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 칼뱅(J. Calvin)이 제정한 ‘제네바교회법’은 장로교회 체제와 질서의 모본이 되었다. 그것은 공교회로서 대의제도 교회질서였다. 그런데 장로교회의 대의제도는 근세시대 이후로 정착된 세속 정치적 민주주의질서와 근원적으로 다르다.
후자의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이 대표를 선출하는 대의제도인데, 전자인 장로교회의 대의제도는 -사람의 주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직분으로 시작되었다.
교회의 대의제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으로 교회를 다스리시되,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 다스리신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목사, 교사, 장로, 집사가 세우심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장로교회 대의제도의 기초이다.
여기에서 대의제도의 대의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을 대변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 장로교회의 대의제도는 근세시대 유럽과 미국에서 발달한 의회민주주의와 나란히 발전했다.
장로교회 대의제도를 영미권(미국) 선교사들이 19세기말 한국에서 사역하면서 정착시켰다. 이 제도는 한국 장로교회 체제의 밑그림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이 제도는 한국 역사에서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것이었다.
그 낯선 것이 1900년에 최초로 실시되었는데, 평양 장대현교회 교인들 스스로 교회 대표를 뽑는 투표가 실시되었다. 이때 선거로 선출된 교인대표가 김종섭(金宗燮)이었다. 그는 장로로 장립했다. 계속해서 전국 각지의 교회에서 선거로 교인 대표인 장로를 선출했다.
이와 함께 전국의 교회를 마치 그물망처럼 연결하는 ‘공의회’가 조직되었다. 공의회는 전국의 지(支) 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서 의논하는 협의기구였다. 이것이 신생(新生) 조선(대한제국) 장로교회에 이식된 대의민주주의 제도였다.
1905년, 한국 장로교회 공의회는 세계 여러 대륙의 장로교회들과 나란히 동등한 회원이 되는 독립 '노회'(老會, Presbytery) 설립을 추진했다. 전 세계 장로교회의 에큐메니칼협의체를 지향한 것이다. 이와 상응하여서, 조선(대한제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미국-, 호주-, 캐나다 장로교회가 각각 이를 수락했다.
공의회는 노회의 명칭부터 정했는데, “조선(대한)예수교장로회”로 명명하고 그리고 2년 후에(1907) 노회를 정식 창립하기로 결의했다. 교회헌법준비위원회는 인도 장로교회에서 제정한(1904년) 이른바 “12신조”를 한국 교회의 신조로 제안했다. 1년 후(1906)에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대로 제정된 완전한 정치형태가 제출되었다.
그렇지만 공의회는 1년 동안 더 이것을 연구하기로 했다. 이에, 교회헌법준비위원회는 조선(대한제국)의 장로교회에 적용 가능한 간략한 정치형태를 공의회 앞으로 제출했다.
1907년 9월 17일 장로교회는 2년 전의 결의대로 헌법에 기초한 전국 규모의 노회를 설립했다(‘조선전국독(립)노회’(朝鮮全國獨(立)老會)). 이로써 한국 장로교회가 공교회로서 완전한 형태를 가졌다. 노회는 장로교회체제의 기초이자 기본이다. 이때 장로회신학교(평양)를 졸업한 첫 졸업생 7명이 노회에서 안수받아 목사로 장립했다.
1912년 9월 1일 한국 장로교회의 총회가 출발했다. 이로써 장로교회는 명실공히 헌법에 의거하여 한반도 전역의 전국 교단이 되었다. 교단의 정치체제인 대의민주주의제도는 당회, 노회, 총회에로 이어지는 치리질서로 구성됐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장로교회의 공교회성은 헌법으로 유지되는데 최근 초대형교회의 세습은 그 힘과 권력으로 헌법을 유린하고 헌법원리를 훼손시키지 않았는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