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화가들이 만난 아브라함의 제사④ 모리아 산의 침묵과 그윽한 믿음의 윤곽
[전문가 칼럼] 화가들이 만난 아브라함의 제사④ 모리아 산의 침묵과 그윽한 믿음의 윤곽
  • 심광섭 목사
  • 승인 2020.09.2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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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는 유화보다 드로잉과 에칭(etching, 동판화)에서 인간의 내면을 더 예술적으로 담백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⑴동판화, 1645년, Etching, 15.7 x 13 cm, 암스테르담

동판화, 1645년, Etching, 15.7 x 13 cm, 암스테르담
동판화, 1645년, Etching, 15.7 x 13 cm, 암스테르담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 아브라함 이야기 전체의 긴장이 극에 달한다. 많은 후손을 약속했던 하나님의 언약은 이제 수포로 돌아가는 것인가?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신뢰는 흔들리는 것 같지 않다. 내적 갈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성경에는 아브라함의 내적 감정의 변화를 읽을 만한 단 하나의 장치도 나타나 있지 않다. 아브라함은 생명과 죽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침묵은 언어의 하나님보다 깊고, 이스라엘의 존재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의 손에 달려있을 뿐이다.

에칭에서 아브라함과 아들은 이미 모리아 산 위에 도착해 있다. 아브라함 앞에는 제단이 있고 뒤에는 화로를 놓았다. 이삭은 아무런 의심이 없이 장작단을 손으로 끌어안은 채 땅에 대고 있다. 뒤쪽의 화로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아브라함은 옆구리에 희생제사에 필요한 큰 칼을 차고 있다.

여기서 화가는 성서가 말하지 않은 것을 이야기와 상상을 통해 풀어간다. 그것은 부자간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상상력으로는 말하기 어려운 대화다. 아브라함은 이제! 내 아이 외아들 이삭에게 그것!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눈 사이 꼭 중간에 위를 가리키고 있는 아브라함의 손가락이 있다. 손가락은 무엇을,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준비하시느니라.” 다른 손으로는 제 가슴을 짚고 있다. 하나님은 가슴 안에 계신다는 것일까. 가슴(=마음)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표시일까. 자신의 명령을 결행하려는 하나님의 비통한 심정(心情)에 공감하는 것인가?

그러나 아들에게는 이 약속과 신뢰가 공허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듯이 들린다. 아이는 아직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듣고 있기는 하지만 얼어붙은 몸처럼 꼼짝 않고 서서 거의 넋이 빠진 모습으로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다. 어떤 반응이나 흥분을 들어낼 만한 움직임이란 조금도 감지되지 않는다. 손도 가만히 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어두워진다.

주의 깊은 감상자라면 이삭의 배경에 피어오르는 어두움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사나운 낭떠러지 끝에 바싹 서 있지 않은가! 어두움이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순간 위험과 절망을 뒤에서 살금살금 긁어먹고 있다. 렘브란트는 이 동판화(Etching)에서 바로 이 내적 긴장을 성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⑵소묘(Drawing), 1655년

소묘(Drawing), 1655년
소묘(Drawing), 1655년

성경의 이 주제가 화가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동판화나 유화는 극히 공들여야 하는데 비해, 이 소묘는 렘브란트가 아마 그 자리에서 단숨에 그려냈을 것이다. 관람자는 장면을 뒤에서 비스듬히 보게 된다.

그렇지만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바닥의 길이는 짧다. 이삭은 무릎을 오므리고 제단 뒤에 누워있고 다른 쪽 끝으로 머리가 나와 있다. 희생을 집행하기에는 오히려 이것이 더 편리한지 모르겠다. 목이 저절로 젖혀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향한 천사의 움직임은 몇 가닥 비스듬한 선으로 그려져 있고, 천사는 아브라함 머리에 손을 얹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더 늙어 보이는 아브라함은 아직 그것을 못 느끼고 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끔찍한 일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릎이 구부정하고 품이 떨리고 있는 게 눈에 선연하다. 이 일을 치르고 나면 이 사람은 필경 폐인(廢人)이 될 것이다.

시간은 항상
그늘이 깊다.
그 움직임이 늘
저녁 어스름처럼
비밀스러워
그늘은
더욱 깊어진다. - 정현종, <시간의 그늘>(부분)

⑶동판화, 1655년, Etching, 15.6x13.1cm, 암스테르담

동판화, 1655년, Etching, 15.6x13.1cm, 암스테르담
동판화, 1655년, Etching, 15.6x13.1cm, 암스테르담

사건의 같은 순간을 또 다시 같은 해에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장면의 외양부터 내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전혀 다르다. 이번에는 이삭이 무릎을 꿇고 마치 어린 양처럼 마음으로부터 순종하는 자세로 아버지 품에 안겨 있다.

아브라함은 자비로운 손으로 그를 감싸주는 뜻에서 손으로 눈을 가려주면서 동시에 아이 머리를 자기 가슴에 끌어안는다. (1635년의 유화에서 손바닥으로 눌러 덮던 폼과 얼마나 다른가!) “사랑은 항상 늦게 온다. 사랑은 항상 生 뒤에 온다.”(정현종)

아비 얼굴의 표정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때 하늘이 열리며 천사가 그에게 바싹 다가와 있다. 아브라함은 더 이상 자신이 하던 일을 진행할 수 없음을 직감한다. 다른 그림에 비해 천사가 어찌나 가까이 있는지 노인과 함께 거의 하나의 상으로 융합된다. 뒤에서 노인을 두 팔로 그토록 꼭 껴안고 있는 것이다.

위로부터 비스듬히 내려오는 빛줄기는 바로 아브라함의 팔을 붙잡고 제어하는 천사의 손을 비추고 있다. 다른 손으로는 아브라함의 손을 이삭 얼굴에서 벗기려고 하고 있다. 이제는 이삭의 눈을 감싸주는 행위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천사의 발현에서 아브라함을 에워싸는 것은 순순한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이다. “그렇다면 생은 항상 사랑 뒤에 온다.”(정현종)

심광섭 목사 전 감신대 교수(조직신학/예술신학)예목원 연구원
심광섭 목사 예술목회연구원 공동대표(조직신학/예술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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