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슬기로운 판타지 생활 ③ “그럼 살려요” in 태양의 후예
[전문가 칼럼] 슬기로운 판타지 생활 ③ “그럼 살려요” in 태양의 후예
  • 박형철 교수
  • 승인 2020.08.0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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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장면. 출처 KBS1 태양의 후예 홈페이지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장면. 출처 KBS2 태양의 후예 홈페이지

위 사진은 2016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대표하는 유명한 장면이다. 그리고 필자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신발 끈을 묶어 주는 이 장면을 기독교 교양수업(기독교인이 10~20%) 첫 주의 자료로 사용한다. 주제는, ‘존재와 실존 그리고 구원’.

한 작품에 꽂히면 몇 번씩 반복해서 보는 필자는 어느 날엔가 문득 이 장면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 때 깨닫고 느꼈던 모순적 상황과 감정을 실제 세상과 인간에 투영하여 긍정적으로 적용하고, 이를 강의와 글을 통해 나누려 노력한다.

장면에 해당되는 영상을 보면 그저 멋지다고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극적으로 재회하게 된 두 주인공, 그리고 긴박한 상황 속 의사와 군인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하는 영웅적인 모습들.

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실상은 다를 수 있다. 뿌옇게 보이는 배경은 사실 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이며, 거기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배관의 수증기 배경음이 더해진다. 두 배우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엉망진창이 될지언정 무엇이라도 해보려 노력하는 절박한 인간들이다.

결국 상황과 직업을 다를지 몰라도 ‘세상이라는 실존’ 속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희비극(tragi-comedy)의 무대를 연기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렇듯 삶은 고통의 실존이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은 역설적인 동시에 그 자체가 고귀하며 숭고한 것이다. 홀로코스트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며 우스꽝스럽게 죽어가는 아빠의 모습을 통해 <인생은 아름다워>(1997)라고 말하고자 했던 작품의 제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본인이 세상과 인간의 처절한 실존을 경험했기에, <백치>의 미쉬킨의 입을 통해 전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명언 또한, 도스토예프스키가 신을 향해 믿음으로 외쳤던 구원에의 희망이었을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KBS1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장면. 출처 KBS1 태양의 후예 홈페이지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장면. 출처 KBS2 태양의 후예 홈페이지

2020년 1학기 한 학교에서 ‘판타지-드라마’ 관련 강의를 하던 중, 한 주를 <태양의 후예> 한 작품으로만 한 적이 있다. 16회 전체를 한 주제 그리고 한 대사로 아우르는, 개인적으로는 실험적인 수업이었기에 많은 것들을 고민하여 준비했다. 주제는 ‘생명 그리고 구원’, 대사는 유시진 대위 역으로 열연한 배우 본인이 꼽은 명장면에 등장하는 대사인 “그럼 살려요”였다.

아랍 연맹 의장이라는 VIP를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중동인이 아니면 칼을 댈 수 없기에 죽도록 내버려둘 것이냐, 정치-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떠안고라도 수술을 감행할 것이냐?!

상부의 명령에 불복하고 상대에게 총을 겨눈 군인, 그렇게 가능해진 수술에 대해 모든 책임을 떠안겠다는 의사, 두 주인공의 총구 앞에 서는 용기에 대해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과정과 결과를 떠나 그 행동이 용기인지, 무모함인지, 책임인지 아니면 오히려 무책임인지…

“그럼 살려요”에는 우리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그 무엇의 여러 가지 의미들이 담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 그 모든 것은 ‘생명’을 향한 위대하고 용기 있는 발걸음이었다는 것이다.

우르크라는 가상의 2차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휴먼-로맨스-판타지인 <태양의 후예>에는 휴머니즘과 국가론 그리고 로맨스라는 세 축을 기반으로 많은 에피소드들이 전개된다.

중요한 건, 위의 대표적인 에피소드 외 다른 이야기들의 중심에도 ‘생명’이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첫 번째는 극 중 아구스라는 악인이 총상을 입었을 때이다. 이 때 유 대위는, 나중에 자신이 죽일지라도, 의사 강모연에게는 살리라고 말한다. 어떤 생명이든 살리는 것이 의사의 의무니까.

두 번째는 얄미운 발전소장의 예이다. 타인의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는 그에게 날리는 유대위의 사이다 대사, “너 같은 새끼도 위험에 처하면 구해내는 게 국가라고” 그리고 그 대사 직후 위험상황에서 그 밉상을 구하느라 대신 피를 흘린 유 대위.

마지막으로 공항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다니엘의 모습과 대사, 원작에서는 주인공일 수 있는 그는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고 특허를 내지 않은 소크 박사의 말을 인용한다. “태양에도 특허를 신청할 건가요?”

앞의 두 예시에 등장하는 두 악인을 보면 절로 화가 나고 욕이 나온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 ‘나는…?’ 한 때 유대위의 전우였던 아구스는 현실-실존, 결국 돈 때문에 변했고 악인이 되어 갔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발전소장에게 던져진 대사를 나에게 적용하면 할 말은 더 없어진다.

“너 같은 인간도 구원하는 게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마지막의 예 또한 현 세계의 상황을 내포하기에 씁쓸하다. 백신이 완성도 되지 않았는데 값부터 매기는 나라, 기업, 사람들. 아무리 사회구조적인 악이 존재한다 하지만 백신이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말이다.

삶과 신앙 가운데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는 건 쉽지 않다. 내 눈 속의 들보를 여전히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게 우리니까. 가상의 세상과 인물들을 다루는 작품 한 편을 보더라도 그 속에서 많은 것들을 깨닫고, 반성하고, 돌이킬 수 있다.

그리고 질문할 수 있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결단하고 행동하나?’, ‘최고의 가치를 실제 선택하고 행동하는 삶과 신앙인가?’, ‘우선순위와 지켜야 할 것을 위해 순종(총구 앞에 정렬)할 용기가 있나?’

값없이 받은 은혜의 선물이라면 나누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악인이라도, 밉상이라도,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기득권이 아닌 긍휼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를 살리고, 타인을 살리는 삶이다.

그렇게 주어진 나의 자리에서 한 영혼이라도 사랑하고 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학생 때 필자의 인생을 바꾸었던 책 중 하나가 떠오르는 밤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What Would Jesus Do?)”
 

박형철서울여자대학교 특임교수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박형철 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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