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현 미국 사회를 향한 예언적 견해
[예술과 목회] 현 미국 사회를 향한 예언적 견해
  • 덕 헤인즈
  • 승인 2020.09.12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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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성서적 개념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예레미야서에서 선지자는 우상 숭배, 탐욕, 거짓 선지자, 나라의 도움을 애타게 구하는 백성의 방치 등을 지적하고 비난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행동을 주장합니다.

대변의 대가는 그를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과 형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안에서 타오르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를 침묵할 수 없게 만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언어는 물론이고 거리에서의 공공 행위를 통하여 보는 이들을 놀랍게 하였고 듣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길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의도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한 것이었지 충격 자체를 위한 시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초점은 하나님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로인해 그는 종종 인기는 없는 구체적이고도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 그를 반대하는 이들 또한 하나님을 대변하겠다고 나서서는 당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이들의 귀에 달콤한 관점을 간절히 선언했습니다.

미국 합중국 역사의 현시점은, 사회가 깊이 갈라져 있으며 종교 단체에도 깊은 분열이 존재합니다. 예레미야가 한 관점을 지지하고 그의 반대자들이 다른 관점을 지지했던 것처럼 다른 견해를 가진 기독교인들은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지요.

예술가로서의 저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삶을 미국의 분열과 관련하여 보고, 예술가로서의 예언적 진술을 현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부름에 응답하는 것인가에 관하여 고민을 하지 않을 수 가 없었습니다. 보시는 작품은 그 고민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 입니다.

예언의 주제에서 예술 작품으로 옮겨가는 것은 도약처럼 보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예언적인 삶 중에는 공연 예술을 바라보는 것 같은 사건이 더러 있었습니다. 바빌론의 침략을 경고할 때 그는 멍에를 쓰고 길거리에서 다가오는 위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의 메시지의 요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예레미야는 도자기를 부서뜨리기도 합니다. 예레미야서의 글은 생생한 이미지와 은유에 의지하는 시적인 문체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13 장에서, 믿는 자와 신과의 관계는 사람의 아랫몸에 달라붙는 속옷처럼 가까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할례 받고 기도하고, 헌금내고 하는 것이 신자의 본분이요 그리함으로써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믿음인 반면에, 예레미야는 믿음의 외적 상징이 하나님의 보호를 보증한다는 신학을 무시합니다.

그 대신 그는 올바른 행동과 하나님을 한결같이 따르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선포합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며 주어진 모든 의식을 행하고 스스로를 옳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예레미야의 목표였습니다.

현대 미국의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인들이 안일해 하고 있지는 않는가를 살펴봅시다. 미국인들 스스로는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나 그 생각이 참인지 아니면 그 믿음을 고쳐야만 하는 것들은 없는지 살펴봅시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최근 미국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위한 정의 문제가 최전방에 와 닿아있습니다. 조지 프로이드의 사망으로 인한 시위는 단 한 건의 경찰 위법 행위에 대한 정의의 필요성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불만 목록에는 경찰의 잔인함, 경찰의 군사화, 고용의 불균형, 부, 교육, 주택 소유, 의료 및 감옥/감금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는 체계적인 인종주의 형태를 취합니다. 체계적인 인종주의는 개인의 인종주의와 다릅니다.

후자는 개인이 다른 인종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거나 그로 인한 밖으로의 표현입니다. 체계적인 인종주의에서의 제도 구조는 한 인종을 다른 인종보다 선호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은 “좋고” 어느 지역은 “나쁜” 지를 결정하는 레드 라이닝 (redlining) 이라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흑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은“나쁜” 것으로 표시되고 백인이 사는 지역은 “좋은” 것으로 표시되었습니다. 이 레이블은 은행이 주택 융자 및 보험 비용 및 가용성에 대해 고려할 때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백인의 주택 소유는 흑인의 주택 소유를 크게 초과했으며, 이는 레드 라이닝 관행이 중단 된 후에도 오래 지속되는 부의 불균형을 초래했습니다. 교육, 건강관리, 고용 및 투옥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기관에 비슷한 제도가 만들어졌고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부당한 시스템을 계속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은 백인들의 안일함과 자기만족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인종 차별을 지지하지 않는 백인 미국인 역시 백인을 선호해 왔고 계속 선호하는 시스템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체계적인 인종주의의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아프리카 계 미국인은 400 년 전에 미국에 처음 도착했습니다. 인종적 불의의 역사는 학교 교과서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 관한 이야기는 미덕만을 보여 주지 추악한 면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역사가들은 종종 국가적 자부심을 불러 일으키거나 앞으로만 전진하는 이야기만을 홍보합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시대의 민권 운동은 인종적 불의의 종지부를 짓는 에피소드로 표출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전 시대의 명백한 인종주의는 현상 유지를 위한 보다 미묘한 수단으로 빠르게 대체되었습니다.

닉슨은 “법과 질서” 라는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을 사용하여 미국 남부 주들의 백인들의 투표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레이건(Reagan)은 ‘개 호루라기(dog whistle)’ 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겉으로는 도시 범죄와 복지 속임수를 막는다는 정책을 내세웠으나 간접적으로 대중이 흑인들을 연상케 하는 흑인 공격법 이었습니다.

아버지 부시의 승리는 백인들에게 흑인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범죄에 대한 광고 때문이었습니다. 클린턴은 공화당을 이기기 위하여 대량의 투옥을 확대하는 범죄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개인적인 인종 차별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체계적인 인종 차별이 번성하였던 것 입니다.

인종의 불의에 대한 현재의 분노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경찰의 책임성, 위험한 경찰 관행에 대한 제한 및 경찰의 개혁 또는 재정 탕감에 관한 요구들입니다. 일부 불쾌한 조각상과 상징들이 제거되었거나 새로운 이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체계적인 인종주의를 근절하고 심지어 인종적 불의로 인한 역사적인 수많은 권리 침해에 대한 현금 배상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불행히도, 가장 효과적이지 않은 피상적인 행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변화에 관심이 없고 많은 사람들은 본인들 스스로는 인종 차별을 안한다는 개인 인종주의 뒤에 숨어 제도적 인종 차별주의와의 정면 대립을 피합니다.

미국 역사에서 불쾌한 주제를 교과서에서 계속 다루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처럼 뿌리 깊은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용기와 체력이 미국인에게 있겠습니까? 이런 경우에, 국민들로 하여금 이 어려운 변화를 주도케 하기위해서는 예언적인 목소리의 끊임없는 허란(hurrang)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실려진 작품은 아시아계 미국인 예술가 펠리 시아 치아 오 (Felicia Chiao)가 만든 유사한 작품을 본 후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녀의 작품은 Black Lives Matter 운동에서 아시아계 미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간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호랑이와 검은 표범이 서로를 감싸고 있는 강력한 이미지였습니다. 그 작품을 보며 나는 그녀의 이미지에 백인을 포함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러나 오랜 인종 불의 역사와 함께 그것을 물리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백인들을 생각할 때 긍정적인 백인의 이미지를 제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필요로 하는 은유로 잠에서 깨어나는 곤충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선지자 예레미야처럼 두드러진 용기와 인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그에게서 영감을 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Doug E L Haynes는 위스콘신 주 매디슨 시에 사는 예술가/화가입니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의 기간 동안 회화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헤인즈의 작품은 그의 웹 사이트www.emeraldstudio.com과 Instagram: www.instagram.com/wisdomcrumbs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번역인 이정자는 그리스도 연합 교회(United Church of Chirst)의 안수목사이며 메드슨시 교육청 소속 이중 언어 자료 전문인으로 현재 쇼우드 힐 초등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덕 헤인즈(Doug E L Haynes)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덕 헤인즈(Doug E L Haynes)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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