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해찰의 미학
[예술과 목회] 해찰의 미학
  • 박혁순 목사
  • 승인 2020.07.25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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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동 할머니, 박혁순 목사
신길동 할머니, 박혁순 목사

몇 주 전, 남도 출신 후배 목사님과 함께 그의 고향땅을 누비고 다녔을 때, 그에게서 “해찰”이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되었다. 이것은 한자어 ‘방랑’ 또는 ‘배회’와 비슷한 의미가 있지만 확실히 순우리말로서 따스한 정감과 맛깔나는 깊이가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다.

사전적인 의미로 해찰은, “마음에 썩 내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침 또는 그런 행동” 그리고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함”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목적지로 곧잘 가지 않고 도중에 이리저리 다른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쯤으로 알고 썼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에서 목회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해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그는, 어렸을 적에 집과 초등학교 사이가 멀어 왕복 네 시간을 걸어 다녔다고 한다. 남도에서도 빼어난 산세와 기암절벽과 강으로 유명한 고장에서 자랐기 때문에, 기나긴 시간을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오는 길이 매우 힘들었지만 해찰을 위해 즐거운 길이었다고 회상했다.

철모르는 어린아이로서 시골 산천에는 온갖 즐길 거리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등교하는 길에 부모님으로부터 잔소리처럼 자주 들었던 것이 ‘아무개야, 학교 마치면 해찰허지 말고 싸게 집에 와라잉!’ 하는 당부였다고 한다.

중부지방에서 자라고 수도권에서 살기도 했던 나로서, 그리고 학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나로서 이 해찰이라는 말이 매우 흥미롭게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지방언어나 방언이 여러 면에 있어서 보수적이라는 언어학계의 이론을 내심 확인하면서도, ‘해찰’이라는 제목으로 시 한 수 짓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해찰. 사실 목사이며 신학자인 나는 여전히 해찰 중이다.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 학문적으로, 그리고 실존적으로 말이다. 나이 50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모든 삶의 국면들에 있어서 여전히 해찰 중인 것이다. 그러해서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해찰 중에, 예기치 못하던 계기 속에 이 세계의 다채로운 면면들을 경험하고 관상하고 각성하고 기억해 둘 기회들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나아가는 것이 인생의 정도(正道)라고 권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인생관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해찰하기 위한 이유로’ 이 지구별에 있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빛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어둠 안에서 해찰해야 하고, 코스모스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카오스 안에서 해찰해야 하고, 일치를 알기 위해 분열 안에서 해찰해야 하는 이곳! 완전하고, 평온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가 바로 태어나지 않은 이유가 그것일지 모른다.

실제로, 2세기 교부 이레네우스(Irenaeus)는, 선악과 탈취로 인한 인간의 실낙원도 신적 교육(divine pedagogy)의 일환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타락과 실낙원이 없이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고 보다 성숙한 영혼으로 성장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통찰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레네우스도 아담과 하와가 벌인 해찰의 의의를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다리 떨릴 때 해찰하려들지 않고, 아직 가슴 떨릴 때 해찰하고 살고자 한다. 이 세상에는 해찰해야 할 곳과 것이 참으로 많다. 인간에게 고분고분했던 창조의 세계도 해찰하고 있는 이 시절, 당신과 내가 결단코 해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언제나 그랬듯, 우리 생애는 경각에 달려있는 것이다.

박혁순 목사 창신교회 담임 창신대 겸임교수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박혁순 목사 창신교회 담임 창신대 겸임교수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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