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박세환 장로(전 육군대장, 전 국회의원), “선조들의 피땀으로 세워진 조국, 주여 인도 하소서”
[믿음의 사람]박세환 장로(전 육군대장, 전 국회의원), “선조들의 피땀으로 세워진 조국, 주여 인도 하소서”
  • 정성경 기자
  • 승인 2020.06.29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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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 첫 4성 장군이자 한국의 콜린 파월이라 불리는 박세환 장로. 출처 http://blog.daum.net/jink062/15670603

 

ROTC 출신 첫 4성 장군

월남전 파병으로 화랑무공훈장

군에서 근무지마다 교회 세우고

한국의 콜린 파월이라 불리며

늘 조국 위해 기도하는 신앙 가져

“나의 하루는 새벽기도와 함께 시작된다. 지휘관 시절부터 군 생활을 마칠 때까지 새벽기도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의 하루 일과 중 늘 첫 번째를 차지해왔다. 기도를 드리는 시간은 보통 새벽 다섯시 안팎인데 가정과 부대와 국가의 안녕 및 발전을 기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중략)...

내가 하나님이란 존재에 확신을 갖고 좀 더 착실히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은 소령 때 육군대학 교회에 다니면서부터였다. 군에 있는 동안은 근무지가 바뀌면 나가는 교회도 따라서 바뀌었다. 대대장일 땐 대대교회, 연대장일 땐 연대교회, 사단장일 땐 사단교회… 그래서 나는 누가 교파를 물으면 농담 삼아 ‘군대교회파’라고 대답하곤 했다. 물론 나는 장로교인이다.”

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학군사관) 출신 첫 4성 장군이자 국회의원, 재향군인회장을 지낸 박세환 장로의 인생 이야기를 엮은 ‘앞장서 걷는 사람이 길을 만든다’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새벽기도로 시작되는 하루’라는 제목의 글에 박 장로는 지휘관으로 근무하면서 부대 장병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1인1종교 갖기 운동’을 소개했다. 특정 종교를 강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운동을 펼친 이유는 확실하다.

먼저 신앙을 전투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장로는 1967년 5월 베트남전에 주월 한국군 대사관 경호소대장으로 참전해 을지무공훈장까지 받았다. 그는 당시 “신앙을 가진 병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용감히 적과 싸우는 것을 목격했다”며 “가령 전투기 조종사들은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했다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엔 출격을 보류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조종사는 그런 것들에 개의치 않고 운명을 하나님에게 맡긴 채 자심감을 갖고 전투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종교는 장병들의 인성교육에도 도움을 준다고 봤다. 그는 “종교 단체 어디를 가도 좋은 인성을 기르는데 보탬이 되는 설교가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장로는 신앙생활이 부대안전 및 사고예방에서도 효과가 크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신앙을 갖고 있는 병사는 매사에 조심을 하게 되고, 삐뚤어진 마음을 바로잡게 되어 군대 내 가혹행위가 줄어들어 사고 발생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박 장로는 종교별로 팀을 나눠 체육대회를 열어 ‘1인 1종교 갖기 운동’이 부대원들의 인화와 단결에 상당한 효과를 가져다줬다고 평가했다.

박 장로가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하는 것은 사단장과 군단장, 군사령관으로 지낼 때 부대 안에 종교 관련 건축물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한 것이다. 그는 “그 건물들을 봉헌한 이유는 나와 내 부하들의 건강과 안정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 내일을 맡기는 그의 기도도 함께 있었다.

그가 사단장 때는 을지교회를, 군단장때는 충용교회를, 군사령관 시절에는 무열대교회와 교육관을 봉헌했다. 그리고 1994년 11월 13일 열린 교육관 봉헌식에서 장로장립을 받았다.

박세환 장로가 세운 교회들. 출처 '앞장서 걷는 사람이 길을 만든다'

박 장로를 만나는 이들마다 그의 서글서글한 얼굴과 180cm의 키, 그리고 부드러운 말투에 놀라곤 했다. 사람들은 박 장로는 미국의 ROTC 출신 첫 흑인 4성 장군으로 합장의장을 지낸 콜린 파월에 빗대곤 한다. 콜린 파월은 자메이카 이민 2세로 뉴욕 할렘에서 태어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해 냈으며, 걸프전의 영웅이라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장로와 콜린 파월은 닮은 점이 많다. 어려운 환경에서 학비를 벌어가며 학교에 다닌 것, 30년 넘게 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 ROTC 장교 출신으로 4서 장군이 된 것,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것, 그리고 콜린 파월은 백악관에서 박 장로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참모로 일한 경험 등이 비슷하다.

1940년 4월, 경북 영주에서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박 장로는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에게 15대조가 되는 무의공 박의장의 행적을 들으며 자랐다. 무의공 박의장은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땅을 왜적으로부터 지킨 인물이다. 그때부터 박 장로는 무의공 박의장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마음에 새겼다.

박 장로에게 어렸을 적 아픈 기억이 있다. 장남이었던 형이 성년이 되기 전 유명을 달리하면서 “내 생에 처음으로 겪은 슬픔”을 겪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게 됐다. 독학으로 한학을 공부했던 아버지의 학구열을 물려받은 그는, “집에 가서 월사금을 타오라”는 교사의 지시에 등을 떠밀려 내쫓기듯 교문을 나서기도 했지만, 영주중학교, 안동고등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어난 한국전쟁은 긴 피난생활과 방학, 그리고 심각한 기근을 겪게 했다. 그는 “당시 인민군도 보고, 천지를 뒤흔드는 폭격 소리도 숱하게 들었다. 소백산에 숨어 있다가 사로잡힌 인민군 패잔병을 가득 실은 수 십대의 군용 트럭이 지나가던 장면들이 기억난다”며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이라고 회상했다.

대학생이던 당시 그는 가정교사를 하며 대학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60년 4월 18일,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대규모 가두시위에 선발대로 섰다. 종로2가에서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관에게 잡혀 종로 경찰서로 이송됐지만, 당시 유진오 총장과 당시 내무부 장관의 합의로 석방됐다. 그리고 4월 19일, 그는 또 다시 고려대 데모대의 선봉에 섰다. 전국의 주요도시에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4월 26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소식이 전해졌다.

이듬해, 우리나라 대학에 처음으로 ROTC 제도가 도입되면서 1기로 지원했다. 그는 “전 생애를 직업 군인에 걸고 뜻을 펼쳐 볼 생각은 아니었지만, 누구나 군대를 가야한다면, 사병이 아닌 능동적이고 리더십과 통솔력을 연마할 수 있는 장교로 복무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1961년 5월 16일, 합격자 발표가 나고 처음으로 교육을 받던 다음날, 5‧16쿠데타가 일어났다.

게다가 그해 7월에 박 장로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당시 전국이 장마에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영주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올라온 그의 손에 ROTC동기생들이 모아준 조의금 2만 1천 5백 50환이 들려있었다. 두 학기 등록금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지만 그는 그 돈을 동아일보사 ‘수재 의연금 기탁처’에 ‘고려대학교 학군단 1기 훈련생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1백원을 보탠 2만 1천 6백 50환을 기탁했다. 7월 28일자 동아일보에는 그의 동기의 제보로 그의 기탁 사실이 실리기도 했다.

이후 모교인 고대에서 ROTC 교관 생활을 하고, 군인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육사 출신들이 군의 요직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선배도 한명 없는 ROTC 출신의 그가 군인으로 승부를 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베트남 전선에 뛰어들며 그의 인생의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7년 5월, 베트남으로 향한 박 장로는 비둘기부대에 배치되어 베트남의 항구도시 사이공(지금의 호치민시) 시내에 있는 한국 대사관 및 대사관저를 경비했다. 1968년 1월 31일, 온 국민이 축제의 분위기에 들떠 있던 구정, 베트콩들의 기습 공격을 받았지만 월남군과의 주도면밀한 연합공격으로 승리로 이끌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 장로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화랑무공훈장, 주월 한국 대사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월남공화국 대장으로부터 월남1등민사 명예훈장을, 주월사 윤성민 장군으로부터 인헌무공훈장을 받았다. 이후로도 대통령 표창, 보국훈장인 천수장, 국선장, 통일장을 받았다.

1963년 3월 1일, 채명신 사령관으로부터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는 박세환 장로. 출처 '앞장서 걷는 사람이 길을 만든다'
15대, 16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재향군인회 33대 회장을 역임한 박세환 장로. 본인 제공

박 장로는 1963년 ROTC 1기로 임관해 몸 담았던 군대 생활을 1995년 3월 제2군사령관을 끝으로 육군대장으로 전역했다. 그리고 15대, 16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재향군인회 33대 회장을 역임했다.

재향군인회 회장으로 재임 당시 박 장로는 젊은이를 대상으로 전국 차원의 각종 안보 강연을 통해 청소년들의 보훈의식을 제고하고, 참전수당을 인상하고 6·25참전유공자회가 ‘국가유공자단체’로 지정되도록 앞장섰다.

박 장로의 생애에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 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에서 세 번의 자동차 사고로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구해주셨다”며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올해로 81세를 맞는 박 장로는 여전히 조국을 위해 기도한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그는 “선조들이 피땀 흘려 세운 나라고, 많은 발전을 이뤘다. 세계에 선한 영향력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길 늘 기도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더욱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며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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