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안의 높은 자리
한국교회 안의 높은 자리
  • 박은호 목사
  • 승인 2018.04.18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고학의 발굴이 있기 전까지는, 회당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앉았다는 ‘모세의 자리’가 모세를 통해 주신 토라와 관련된 상징적인 의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우리의 인식에 반전을 가져온, 갈릴리 지역의 고라진(Chorazin) 회당에서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실제의 ‘모세의 자리’가 발굴 되면서,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필자도 고라진 회당의 현장을 여러 차례 방문해 ‘모세의 자리’에 앉아보기도 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씁쓸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 한국교회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 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마23:2-7). 이 말씀이 어찌 2,000년 전 유대종교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인가? 오늘 우리 한국교회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 아닌가? 오늘의 한국교회가 예수님이 책망하시던 유대종교의 지도자들의 그 행태를 어찌 그토록 빼닮았단 말인가?

공직사회와 정부고관들, 국회의원들, 국가 간의 국정책임자들 간의 교류와 회담에서는 철저하게 상호간의 높낮이를 맞추고 그에 상응하는 의전을 중시한다. 격과 의전은 무너뜨릴 수 없는 절대화된 세속사회의 가치이다. 세상의 나라의 가치와 ‘하나님의 나라’(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 hJ basileiva tou' qeou')의 가치가 같은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는 양립할 수 없는 이질적인 가치대립(충돌)을 일으키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이와 같은 이질적인 가치대립(충돌)이 무너지는 것을 세속화라고 한다. 세속화는 그 본래의 본질을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냥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그 하나님의 그 나라’이다. 그런데 세속화 된 한국교회는 ‘그 하나님의 그 나라’가 아닌 ‘내가 만든 하나님의 내가 꿈꾸는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치부(置簿)하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가 개혁교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교회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개혁교회의 정체성은 500년 전 16세기의 개혁자들의 종교개혁운동에서 그 기원이나 기준점을 찾아서는 안 된다. 이 땅에 ‘그 하나님의 그 나라’를 가지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개혁교회 정체성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회당에서 ‘모세의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 신앙적인 태도를, ‘그 하나님의 그 나라’에서는 합당하지 않는 행위라고 말씀하셨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다룰 것이 아니라, 문자 뒤에 감추어져 있는 진의를 읽어내는 교회가 되어야만 한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강단 문화’를 이제는 바꾸어야만 한다. 높은 강단 위에는 으레 설교자의 자리가 있고, 예배인도자의 자리가 있고, 예배기도자의 자리가 있다. 강단 위의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은 모든 예배자들과 마주 보며 앉아서 예배하게 된다. 자연히 모든 사람이 강단 위의 높은 자리에 앉은 자를 바라보게 되고, 심중에 그가 앉은 특별석을 동경하게 한다. 교회마다 강단 위의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설교자와 예배인도자, 기도자가 예배하는 성도들과 함께 낮은 자리에서 예배하며, 자신이 맡은 시간에만 강단에 올라가서 자기 직무를 감당하는 한국교회가 될 수는 없을까?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집에서 높은 자리를 탐한다고 책망하셨다. 한국교회가 하루 속히 강단 위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예배당의 강단이 가장 겸손한 낮은 자리가 되어야만 한다.

 

박은호 목사

(정릉교회, 이슈신학 박사)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