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70주년, 우리는 어떤 길을 왔고 또 어디로 가야하나
한국전쟁 70주년, 우리는 어떤 길을 왔고 또 어디로 가야하나
  • 정성경·김유수 기자
  • 승인 2020.06.2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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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주년 맞은 6.25 전쟁
고통과 눈물의 분단을 넘어서
교회는 평화 위한 노력 이어가
최근 경직된 남북관계에도
평화와 협력 위한 교계의 권면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인민군은 기습 남침으로 3일 만에 북한군이 수도 서울을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국군 1, 2, 3, 5, 7, 수도 사단이 전멸해 국군 44,000명이 전사했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3년 1개월 2일간 치러진 6.25전쟁에서 남북 인적 손실은 4,118,929명에 달하며 대한민국에 1,598,929명의 국군, 민간인, 납북자 피해가 발생했다. 이중 민간인 피해는 절반을 넘는 990,968명이다.

6.25 전쟁으로 교회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6.25 전쟁에서 교역자만 358명이 순교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36년간 순교한 순교자 수의 8배가 넘는다. 전쟁으로 890여 교회가 파괴됐고 공산당의 교인 학살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순교했다. 또한 일제 역사적 부채가 청산되지 않은 채 겪은 한국전쟁 전후로 한국 장로교회는 부산에서 거대한 분열을 경험했다. 대한예수고장로회 고신이 1951년 분열됐고 이후 한국기독교장로회(1953)가 분립해 나갔다. 전후 혼란한 환경 속에 남은 교회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과 통합(1959)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2018년 이산가족 상봉행사 후 이별하며 작별 인사하는 이산가족들. 출처 통일부<br>
2018년 이산가족 상봉행사 후 이별하며 작별 인사하는 이산가족들. 출처 통일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정부 정책과 통일을 위한 노력

냉전의 맹위가 잠잠해진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 때부터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남한 정부의 본격적인 노력이 시작됐다. 노태우 정부는 여러 차례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었고 그 결과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했다. 1998년엔 한국의 기업과 정부의 노력으로 한국 민간인들이 북한의 금강산을 여행할 수 있게 됐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며 남북관계가 개선의 급물살을 타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평양을 방문해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이 회담에서 남북 대표는 기초적인 통일 방안에 대해 합의한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이후 3차례에 걸쳐 3,400여 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남북 체육·문화 교류도 활발히 이뤄져 2000년 5월 24일에 북한 ‘평양 학생 소년 예술단’이 서울에 공연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에 입장했다. 2002년엔 6.15선언을 바탕으로 북측이 개성공업지구법을 제정 공포했고 남측 한국토지공사 및 기업들의 투자로 2004년 6월 2만 8천 평 부지의 개성공단과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사무소가 개소했다.

그러나 지난 2006년 북한이 4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을 이어갔고 유엔 안보리가 강력한 대북제재를 결의하여 남북관계는 급격히 경색됐다. 또한 1, 2차 연평해전, 금강산 피살사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의 사태로 인해 금강산 관광이 폐지되고 개성공단도 폐쇄되고 말았다.

2018년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출처 통일부<br>
2018년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출처 통일부

현재 남북한의 상황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여하고 11년 만에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입장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 4월 27일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6.25 전쟁 종전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한 선언문을 발표하며 남북관계 개선의 분위기가 꽃폈다. 그 해 6월 싱가포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갖고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보장, 6·25 전쟁 전사자 유해송환 등에 합의했다.

남북관계의 순풍도 잠시, 작년 2월 하노이에서 있었던 2차 북미정상회담은 ‘노딜 회담’으로 끝나게 되고 이후 남북관계에 특별한 진전이 없는 시간이 계속됐다. 그리고 지난달 4일 북한의 김여정 제1부부장이 판문점 회담에서 약속한 대북전단살포 금지 약속이 이행되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했고 북한은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폭파’, ‘남북 간 통신선 차단’ 등의 강력한 대응 조치를 실시했다. 최근 북한은 2년 만에 대남전단살포와 확성기 철거 설치까지 예고하고 있어 4·27 판문점선언이 폐기 수순에 돌입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등장하고 있다.

통일의 선례, 독일

1945년 9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프랑스·영국·미국의 점령 지역은 독일 연방 공화국이 됐고, 소비에트 연방의 점령 지역은 공산 국가인 독일 민주 공화국이 됐다. 1961년 동독이 쌓아 올린 베를린 장벽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넘는 이들이 생겼다.

분단 이후 동독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더 이상 발전이 없었으나, 서독은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을 이뤘다. 서방과의 동맹을 강화하며 소련 및 동구 여러 나라들과 화해 외교를 펼치면서 동독과 서독은 함께 국제 연합에 가입하기도 했다. 또한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직접적인 교류와 동독의 민주화 요구 시위 등으로 마침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분단된 지 41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독일은 짧은 기간 안에 통일을 이루면서 서로 다른 격차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서독 기업들이 동독 지역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해도 새로운 기술 지식이 부족한 동독 사람들을 채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에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며, 동독 출신 노동자를 채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교육이 필요했다. 또한 화폐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많은 동독회사들은 문을 닫게 되는 등 경제생활이 어려워지자 동독인들은 고향을 떠나 서독지역으로 이주했다. 이것은 서독지역의 인력 시장에 공급 초과를 가져오게 되어 실업률을 상승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2014년 전문가들은 독일의 경우 통일에 따른 편익이 비용보다 훨씬 크다고 봤다. 내수 및 동유럽 시장이 확대됐고 기업의 생산이 증가했으며, 연합군 주둔 비용 등 안보 비용이 감소하고, 세수와 정부의 자산이 증가하는 등 분단됐을 때와 비교해 비용이 감소됐기 때문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한독정상회담에서 "독일 통일은 정말 행운이자 대박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서독은 분단 시절부터 이미 많은 것을 공유해왔다. 동서독 주민 간 서신교환이나 전화 통화도 허용되고 있었으며, 동독 주민들은 서독 TV를 시청할 수 있었다. 또한 동독 언론의 특파원이 서독에 상주했고, 서독 특파원도 동독에 머물렀다. 1950년부터 통일 전까지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간 인구가 490만 명에 달했고 반대로 서독에서 동독으로 47만 명이 이주했다. 이처럼 체제는 달랐지만 주민들 간의 큰 이질감은 없었다.

남북 교회 연합행사 이후 평양 봉수교회 앞에서 선 NCCK 관계자들. 출처 NCCK
남북 교회 연합행사 이후 평양 봉수교회 앞에서 선 NCCK 관계자들. 출처 NCCK

교계에서 진행된 통일을 위한 노력

한국교회는 냉전 구도 아래, 지금보다 통일에 대한 논의조차 쉽지 않았던 80년대부터 국제적 협력을 통해 북한선교와 평화통일 힘써왔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교회엔 기독교 반공주의가 팽배했고 사회에서도 통일에 대한 논의조차 금기시됐지만 한국교회는 8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통일 운동을 전개해왔다.

1980년대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세운 독일한인교회들은 재독한인교회협의회를 조직했고 타국에서 남북 화해와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독일교회는 1981년 한국교회와 한독교회협의회를 조직했고 1989년 독일 개신교의 날에 북한교회를 공식 초청해 남북교회가 독일 베를린에서 역사적인 예배를 함께 드렸다.

세계교회협의회(WCC)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대북인권을 위한 대내외적 활동에 힘썼다. WCC는 1985년 북한을 공식 방문했고, 1986년 9월 스위스 글리온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1차 기독교 국제협의회’를 개최했다. 2013년 10월 부산에서 개최된 WCC 제10차 총회에서 WCC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문을 채택했다. WCC는 이 선언문에서 공식적으로 한반도의 치유, 화해, 평화를 위해 대북인권 문제를 다뤘다.

국내에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와 에큐메니컬 인사들이 적극적인 남북평화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NCCK는 1982년 제31차 총회에서 민족통일 논의를 활성화 하기 위해 '통일문제연구원 운영위원회'를 신설했다. 이를 바탕으로 1988년 제37차 총회에서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통해 평화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 선언에서 NCCK는 1995년을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부터 한국교회는 대대적인 북한동포돕기운동을 전개하는 등 북한동포를 위한 인도적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후 맞이한 여러 위기로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에도 한국교회는 진보, 보수 교단을 초월해 인도적 대북지원을 이어갔다. 한국교회는 평화통일과 북한 선교를 한국교회의 사명을 여기고 북한교회와 대화를 이어가며 우리 사회에 민족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한국교회총연합은 지난 18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한국전쟁 및 손양원 목사 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렸다. 김성해 기자
한국교회총연합 한국전쟁 및 손양원 목사 순교 70주년을 기념예배 장면. 김성해 기자

교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도 한국교회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김태영, 류정호, 문수석 목사)는 지난 18일 ‘6.25 한국전쟁과 손양원 목사 순교 70주년 기념 예배’를 열고 △정부는 휴전 상태 종식과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은 자국의 이익에 편승한 한반도의 영구분단 정책을 내려놓고 분단된 민족, 분열된 가족의 교류를 보장할 것 △한국교회는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무력과 대결을 통한 적대시 정책을 거부하며, 평화의 길을 열어가는데 헌신할 것 등을 천명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한 한국교회남북교류협력단(협력단 공동대표 강경민, 나핵집, 한영수, 화종부, 이영훈)은 지난 23일 ‘전쟁없는 한반도와 남북 상생 평화의 길로 나아갑시다’라는 제목이 호소문을 발표해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은 작금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여정을 중단할 수 없다. 한반도평화를 위하여 가장 시급한 것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체결, 군축과 한반도 비핵화”라며 “남북관계가 다시금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이때, 우리 협력단은 한국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칠천만 겨레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일에 헌신적으로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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