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논문] 한국교회의 현황: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적 특성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고찰
[이달의 논문] 한국교회의 현황: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적 특성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고찰
  • 김성해 기자
  • 승인 2020.06.1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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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철 교수
인덕대학교 종교 사회학, 교목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적 특성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고찰

이 연구는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발전하였는지 살펴본다. 이를 위해 우선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를 구분하였고 또한 근본주의의 특징을 내적 특징과 외적 특징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이 연구는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적 특성은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으로 편향된 근대화 과정, 한국 전쟁, 다종교 문화, 미국 근본주의의 유입 등과 같은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요소들로 인해 형성되었다는 논의하였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는 편향된 근대화를 정당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성과의 불화를 겪고 있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는 전쟁 경험으로 인해 강력한 반공주의 나아가서 레드 콤플렉스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는 다종교 문화 안에서 개신교의 이익을 위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투쟁을 전개하여 실질적인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나아가서 기독교 정당을 창당하고 의회에 진출하는 직접 정치를 실현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정치 시도는 이원론적이고 종말론적인 세계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고 언제나 투쟁을 선택하기 때문에 결국 사회 갈등을 초래한다.

복음주의, 기독교 복음 메시지 중심적
근본주의, 정치적인 운동 활동에 관심
한국 개신교, 보수를 넘어 근본주의화
근본주의자, 사회에서 갈등 초래하다
한국교회, 갈등의 중심이 되지 말아야

장형철 교수.
장형철 교수.

 

<연구자와의 인터뷰>

논문에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만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차이점, 유사점, 그리고 특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 부탁드립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보면 먼저 복음주의란 단어는 그 의미가 오늘날의 맥락과는 조금 다르지만,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통해 가톨릭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할 때 사용했던 말이다. 당시 가톨릭은 사도들로부터 내려오던 전통을 강조했기에 루터는 성서를 이야기하면서 복음주의란 말을 같이 사용한 것이다.

근본주의, 특히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경우는 1925년에 생물학 교사가 진화론을 가르친 것에 대해 고소당했던 스코프스 재판이 근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시초이다. 근본주의란 말은 1910년에서 1915년까지 발행된 The Fundamentals이라는 제목의 12권의 씨리즈 책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때문에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는 우선 역사적인 맥락도 다르고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차이점을 보인다. 복음주의 경우에는 정치 보다는 주로 복음에 중심을 두고 있다. 반면 근본주의는 본인들은 기독교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행동을 보면 상당히 정치적인 운동을 펼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다. 특히 우익 보수와 연합 내지는 동맹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복음주의를 신앙운동이라고 명한다면 근본주의는 정치운동에 가까운 편이다. 정치라는 것은 나의 편과 나와 다른 상대편, 혹은 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또 상대방과 싸우거나 타협하기도 한다. 그런데 개신교 같은 경우는 이웃을 사랑하라, 더 나아가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데, 정치판에서는 이러한 것이 쉽게 이뤄질 수 없다. 실제 정치에서는 때로는 상대방을 숙청시키는 경우도 발생하기에 근본주의는 기독교적인 가치를 지키는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의 핵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위험 단계까지 다다르게 된다. 물론 근본주의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근본주의 형성과 발전의 4가지 요인(편향된 근대화과정, 한국전쟁, 다종교문화, 미국 근본주의 유입)으로 정리하셨는데, 이 요인들이 오늘날 더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다고 보십니까?

보통 근대화를 이야기 할 때, 특히 서양에서는 합리성의 등장과 발전 그리고 합리성으로 인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근대화는 ‘잘 살아보세’라는 표어를 앞세운 새마을 운동의 영향을 받아 산업과 경제의 발전에 집중하였다. 이것이 바로 편향적 근대화 과정이다. 말하자면 산업과 기술이 발전하여 하드웨어는 만들어졌는데 정작 합리성에 기반한 사고와 의식이라는 소프트웨어는 굉장히 약한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더욱 심화되고 있어서 극우화, 극좌화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한국전쟁의 경우는 전 국토를 황폐화시켰고, 전 국민, 가족과 각 개인에게 엄청난 상처와 피해를 입혔다. 그 고통에 대한 기억과 두려움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다종교문화라는 것은 과거에서부터 있었다. 어떻게 보면 가톨릭과 개신교가 다종교 문화보다 한국 역사 속에서 후발주자인 셈인데도 불구하고 국내 종교 경쟁 가운데에서 먼저 앞서가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화가 진행되고 사람들의 의식이 성숙해지면서 과거의 공격적인 선교가 사람들에게 거부감으로 받아들여지게 됐고, 그러다 보니 정치와 연합하고 동맹하며 개신교가 누려왔던 특혜와 특권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교회는 성장 보다는 정체 내지는 감소하는 추세에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노령화까지 진행되다 보니 교회들의 마음이 더 조급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 근본주의 같은 경우는 국내 최초 서양 선교사들이 근본주의자들이 가르치는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근본주의적 성향이 있었던 것이고, 그들이 선교사로서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근본주의자 메이첸(John G. Machen)이 프린스톤 신학교에 재직하던 당시 공부하였던 신학생들이 선교사가 되어 내한하였다.

그런데 사실 미국의 근본주의는 굉장히 약화되었다. 여전히 근본주의자들이 존재하고 있고, 근본주의에 대한 연구도 많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미국에서 근본주의는 소수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보수들이 점점 더 보수화되고 있고, 그걸 넘어서서 근본주의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개신교인 중의 다수가 보수이며, 소수만이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개신교 내 보수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개신교인이 아닌 한국사회의 시민들에게는 개신교의 매력이 아닌 거부감으로 다가오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년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전광훈과 범투본, 기독자유당 등이 과격하고 갈등적인 정치참여를 해오고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미국의 마틴 마티(Martin Marty)는 근본주의를 연구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다. 이 프로젝트의 재미있는 점은 근본주의는 개신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와 지역에 존재하고 있다. 불교 근본주의, 힌두교 근본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유대교 근본주의 등 이 각 지역마다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한 근본주의의 특성을 연구했는데, 대체로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갖는 유사한 점, 공통점은 사회를 통합하거나 일치시키는 기능보다는 사회에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범투본 등은 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있으며, 현재 그들의 모습은 이미 종교보다는 정치 모습이 더 강해진 상태이고, 결국은 종교가 아니라 정치에 더 치우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근래 한국사회와 한국교회가 초갈등사회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근 바탕에 근본주의 신앙이 있지 않은지요? 그리고 교회차원의 올바른 대응과 크리스천 개인적 성찰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종교계를 시장으로 비유한다면, 우리나라에는 3개의 종교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바로 개신교와 불교, 천주교다. 각 종교마다 특징이 있겠지만, 그 중 개신교의 경우 교육 수준이 다른 종교에 비해 높다. 또 개신교 신자들의 경제적인 수준도 중상층 이상인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러한 특징들이 개신교 목회자들 혹은 개신교의 보수적인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시키는 힘이었다.

그러나 이는 과거 70, 80년대 개신교가 한창 성장할 시절의 이야기다. 그 당시에는 교회가 사회보다 지적 수준, 조직 능력, 교회 프로그램 등의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과거에는 목회자가 설교하고 이야기하면 신자들은 그냥 곧이곧대로 아멘을 외치며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사회 전체적인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교회와 사회의 수준이 차이가 크지 않다. 오히려 목회자의 수준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더 이상 사람들이 교회의 목소리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 모든 교회가 겪고 있는 일이겠지만 한국교회가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 전체 신도 연령대를 놓고 연령이 낮은 쪽으로 가면 갈수록 교인의 숫자가 작아진다. 때문에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들도 많은 편이다. 결국 남아있는 신도들은 어르신들뿐인데, 이분들마저 돌아가시게 되면, 교회 입장에서는 점점 교인이 감소하는 길로 갈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봤을 때 교회는 현 사회에서 갈등의 주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회는 갈등을 어떻게든 해소하거나 조정해줄 수 있는 위치를 가지려고 노력해야지, 교회가 또는 교인이나 목회자가 갈등의 당사자가 되면 안된다. 사실 이것은 굉장히 기본적인 이야기이다. 그런데 현 상황을 살펴보면 개신교가 점점 더 보수화되고 근본주의화 되면서 갈등의 당사자가 개신교가 되고 있다.

종교는 현시대와 같은 때 일수록 자기 자리를 잡고 그 자리를 지켜나가며, 본래의 성격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사회의 혼란에 휩쓸리면서 갈등의 주체가 되어버리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5월 말, 21대 국회가 시작됐습니다. 새 국회에도 많은 크리스천 국회의원이 있는데, 크리스천 국회의원들의 활동에 대해 주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중세시대에는 종교가 곧 정치였다. 그래서 교황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에 맞춰 세상이 돌아갔지만, 근대로 넘어오면서 소위 말하는 정교분리가 이뤄졌고, 그 이후 대부분의 상황과 사례들을 살펴보면 정치가 종교를 이용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물론 종교도 정치를 등에 업으려는 시도를 했지만, 열의 여덟, 아홉은 실패의 길로 들어섰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종교는 정치와 거리를 분명히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때에 따라서 정치적인 현안에 대해 발언할 것이 있다면 발언하고, 거기에 대해 반응하고 활동하는 것까지만 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넘어서서 종교 자체가 정치화되어버린다면 결국 종교의 모습은 더욱 더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다르다. 그들은 전문 정치가들이다. 그리고 크리스천 국회의원들 중에는 장로인 사람도 있고 권사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크리스천으로서 정치 활동을 하기 바란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적인 양심과 사랑(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과 같은 기독교적인 가치를 잘 실천하기 위해 힘썼으면 좋겠다.

본인의 신앙적인 가치나 양심이나 믿음에서 어긋나는 일이라면 정당과 소속 등과 상관없이 발언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활동을 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도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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