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 그 이후를 생각해 보라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악이다. 오죽하면, 십계명에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이라고 선언하셨을까? 이스라엘 민족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는 우상숭배가 끊이질 않았다. 출애굽 후 광야시절에도, 사사시대에도, 왕국시대에도 언제나 반복되었다. 구약성서에서 집중적으로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죄악인 음란과 사회적 불의가 다 우상숭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철저한 응징과 심판에도 불구하고 가증스러운 죄는 계속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이스라엘 왕국은 그 죄로 인해 멸망했다. 왜 그 수많은 역사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는 계속되었는가?
이스라엘 민족의 우상숭배의 근저에는 소위 현실론이 깊게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하나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해결될 것 같지 않은 현실의 잡다한 욕구와 문제들이다. 야웨 하나님은 전능하고 거룩하고 변함이 없으시지만, 마치 무서운 아버지처럼 인간의 구체적인 욕구를 모른 체하시고 무거운 짐만 지우는 분처럼 여긴 것이다. 반면 주변의 바알 신을 비롯한 이방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에는 재미가 있고 쾌락이 있어 보였다. 이방신들은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고 인간적인 탐욕을 용인도 하고, 사회적 약자들보다는 힘 있고 잘난 것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같이 본 것이다. 각박한 현실을 절제하며 살아가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게 얼마나 솔깃했을까?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눈치 보며 숨어서 하던 우상숭배가 여론의 힘을 얻어 대중들을 움직이고 왕의 마음을 훔친 것이 아닌가? 탐욕과 지배와 통치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라도 할 사람들이니까 하나님과 나란히 우상을 섬기는 길로 나간 것이 아니었을까?
우상숭배, 그 이후를 생각해 보라. 우상숭배가 그들의 현실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었을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들은 불신과 교만으로 아담과 하와처럼 속은 것이다. 오히려 그 현실 문제는 더 악화되고, 개인과 사회의 삶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작년 총회에서 채택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의 소위 명성교회수습안(실제적으로 세습용인)의 기저에는 현실론이 깔려있다. 명성교회 목회직이 부자간에 세습되지 않으면 명성교회가 어려워지고, 명성교회가 어려워지면 교단운영이 어려워진다는, 말도 안 되는 그 잘난 현실론이 깔려있다. 그렇게 결정한 총대들의 그 좋다던 믿음과 지혜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가, 아니면 명성교회를 더 믿는가? 부자세습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면, 그것이 주님의 교회인가? 주님의 이름을 도용한 세상적인 기업인가? 이번 통합 총회에서 수습안이 그대로 확정되면 명성교회도 살고 교단도 살고 한국교회도 살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건 우상숭배를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번영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던 우상 숭배자들의 잘못된 생각과 같은 망상일 뿐이다.
제발 목회직 세습이 확정된 그 날 이후를 생각하라. 명성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의 목회직 세습은 부와 권력에 절하며 섬기는 우상숭배이다. 우상숭배에 손을 들어 주어 우상숭배의 가담자, 부역자가 될 것인가? 우상숭배를 거부한 칠천 명의 남은 자가 될 것인가? 불신앙적인 현실론의 덫에 스스로 걸려 명성교회도 통합교단도 한국교회도 모두를 망하게 할 것인가? 기만하는 현실론을 걷어차고 하나님만 바라볼 것인가?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방자하게 불신과 기만의 현실론을 입에 올리지 말라. 하나님은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는 분이 아니다. 복음에 따라 가난하게 살 결단을 하면 그따위 현실론이란 아무것도 아닌 허깨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