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력으로 1703년 6월 17일에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가 영국의 시골마을 엡워스(Epworth)에 태어났다. 존 웨슬리의 생일을 오늘날의 그레고리력으로 따졌을 때는 6월 28일인데, 영국은 그레고리력을 1703년이 지나서야 받아들였기에 웨슬리의 출생날짜는 두 달력의 날짜로 전해진다.
존 웨슬리의 생애는 옥스퍼드(Oxford)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옥스퍼드는 웨슬리가 젊은 시절에 학문을 공부한 곳이기도 하지만, 감리교의 모태가 되는 메소디스트(Methodist) 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2018년에 박창훈은 ‘존 웨슬리의 옥스퍼드대학 설교’라는 논문을 통해서 1517년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과 1730년대 옥스퍼드 대학의 사역이 여러 가지 점에서 비슷하다고 강조한다. 그 당시 독일사회와 영국사회에서 가장 지성적인 지식인들이 모인 대학에서 루터와 웨슬리는 교회개혁을 위한 첫 몸부림을 시작한 것이다.
1729년에 존 웨슬리는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의 부탁을 받고, 옥스퍼드로 돌아와 메소디스트 운동을 시작했다. 두 형제를 중심으로 시작된 메소디스트 운동은 성경적 경건훈련을 포함했는데, 정기적으로 모여 경건서적을 읽고, 기도를 하며, 예배와 성례전에 자주 참석했다. 또한 그들은 감옥과 병원을 방문하여 위로하고, 빈민가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노인들을 돌보는 활동도 시작했다.
역사가들은 존 웨슬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의 회심을 꼽는다. 1738년 5월 24일 오순절 주간에 웨슬리는 런던의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한 모임에서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 웨슬리의 체험은 루터교도라고 자청하는 모라비안들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회심 이후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한 웨슬리는 영국성공회의 제재와 직무파면으로 더 이상 성공회에서 목회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이후 웨슬리는 감리교운동을 이끌며 1791년 88세의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세계는 나의 교구다’(The World is my parish)라고 외치며 열정적인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