의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할 수 없었다. 결국 못 하나, 벽돌 하나까지 모두 인천항에서 남포항으로 실어날라 교회를 지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해 남북관계가 급격히 경색되어 몇 년간 완공이 지연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교회가 완공되고 한국교회 대표들이 완공식에 참여하려 하니, 국내 항공사에선 하나같이 북한에 피랍될 수 있으니 비행기를 띄워줄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북한 측에선 방북단을 위해 고려항공 비행기를 보냈다. 공항에서 북한 비행기에 오른 방북단은 출발 전 기장에게 “남한 교인들은 먼 길 여행 갈 때 기도를 하고 출발하는데, 다 같이 기도하고 출발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기장은 “북한에 가서 비행기에서 기도했다고 자랑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고 답했다. 그렇게 출발 기도를 드리고 이륙한 북한 비행기는 기도 드리고 남한에서 북한으로 출발한 첫 비행기로 기록에 남았다.

북한에서 보내준 고려항공 비행기에서 내리는 표명민 장로
북한에서 보내준 고려항공 비행기에서 내리는 표명민 장로
평양 봉수교회 앞에 선 표명민 장로와 한국교회 방북단
평양 봉수교회 앞에 선 표명민 장로와 한국교회 방북단

이후 표 장로가 남선교회 67대 회장에 있을 때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남선교회 창립 90주년 기념 교회가 완공됐다. 그렇게 평생을 ‘남선교회 맨’으로 살며 북방의 공산권 세 나라에 세 개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한 표 장로는 그 공로로 세계CEO전문인선교회(대표 박형렬 목사)가 수여하는 전문인선교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장로들 가운데 못자리 세 마지기 짓겠다고 서울로 올라온 나를 통해 어마어마한 교회를 짓게 하셨다. 모든 것을 지나 보니 내 스스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감당하게 하셨다”고 회고했다. 후배 장로들에게는 “인생에서는 좋은 친구와 이웃이 필요한데 하나님께선 내게 훌륭한 분들을 러닝메이트로 세워주셔서 큰일을 감당하게 하셨다”며 “선교에 있어 하나님께 응답받은 기도는 일단 용기 있게 실천하길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뤄주신다”고 격려했다.

표 장로도 35세에 신앙의 위기를 겪었다. 아들 셋을 낳고 교회 장로가 될 분위기였는데, 아이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믿음의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고민하던 그의 위기를 하나님은 평신도교육대학원에서 받게 된 신학교육으로 해결하셨다. 그는 “그때 성경에 깊이 들어가며 창세기를 통해 신앙의 확신이 생겼고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지게 됐다”며 “40이라는 젊은 나이에 장로가 됐는데, 하나님께선 멍에를 빨리 씌우면 믿을 것 같으니 뜻이 있으셔서 장로 직분을 맡게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세상과 신앙, 말씀과 신비의 균형을 잡기 위한 평신도 신학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한 그는 이후 평신도교육대학원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 표 장로는 은퇴 후 성경 묵상의 복을 받아 세상 모든 것을 내려놓는 사업을 하고 있다. 평소 은퇴장로들에게도 “하나님 부르시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로 이민 가자. 그곳에는 십 원한 장 가져갈 수 없으니 말씀만 준비해 천국 이민을 준비하자”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는 “오래된 것을 알면 학문의 깊이가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모두가 우물 안 개구리다.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겸손하게 생활해 간다”며 “하나님이 부르실 때 뭐 하다 왔냐고 물으시면,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하나님 이름으로 교회 세 개 짓는데 봉사하고 왔습니다’하고 우물거리면 그래도 조금은 좋아하시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면 장로들과 성경스터디를 계획하고 있다.

표명민 장로는 "기독교인 원로들이 중용의 자세로 우리 아들들에게 시대를 물려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유수 기자

북한과 중국, 러시아라는 공산권 국가에서 교회건축과 선교에 힘써온 표명민 장로는 보수와 진보가 너무나도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시대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기독교인 원로들이라도 극단을 중화 시켜 모든 국민을 안을 수 있는 중용의 자세로 우리 아들들에게 이 시대를 물려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앙의 후배들에게는 “핵을 머리 위에 두고 있는 입장이지만 하나님이 한국을 공산화 시키기지 않으시리란 신념과 우리가 북한의 전쟁 위험을 이겨낼 수 있는 민족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러니 북한을 멸망하는 국가로만 보지 말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기독교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갈지 희미하지만 코로나가 끝나는 날 하나님이 더 발전된 국가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땅을 헬조선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망해가는 나라가 아니라 희망을 보고 갈 수 있는 나라라고 믿는다”고 응원을 전했다.

그는 하늘나라로 이민 갈 때를 기다리며 믿음의 자손들이 믿음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를 지금까지 인도하셨으니 앞으로도 끝까지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개척자 모삼열(사무엘 무어) 선교사와 순교자 조경의 장로 기념비  
개척자 모삼열(사무엘 무어) 선교사와 순교자 조경의 장로 기념비  
동막교회 복도에 전시된 모삼열 선교사와 순교자 조경의 장로 사진  <br>
동막교회 복도에 전시된 모삼열 선교사와 순교자 조경의 장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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