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따뜻하다'
'별들은 따뜻하다'
  • 신용관 시인
  • 승인 2018.04.18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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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솟아나는 삶과 신앙

나는 오랫동안 신학을 공부해 왔지만, 여전히 아마추어 신학자이다. 나는 지금까지 상담을 공부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마추어 상담가이다. 그리고 나는 열린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여전히 아마추어 시인이다. 스위스의 심리상담가인 폴 투르니에는 <모험으로 사는 인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이 이룬 많은 업적이 그 기원을 따져 보면 아마추어의 작품이었다. 이는 바로 그런 특정한 지식의 분야에 그 때까지 전문적인 학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마추어라는 단어는 모험이라는 말을 생각나게 하고, 모험이라는 단어는 헌신이라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아마추어는 자기 취향에 따라 자기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며, 이 일이 직업이 된다고 해도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을 완전히 바치고 이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원히 아마추어 신학자이고, 아마추어 상담가이며, 또한 아마추어 시인이다. 오늘은 아마추어 시인의 이야기를 잠시 풀어놓아 볼까 한다.

나는 정호승 시인을 참 좋아한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현대판 김소월의 시를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가 쓴 “별들은 따뜻하다”를 읽으며 얼마나 가슴 시려했던가?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정호승 시인의 시들은 내게 별이 되었고, 노래가 되었고, 노을이 되었다.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학교 도서관에서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면서 자랐다. 그의 시는 내 심상의 토양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의 시집을 꺼내 읽으면 그렇게 가슴이 말랑말랑해지고, 따뜻해 질 수 없다.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꽃잎도 나무잎도 다 필요하다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꽃잎도 나무잎도 다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이해인 시인도 참 좋아한다. 우선 그녀의 맑고 섬세한 마음이 좋다. 그리고 그녀가 사용하는 시어들이 간결하고 정결해서 좋다. 그녀가 쓴 “작은 위로”를 읽으며 얼마나 마음이 아련했던가?

 

잔디밭에 쓰러진/ 분홍색 상사화를 보며/ 혼자서 울었어요// 쓰러진 꽃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하늘을 봅니다// 비에 젖은 꽃들도/ 위로해주시구요/ 아름다운 죄가 많아/ 가엾은 사람들도/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보고 싶은 하느님/ 오늘은 하루 종일/ 꼼짝을 못하겠으니// 어서 저를/ 일으켜주십시오/ 지혜의 웃음으로/ 저를 적셔주십시오

 

수녀원 안에서 민들레처럼 영토를 만들고, 그 영토에서 쉼 없이 사랑을 발효시키면서, 민들레 홀씨처럼 담을 넘어 온 그녀의 말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녀의 시집을 따라서 오늘은 반달로 뜨기도 하고,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기도 하며, 내 영혼에 불을 놓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마흔을 넘기기까지 아마추어 시인으로 습작한 노트가 열권이 넘는다. 무엇인가 섬광처럼 내 생각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잔잔하던 내 마음의 호수에 파문이 일 때마다 기록을 해 두었다. 시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다가온 짧은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계속해 왔다. 그러다가 이지엽 시인을 만났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마치 암탉이 알을 품듯이 시상을 가슴에 품고 오랜 시간 이리저리 굴리면서 살펴보고 또 살펴보는 연습을 했다. 그것이 좀 더디더라도 시간이 되어 자연스럽게 부화할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그가 쓴 ‘사랑 이미지1’을 읽어보자.

 

직선의 힘으로/ 남자는 일어서고/ 곡선의 힘으로/ 여자는 휘어진다/ 직선과 곡선이 만나/ 면이 되고 집이 된다// 직선은 길을 바꾸고/ 지도를 바꾸지만/ 곡선은 그 길 위에/ 물 뿌리고 꽃을 피운다/ 서로가 만나지 않으면/ 길은 길이 아니다

그를 통해 그릇 속에 담긴 물속으로 잘 익은 달 하나가 들어오는 것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신용관 시인
신용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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