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슬기로운 판타지 생활② “Remember me” in [코코]
[전문가 칼럼] 슬기로운 판타지 생활② “Remember me” in [코코]
  • 박형철 교수
  • 승인 2020.07.2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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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공동묘지(왼쪽) 풍경과 멕시코 죽은 자들의 날(오른쪽) 풍경. 출처 http://picpen.chosun.com/view/picpenViewDetail.picpen?picpen_seq=8868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llision77&logNo=22114555279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유럽 공동묘지(왼쪽) 풍경과 멕시코 죽은 자들의 날(오른쪽) 풍경. 출처 http://picpen.chosun.com/view/picpenViewDetail.picpen?picpen_seq=8868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llision77&logNo=22114555279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20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세월 참 화살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 문득 멈춰선 그 기억의 지점에서 선명하게 피어나는 이미지에 미소 짓는 나를 발견한다. 공연선교를 하며 지구촌을 누비던 20대, 독일을 다녀온 적이 있다.

첫 유럽 방문의 목적이 사역이었던 나는 유럽의 허브인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거쳐 슈미튼이라는 한적한 마을로 향했다. 다리가 길지도 않은 내가 좁다고 느낀 루프트한자 좌석, 변변치 않은 먹을거리들, 참 우중충한 날씨, 그래서 하게 된 생각들, ‘아, 이래서 커피를 많이 마시나?’, ‘이래서 철학이 발전한 거군…’, 독일의 첫인상은 그랬다.

그런데, 그 와중에 선연하게 남은 아름다운 기억, 이른 아침에 일어나 창문 밖으로 마주하는 그림 같은 풍경, 그리고 마을 가운데 자리 잡은 공원 같은 묘지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흰 소복의 귀신, 검은 갓의 저승사자, <전설의 고향>의 레전드 작품인 “내 다리 내놔..” 등을 공동묘지와 연관시키는 한(恨)의 문화 속에서 자라난 한 청년이 꽃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가족묘들을 바라보며 받은 충격이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런 신선한 장면을 경험하기 전까지, 사후세계를 생각할 때면 죄와 벌, 마귀와 지옥을 먼저 떠올리도록 교육을 받은 한국의 겁 많은 기독청년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즈텍 시대부터 이어져온다는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을 모티브로 하는 애니메이션-판타지 <코코>(2017)는 중년이 된 한 청년에게 묘지, 죽음, 사후세계에 대해 조금은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질문의 기회를 허락했다.

멕시코인들이 망자를 기리는 날(1년에 3일(10.31~11.2))은 우리나라에서는 설이나 추석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차례/제사를 엄근진(엄숙-근엄-진지) 속에서 행하는 반면, 죽음을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은 그 기간을 ‘축제’로 연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묘지들은 촛불과 형형색색의 꽃들로, 그리고 묘지부터 각 가정의 제단까지는 주황의 메리골드 꽃잎으로 치장되며 망자들을 안내한다. 그리고 그 제단들에는 사진들이 놓인다. 먼저 떠나간 사랑하는 가족들의 사진들...

디즈니 픽사 영화 '코코' 포스터. 출처 '코코' 영화 페이지
디즈니 픽사 영화 '코코' 포스터. 출처 '코코' 영화 페이지

작품을 보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단연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메리골드 다리였다. 인생들의 가장 두려운 ‘결국’인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이라는 ‘문’ 뒤를 모르는 우리는 그 세계가 외계 생명체 같은 미지의 곳이기에, 또는 종교-신앙-윤리 등에 관련된 죄와 벌의 장소로 받아들여지기에 공포라는 강력한 감정이 지배하도록 내어준다.

하지만 작품 속 죽음의 경계는 너무나 아름답다. 그리고 그 다리 너머의 세계에는 죽음 뒤 동서양(<신과 함께>, <신곡>)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죄와 벌’,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기억을 통한 삶의 소중함과 찬란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결국, 죽음 이후 또 다른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문제만 남는다. 여기서 하나, 죽음 이후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채, 산 자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긍정적 상상과 묘사를 가능케 하는 판타지의 유용성을 생각해본다. 심약한 우리 기독인들에게는 죽음 이후의 형벌과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반감시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유익이 아닐까?

코코의 증손자 주인공 미구엘이 아름다운 묘지 속에서 산 자로서 망자들을 만나며 경험하는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 NDE)으로 시작되는 작품은 그밖에도 기독교인인 내가 그동안 고민하고 질문해 온 몇 가지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첫째, 사후 ‘차등’에 대한 부분. 어릴 때부터 감히 의구심을 가졌었다. 천국에 갔을 때 받는 면류관의 재료(금 vs 개털)와 부동산(빌라 vs 단칸방)의 크기가 다른 것에 대해. 사후세계와 구원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소심했던 반항아를 신학의 길로 이끌었고, 현재 필자는 ‘구원론’으로 받은 학위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며 제자들을 가르친다.

“난 하늘을 위한 상급은 필요 없어, 구원 받았는데 뭣이 중하지?”라는 농담과 함께. 아니, 사실 진담이다. 은혜로 받은 구원과 천국이면 족하지 그밖에 과연 그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오히려 이런 경각심은 든다.

혹시 나는 오른편의 양이라고 당연하게 여기며 착각하는 바리새인은 아닌지, 아니면 왼편의 염소라고 여기며 “나는 죄인이니 나를 떠나세요…”라고 주님 앞에 고백하는 겸손한 약자인지.

<코코>의 사후세계가 그런 차등을 보여준다. 궁전 같은 집과 판자촌의 대비로, 그런데 이는 기독교적 상급이 아닌 ‘기억’으로 나뉘는 특이한 빈부의 차이다. 인기로 인한 것이든 무엇이든 이승 사람들이 많이 기억해 주는 만큼 저승에서 부가 쌓인다.

혹시 우리가 생각하는 상급이 이 기억과 비슷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전도를 많이 한 만큼 또는 율법교사(눅 10장) 처럼 알 수도 없는 신의 뜻을 많이 행하며 살았다고 생각하는 만큼 과연 하늘에 상급이 쌓이는 걸까?

둘째, 아픔도 슬픔도 없는 <코코>의 사후세계에 존재하는 두 번째 죽음이자 완전한 소멸. 극한의 두려움인 죽음을 넘었는데 또 다른 죽음의 두려움이 있다? 먼저 이는 죽음의 공포가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를 넘어 두 번째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 없는 우리의 상태에 대한 감사이다.

물론 살아있는 동안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 노력하며 잘 사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처럼 이승 사람들의 나에 대한 기억에 기댈 필요는 없다. 은혜로 받은 구원이 대단한 이유가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코코>의 주제가 “Remember me”. 미구엘은 오래전 아빠가 어린 딸에게 남겼던 노래를 통해 기억을 잃어가던 증조할머니 코코가 아빠의 기억을 되찾도록 돕는다.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은 무엇일까? 당신의 몸과 피를 나누며 “나를 기념하라(Remember me)”고 말씀하신 유월절 어린양 예수님의 성찬식 아닐까?

<코코>가 말하는 기억과 가족 사랑의 소중함은 우리 기독교가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 그리고 예수와 십자가를 항상 붙잡아야하는 ‘기념의 종교’임을 상기시킨다.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지켜야할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 이 또한 감사이자 감동이다.

박형철서울여자대학교 특임교수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박형철 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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