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기독교미술과 믿음의 발자취 ④ 어둠 속에서 빛을 추구한 카라바조
[전문가 칼럼] 기독교미술과 믿음의 발자취 ④ 어둠 속에서 빛을 추구한 카라바조
  • 임재훈 목사
  • 승인 2020.06.2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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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라바조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다메섹 도상의 회심’(The Conversion on the Way to Damascus, 1600-01)은 순례자들이 로마에 도착하였을 때 제일 먼저 마주하는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 체라시 경당에 있는 작품이다.

교황청 재무장관 체라시가 이토록 중요한 장소에 자신의 이름으로 봉헌된 경당을 장식할 그림을 카라바조에게 주문한 것은 그의 작가로서의 명성이 최고조에 도달한 것을 의미한다.

로마 대약탈(Sacco di Roma, 1527)로 수세에 몰렸던 가톨릭교회는 트렌토공의회(1545-63) 이후 수습국면을 맞아 그리스도교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로마(Roma triumphans)의 면모를 쇄신하고자 교황 식스토 5세와 바오로 5세 때에 대대적인 로마정비 사업을 벌인다. 이때 각지에서 건축가, 미술가, 장인들이 로마로 모여드는 데 이런 분위기 속에 카라바조도 1592년 밀라노에서 로마로 온 지 10년 남짓 만에 대가가 되려한 뜻을 이룬 셈이다.

2. 고요한 정적 속에 쏟아지는 빛은 화면 중앙의 커다란 말과 땅에 쓰러진 사울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다. 모든 부차적인 요소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나타내려고 하는 대상만을 화면에 담은 구성과 함께 사건의 내적인 핵심을 드러내는 빛은 연극무대의 조명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17세기는 세상을 극장(theatrum mundi)으로 비유할 만큼 오페라, 연극, 발레 등 무대예술의 부흥기였는데, 카라바조의 회화가 빛의 작용과 극적인 연출로 드라마틱한 순간을 포착함으로 이런 모든 경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카라바조, 다메섹 도상의 회심, 1600-01, oil on canvas, 230x175cm,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 체라시 경당
카라바조, 다메섹 도상의 회심, 1600-01, oil on canvas, 230x175cm,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 체라시 경당

3. 일반적으로 이 장면을 묘사할 때 하늘로부터 한줄기 섬광이 사울에게 비쳐지는 모습이 등장해왔다. 카라바조가 유일한 선배이자 라이벌로 여긴 미켈란젤로조차 그의 '사울의 회심’(The Conversion of Saul, 1542-45)에서 여전히 천군천사를 동반한 천상의 그리스도가 사울에게 빛을 내리치는 전통적인 도상에 머무르고 있다.

미켈란젤로, 사울의 회심, c.1542-45, fresco, 625x661cm, 바티칸 파올리나 경당
미켈란젤로, 사울의 회심, c.1542-45, fresco, 625x661cm, 바티칸 파올리나 경당

하지만 카라바조는 사울의 회심을 철저히 개인의 내면적인 사건으로 표현하고 있다. 누워서 두 팔을 벌리고 경련하는 몸과 감겨진 눈에서 사울에게 임한 영적인 능력이 감지될 뿐이다.

사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체험이 정적인 심리드라마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명암법 테네브리즘(Tenebrism)의 대가가 선명한 광휘를 부각시키지 않고 자연의 빛이 아닌 사울의 영혼의 눈으로 보이는 영적인 빛, 영혼의 리얼리즘을 표현하고 있는 데에 이 작품의 위대함이 있다.

개인의 주관적 감정과 신앙체험을 강조한 16세기 후반 예수회양식(Jesuitenstil, 17세기의 화려하고 장엄한 양식과는 구별되는)의 영향은 물론 개신교 종교개혁신학까지도 작품에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바닥에 누운 사울의 머리가 관람자를 향하는 혁신적인 구도는 그의 몸이 화면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화면에 깊이를 더하는 바로크의 공간확대이다.

4. 카라바조의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The Crucifixion of St Peter, 1600-01)은 ‘다메섹 도상의 회심’과 함께 체라시 경당의 중앙제단화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의 ‘성모의 승천’(Assumption of the Virgin, 1600-01)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마주보고 있다.

로마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 체라시 경당(Cappella Cerasi, Basilica di Santa Maria del Popolo, Roma), 중앙 카라치의 제단화, 좌우 카라바조의 두 작품
로마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 체라시 경당(Cappella Cerasi, Basilica di Santa Maria del Popolo, Roma), 중앙 카라치의 제단화, 좌우 카라바조의 두 작품

카라치의 중앙 제단화를 기준으로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은 좌측에 그리고 다메섹 도상의 회심은 우측에 위치해있다. 초기 바로크의 자연주의와 고전주의 경향을 대표하는 양대 거장의 작품이 순례자를 맞아 새 시대의 미술을 과시하게끔 기획된 것이다.

십자가를 세우려 애쓰는 세 남자의 긴장된 몸은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무심함을 드러내준다. 베드로의 머리가 제단 안쪽으로 향하는 반면 맞은편 사울의 머리는 관람자를 향함으로 파노라마를 보는 것처럼 두 그림의 구도를 설정하였다. 순교의 순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베드로의 성숙한 내면이 사방을 둘러싼 짙은 어둠의 적막과 신비 속에 돋보이는 작품이다.

카라바조,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 1600-01, oil on canvas, 230x175cm,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 체라시 경당
카라바조,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 1600-01, oil on canvas, 230x175cm,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 체라시 경당
미켈란젤로,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 c.1546-50, fresco, 625x662cm, 바티칸 파올리나 경당
미켈란젤로,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 c.1546-50, fresco, 625x662cm, 바티칸 파올리나 경당

해설 : 이탈리아 베르가모 지역의 카라바조에서 출생한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로마 초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는 석공의 가정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활약하던 티치아노의 제자, 시모네 페테르자노(Simone Peterzano)의 문하에서 미술수업을 받는다.

그의 스승을 위시해 롬바르디아 화단에서는 매너리즘이 주도하는 로마, 피렌체와 달리 인접한 북유럽의 영향으로 사실주의 기법과 일상생활을 소재로 하는 화풍이 있었는데 후일 카라바조의 바로크 자연주의 미술의 기초가 된다.

카라바조는 롬바르디아 미술의 전통을 기반으로 사실주의 표현과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자신만의 명암법(Chiaroscuro)인 테네브리즘(Tenebrism)의 개발, 감정의 고양을 일으키는 화면의 극적인 구성을 통해 이전의 르네상스, 매너리즘과 구별되는 새로운 미술을 구현하였다. 그에게 명암법의 효과에 대해 눈뜨게 해준 이는 조반니 지롤라모 사볼도로 추정된다.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은 후세페 데 리베라, 벨라스케스, 루벤스, 렘브란트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어둠과 빛을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였으며 종교화의 등장인물의 묘사를 이상화, 신성화 하지 않고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해 감상자에게 호소력을 지님으로 대중적인 신앙고양을 목표한 반종교개혁 정신에 부합하였다.

특히 그는 기초 도안이나 밑그림 없이 화폭에 채색을 하면서 스케치를 병행하는 알라 프리마(alla prima) 기법을 구사하였다. 바로크 회화를 창시한 천재적인 화가였지만 보헤미안적이고 반항아적인 성품으로 인해 수많은 사건에 연루되다가 결국 우발적인 살인으로 도피생활을 하던 중 바로크적인 격정의 삶을 39세에 단명하였다.

오타비오 레오니, 카라바조의 초상화, c.1621, 종이에 분필, 23,4x16,3cm, 피렌체 비블리오테카 마루셀리아나
오타비오 레오니, 카라바조의 초상화, c.1621, 종이에 분필, 23,4x16,3cm, 피렌체 비블리오테카 마루셀리아나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 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과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 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과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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