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화여대 김혜령 교수, “한국교회,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추지 않으면 몰락할 것”
[인터뷰] 이화여대 김혜령 교수, “한국교회,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추지 않으면 몰락할 것”
  • 김성해·김유수 기자
  • 승인 2020.07.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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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성평등 기준은 과거와 달라
성(性)은 인격이 만나는 사건
죄책감이 오히려 성폭력 만들어
여성 목회자들의 자리 만들어야
성 평등 개혁 없으면 쇠퇴할 것

 

교회 내 성범죄 해결은 최근 한국교회의 중요한 과제다. 많은 이들은 최근 교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인권 신장과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가부장적 교회 권력 구조라고 분석한다. 이제 교회에 개혁이 요청되고 있다. 개혁교회가 종교개혁 정신에 따라 계속해서 개혁해 나가기 위해서는 새롭고 다양한 신학적 시도들이 필요하다. 특히나 대두되고 있는 교회 내 성범죄 문제 해결을 위해선,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이해와 담론을 제기할 수 있는 여성신학이 필요하다. 여성신학자 김혜령 교수를 만나 한국교회 현안과 교회 내 성 문제 해결을 위한 개혁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Q. 최근 유력 여당 정치인들의 성 윤리와 관련 스캔들이 사회적 물의 빚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같이 여성인권과 여권신장을 위해 활동해오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상황이 왜 벌어진다고 생각하는가.

1970-80년대 양성평등 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성 평등 기준은 지금과 다르다. 1990년대까지도 민주세력이 갖고 있는 양성평등 의식은 여성노동환경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전태일 시대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이었고, 여성운동도 노동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이후에는 여성이 남성과 같이 교육받고 고용될 수 있는 것을 최고목표로 삼던 양성평등 지향 시대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을 가사노동의 주체로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양성평등 의식이 있다고 여겨주기도 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이전과 같은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가사노동 폄하 문제는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성평등에 대한 기준도 진화한다. 오늘날에는 오늘날의 주제들이 있다. 그러니 이전 시대에 여성운동을 했더라도 여전히 그 시간에 멈춰 오늘 날에 적합한 감수성을 습득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의 비서는 속옷 심부름을 하고 기분을 맞춰줘야 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아내가 남편의 속옷을 챙기고 정리하는 게 당연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30-40대 부부들은 자기 속옷을 배우자에게 챙겨달라고 하지 않는다. 배우자도 안 해주는 서비스를, 그것도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에게 주요업무로 부여했다는 것에 청년 세대가 분노하고 있다. 물론 박원순 시장은 충분히 시대에 맞춰 발전이 가능했을 인물이었다. 그러나 결국 서울 시장이라는 1인 권력을 장기간 헌신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대의 아래 비서실 업무 분배가 성차별적으로 이뤄지는 문제의 심각성을 박 시장을 비롯해 비서실의 고위급 공무원들 중 어느 누구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인간은 일단 권력을 갖게 되면 권력 구조가 주는 안락함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즐기게 되기 쉽다. 박원순 시장이 여성운동에 큰 기여했다는 사실을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그가 20세기 중반의 의식에 머물고 있지는 않았은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23세기 건물로 보이는 최첨단의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1980년대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Q. 기독교는 성(性) 윤리에 있어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을 주지해왔다. 그럼에도 교회 내 성범죄가 두드러지고 있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성에 관해 보수적인 교회에서 왜 성 문제가 생기냐고 물었지만, 반대로 교회가 성적으로 보수적이기 때문에 교회 내 성범죄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그동안 우리가 이해하고 가르쳐온 서구 중심의 신학과 가부장적 교권주의는 하와가 아담을 ‘유혹’했다고 본다. 이는 남성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데 여성이 유혹했다는 관점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러한 이해는 꽃뱀 설의 기원이 되어 성을 유혹과 유혹자의 문제로 보게 한다.

보수 신학은 성을 성관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성은 사실 두 인격이 그 외 남들과 공유하지 않는 것을 공유하는 인격적 행위다. 성은 쌓인 욕망을 해소하는 차원이 아니다. 성은 서로를 알고 지지하며 신체적 콤플렉스와 같은 창피한 부분도 드러내 서로에게 인정받는 중요한 인격적 사건이다. 이러한 이해 없이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자부하며 성관계에 대해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얼마 전 모 신학대 교수는 동성애 문제를 얘기하면서 여성의 신체를 왜곡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그릇되고 망가진 이해를 드러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성관계의 본질은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사건이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성적 경험을 ‘놀이’라고 불렀다. 이는 성이 어린아이들의 놀이처럼 순수하게 자기의 유희적 욕망을 부끄럼 없이 상대방에게 드러내고, 또 서로 충족시켜주면서 인격을 성장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러한 순수한 놀이를 통해 두 인격의 신뢰와 책임이 쌓이게 될 때 두 사람은 제 3자, 즉 자녀를 함께 출산해 양육할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그래서 성관계는 남성의 욕정을 배출·해소하기 위한 행위도, 출산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도 아니다. 아담과 하와를 해석하는 기존 기독교 해석학의 유혹자 담론에는 이러한 이해가 없다. 여성은 남성의 성적 욕망을 해소해 주는 대상이자, 자녀를 출산하는 도구로 축소돼 이해될 뿐이다.

 

Q. 주요교단들이 목회자의 성 윤리 교육에 힘쓰고 있지만, 대부분 그 기반을 범죄학과 심리학에에 두고 있다. 성 윤리에 대한 여성신학적 성찰이 부족한 상황에서 교회의 성적 도덕성 회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성 문제를 범죄심리학 쪽으로만 접근하다 보면 올바른 성 윤리 형성에 큰 문제가 생긴다. 현대 심리학은 성을 억압된 욕망으로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윤리적으로 성을 억압차원에서만 접근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더 하고 싶어진다. 특히 성 윤리에 있어 올바른 마음을 주는 윤리적 기준이 필요한데, 지금 대부분의 성 윤리는 금지명령뿐이다. 실제 성폭력 가해 목회자의 패턴은 대부분 똑같다. 그들은 피해자에게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건 잘못된 것인데’ ‘미안하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라고 말하면서 거듭 성범죄를 저지른다. 강한 죄책감은 오히려 지속적인 성폭력을 만든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성 생활을 할 수 있는 긍정적 원칙이 교회에서 교육돼야 하는데 억압하는 교육이 문제를 만들고 있다. 양질의 교육에 있어 여성신학은 여성과 남성 모두 성적 주체라는 것을 강조한다. 여성이 매력적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여성이 주체로서 자신의 매력을 표현하는 것이지 이성을 유혹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아름다움을 사모하고 멋있어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성에 대한 왜곡된 관점은 이 주체적 욕망을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한 행위로 오해한다.

온전한 성적 주체로서 성에 대한 올바른 개념은 양성 모두에게 필요하다. 올바른 성 윤리를 위해선 자기 욕망에 대한 긍정이 필요하며, 자기 욕망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나의 연인, 나의 배우자를 성적 주체성을 가진 타자로서 온전히 인정하면서, 상호 동의와 상호 헌신을 전제로 한 사랑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교회 현장에 이러한 생각을 현실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회 현장에 남성과 똑같은 일을 하는 여성 목회자들의 자리가 필요하다. 교회 내 직책에도 여성들의 참여 비율을 50%로 맞추는 노력이 있지 않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쉽지 않다.

근본적으로 교회의 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장년층 남성 위주로 구성된 총회의 나이가 젊어져야 하고, 총회에 여성이 들어가야 한다. 기존 남성 목회자들이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생각은 말도 안 된다. 모르는데 어떻게 잘 할 수 있는가? 성 평등을 반영한 개혁이 없으면 앞으로 보수적인 교회는 많이 쇠퇴할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교회는 신세대에게 외면과 비난을 받을 것이고 결국 몰락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기성세대가 정말로 한국 교회의 몰락을 걱정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개교회 혹은 담임 목회자, 혹은 기성세대의 보신주의에 사로잡혀, 몰락이 예상된 교회의 미래를 두 손 놓고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가?

Q. 그동안 학술활동에서 예수를 가부장적 유대사회의 권력구조를 타파하려 했던 위대한 운동가로 해석했다. 이처럼 현대의 권력구조 사회에서 교회는 교회윤리와 사회윤리 회복을 위해 무엇을 실천해야 하나.

그동안 교회는 자본주의의 선봉자였다. 교회가 부동산에 투자하고, 재정을 운영하고, 사업체가 되는 방식은 개신교 개교회주의 구조에서 생존과 관련돼 있었고, 1970- 80년대엔 개신교의 장점이자 활력소였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하는 시점에서 교회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아직도 교회 부교역자들의 노동법과 노동시간은 지켜지지 않고, 교회 일을 하는 교회 직원들을 아무 일이나 다 해야 하는 집사로 대하는 경우도 많다.

교회는 자선을 가장 많이 하는 단체인데 현대사회에서 빈곤은 자선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복지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사회구조의 개선 없이 가난한 자에게 기부하는 행위는 그저 언 발에 오줌 누는 정도다. 자선만으로 사회 정의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교회는 대단한 집단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는 교회의 입장에서 현재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논리와 운동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사회는 인권의 가치들이 전환되고 있고 다양한 담론들이 들끓고 있다. 설사 교회가 이에 동의하지 못할지라도 사회의 변화를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다양한 여성주의 담론들은 등장하는 것은 세상이 타락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인권이 발전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사회의 이러한 변화에 타락의 프레임을 씌우면 반대로 우리가 사회에게 반인권적-반사회적 집단이 돼 버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개신교 신학은 여성신학과 노동에 대해 관심이 없다. 지금 여성신학회 총무를 맡고 있는데 한국 신학계에선 여성신학에 대한 그 보이지 않는 따돌림이 있다. 이러한 따돌림은 1970-80년대보다 강화돼 여성신학이 후퇴하고 있다. 주요 신학교에서 여성신학 커리큘럼을 배제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실질적인 예로 대부분의 신학교에는 여성신학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교수가 거의 없다. 여자라고 다 여성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성 평등이 결코 배제될 수 없음을 충분히 이해하며 가르치는 여성신학 전문가에게 기회를 줘야 신학교가, 교회가 변할 수 있다.

Q.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목회자들이 가장 알았으면 하는 것은 보수적인 목회자들이 세상의 변화를 거부한다 해도 세상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또 교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한국교회가 몰락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회의 변화에 전혀 동의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목회자들이 그 변화에 대해 이해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교인들에겐 대형교회를 떠나 작은 교회로 흩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신앙을 위해 혹은 교회 내 여러 관계가 얽혀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성도들 간의 인격적 교제를 성숙 시켜 나갈 수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최대 약 300명 이하의 교회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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