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슬기로운 판타지 생활① ‘미스터 션샤인’ 칼럼 2: 반성 또는 새로운 성찰
[전문가 칼럼] 슬기로운 판타지 생활① ‘미스터 션샤인’ 칼럼 2: 반성 또는 새로운 성찰
  • 박형철 교수
  • 승인 2020.07.11 0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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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였다. 24회에 이르는 장엄한 대서사시를 다시 몰아보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었다. 매 회마다 가슴을 졸이며, 안타까워하며, 아파하며, 분노하며, 울었다.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 이해하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 그리고 깨달음과 결단을 요구하는 우리의 역사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절절하게 느낀 중요한 한 가지는, 그 모든 이야기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동시에 슬프디 슬픈 우리 민족의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이해와 깨달음보다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열 받음과 웃픔(웃음+슬픔)이 중요했다. 내 부모의 이야기였고, 내 이야기가 되어야했다. 그래서 숙연해졌다. 무기력함, 민망함, 부끄러움… 솔직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작년 5월에 썼던 칼럼(상실의 시대, 아무개 의인 in ‘미스터 션샤인’)의 후속편(?)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많이 고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반성 아닌 반성문을 쓰고 있다. 그 때는 결단했다면, 이번에는 솔직한 감정과 느낌을 나누고 싶었다.

무엇을 ‘깨닫는 것 그래서 결단하는 것’과 ‘느끼는 것 그래서 그 마음을 아는 것’의 차이를 새삼스레 말하고 싶었다. 지금보다 훨씬 아프고 우울했던 시대, 그 시대의 아픔을, 슬픔을, 눈물을, 안다고 함부로 생각(또는 착각)하면 안 되는 거였다는 걸 가슴 깊이 느꼈기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중 한 장면. 출처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출처 tvn

우리 하늘 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그 분의 나라가 이루어져가는 영원부터 영원까지의 이야기, 조금 좁히자면 우리가 매일(?) 보는 성경 속 사건과 인물의 이야기들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우리는 모른다. 그게 솔직한 표현이다. 하나님과 성경의 그 ‘무엇들’에 대해서 엄청 많이 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성경(66권 수많은 행들) 속 시대와 사건들의 정황, 인물들의 입장과 마음, 주님의 가르침, 그리고 십자가 사건... 나아가 그 모든 것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그 자체를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렇기에 죄송하고,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하는 게 지극히 정상일지 모른다.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팩션(Faction,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이자 예술-미디어의 한 장르, 다른 말로는 근대 역사드라마)이 필자에게 베푼 회개의 세례는 그래서 특별했다. 신미양요(1871)에서 의열단(1919)에 이르는 실제 역사의 토대 위에 풍성한 상상력이 더해져 완성된 ‘역사-신화적 판타지’는 화면 속 이야기의 재창조를 통해 필자의 감정 포텐(potential, 잠재력)을 터뜨렸다.

슬픈 소풍 같은 역사 이야기는 ‘내가 그 역사 속 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를 넘어 ‘내가 성서 속 그 사건 또는 그 인물이었으면 어땠을까?’의 성찰로 이끌었다. 감사한 건, 깨달음의 깊이가 더해진 것 이상으로 그 마음을 느끼고 헤아리는 긍정적 공감이 더 풍성해졌다는 것이다.

이해보다 훨씬 큰 공감을 통해 격하게 감정을 이입하며 이야기 속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된 것이다. 최고의 저린 슬픔 그리고 한숨을 통해 비극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정화-해소되는 겸손의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감사하다.

오롯이 감정 선을 따라 느낌의 흐름으로 써내려 가다보니 반성의 진심이 길어졌다. 이제는 이 모든 ‘마음의 깨달음’을 작품 속에 적용하면서 이 회개의 칼럼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무리 마음이 중요해도 안쪽으로만 함몰되는 것 또한 건강하지 않은 불균형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개인적으로 깊게 묵상한 작품 속 대사를 우리의 삶과 신앙에 짤막하게나마 적용해보고자 한다.

중심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결단과 적용은 여전히 귀한 것이니까, 그리고 이미 디스토피아의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역설적이게도 복락원의 유토피아를 간절하게 꿈꾸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중 한 장면. 출처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중 한 장면. 출처 tvn

마음은 선택을 했는데, 갈등 아닌 갈등을 하는 척하는 한 주인공의 대사: “애국을 하자니 몸이 고단할 것 같고, 매국을 하자니 마음이 고단할 것 같고..” 신앙의 언어로 하면 다음과 같을까? “신앙-윤리를 지키자니 몸이 피곤하고, 하나님 나라의 소중한 것들을 팔고 방종으로 살자니 마음이 고단하고..”

내 깜냥으로 지키고 있는 교리와 윤리의식, 우리는 그 잣대로 스스로의 삶과 신앙을 재단하며 공허한 자화자찬을 했던 건 아닌지 또는 마음의 배신에 따른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지는 않는지? 더 웃긴 건, 우리가 사고 팔 수 있는 나라도 아닌데 마음속으로 하나님 나라를 수도 없이 외면하고 사고팔았던 건 아닌지? 아니, 이미 그렇게 평생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 주인공의 뼈를 때리는 멋진 대사: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주권과 독립에 관한 대사이나 이는 또한 우리 하늘 시민권자들이 심중에 새겨야할 대사이다. ‘영적 전쟁’, 우리는 이 단어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영적으로 깨어있다는 전제 하에서도 함부로 할 말은 아니다.

왜? 아무리 훌륭한 신앙인이라도 자신의 영성을 스크루테이프에게 매일 빼앗기고 되찾는 무한반복의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게 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사하면서 또 인정해야할 것은, 그것이 신앙이라는 것이다.

무기력하게 내어주는 게 우리의 적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면, 매일 빼앗길지언정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하면서 자발적으로 내어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매일 실수해도 매일 회개할 수 있는 것, 그게 은혜라는 걸 기억하자. 내면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매일 실패하는 나를 인정하고 삶 속에서 다시 돌이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 글의 마지막 단어, ‘불꽃 속으로’, 작품 속 주인공들은 모두 마치 불나방처럼, 이카루스처럼, 불꽃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불꽃으로 타올랐다가 지려한다. 우리는 그럴 용기가 있나? 불 속으로 들어가려면 두려움을 뛰어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 줌의 재가 되어도 좋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런 용기와 각오가 있다면, 다 왔다고 생각하지 말고, 더 나아감을 선택해보면 어떨까? 그것이 우리의 소명이자 사명이라면, 두려움보다 믿음으로 나아가자. 그리고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타고 남은 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내 주변에서 성령의 아우라가 타오를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저 한 그루의 떨기나무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인침 받은 우리는 태극기에 수결한 아무개 의병이자 의인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눈물로 거듭날 때 함께 하겠다는 서약을 한 우리는 그 첫사랑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인생이 통째로 흔들릴지라도 믿음이 흔들려서든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하지 않는 밤에도, 심지어 이방의 아이처럼 기도하지 않는 자처럼 살 때라도,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는 그 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 하나님을 선택하고 붙잡겠다는 마음의 고백을 해야 할 것이다. 잊지 말아야할 건, 깨달음보다는 마음이라는 것, 그리고 이방의 아이였던 우리는 이미 고귀하고 위대한 자라는 사실이다. 아멘.

박형철서울여자대학교 특임교수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박형철 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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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찾아서 2020-07-11 22:49:53
무엇을 깨닫는 것, 결단하게 되는 것.’
참 좋은 표현인 것 같아요
포스트 코로나에 접어들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글이네요.

스런 2020-07-11 18:21:09
불꽃 속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나 그리고 도우시는 그분, 이미 거저 받은 은혜를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