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하나님이 다시 찾으시려는 것
[독자기고] 하나님이 다시 찾으시려는 것
  • 박상기 목사
  • 승인 2020.08.0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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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즐겁게 하는 예배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경외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교회의 모든 사역은 ‘예배함’에 그 목적이 있다. ‘예배공동체’라고 할 만큼 예배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요 교회의 본질이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은 예배에 묶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예배는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예배란 포괄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미하지만, 성전(예배당)예배가 온전하게 세워지지 않고 삶으로 드리는 예배는 말장난과 같은 것이라 여기기에 성전예배에 국한한다.> 즉 예배 때문에 봉사하고, 전도하고, 기관도 나누고, 조직도 세우는 것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공급해주시는 힘으로 삶의 난제들을 풀어내는 신비한 능력을 경험할 뿐 아니라 세상으로 나가서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여전히 예배자로 살아가도록 이끄는 공동체로 디자인이 되어 있다. 따라서 예배가 세워질 때 교회는 바르게 설 수 있으며 예배가 무너지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절대 구조로 묶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도의 집중력으로 예배에 집중해야 하며 그 어떤 것도 예배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해 보라 성경을 관통하는 것이 예배 아닌가?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실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그대로 창조의 목적이 ‘하나님의 기쁨’에 있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사43:21, 골1:16) 그런 의미에서 에덴동산은 최초의 예배당이었고 하나님과 자유로운 소통은 그 자체로 ‘원초적인 예배’였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란 하나님께는 창조의 목적대로 기쁨이 되는 것이며 인간에게는 격이 없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행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 한 이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서 인간에게 죽음의 저주, 아니 죽음보다 더한 영적 깨어짐의 저주가 왔다. 이는 예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예배가 깨어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하나님은 인류의 타락 이후 회복을 위한 역사를 계획하시는데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후손을 선민으로 삼으셔서 장구한 역사를 통해 구속 곧 인류의 죄를 속하고 관계의 회복을 위해 열심인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에 대한 갈망을 갖고 계신지를 보여주신다. 마침내 독생자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보내셔서 십자가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의 의를 힘입어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복원하셨다. (눅23:45, 엡2:14) 이제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으며(롬8:15, 갈4:6) 아들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엡3:12) 이 같은 구속의 역사를 사도바울은 찬송(예배)의 회복으로 보았다.(엡1:12)

정리하면, 하나님은 예배를 위해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예배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인 셈이다. 인류의 타락은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 아니라 예배를 잃어버린 사건이며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면서까지 관계를 복원시킨 것은 바로 예배를 회복시킨 사건이다. 이는 하나님의 예배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한 가지 목적, 유일한 목적은 예배다. 사도 바울은 이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는 말로 압축시켜놓았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인생의 목적과 삶의 우선순위, 가치의 우선순위는 오직 예배여야 한다는 말이다. 예배는 그만큼 중요한 하나님의 목적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오늘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아야 한다. 홍수에 먹을 물이 없다는 말처럼 이렇게 교회가 많고 믿는 자들이 찼고, 예배가 온갖 장치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데 진정 예배의 가치를 알고 온전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었다면 과연 세상은 이처럼 어둡게 되었을까? 에스겔을 통해 보여준 환상에서처럼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마른 뼈들만 보고 계시지 않을까? 산상수훈을 통해서 주신 예수님의 교훈처럼 교회 안에 “주여! 주여!”하는 자들로만 가득 차보이지 않을까? (마7:20-23)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많은데 진정한 예배자는 찾기 어려운 시대에 과연 하나님이 다시 찾고 회복하시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이제 자명해졌다.

예배다.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하나님이 갈망했던 것은 바로 예배였다. 성령을 보내시고 복음을 전파하도록 명령하신 것 또한 열방을 통해 예배를 받으시려는 것이었으며 이 땅에 교회를 세워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을 모으시는 목적도 바로 예배를 받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하나님의 기대는 엉뚱한 것들로 분주해져 버린 교회를 통해 번번이 좌절되어 버린 것이다. 가인의 예배를 거절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점검해봐야 할 일이다. 이사야 시대에 왜 재물을 거부하셨는지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모양은 화려해졌지만, 중심은 하나님에서 멀어져 있는 예배를 하나님은 어떻게 취급하실까? 십자가와 제자도에 대한 고백이 빠진 오늘의 예배를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기복에 치우친 예배를 어떻게 여기셨을까?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부정과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목적에서 멀어져 버린 예배를 점검해 보고 과연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영이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사람을 즐겁게 하는 예배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경외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박상기 목사

빛내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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