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겔칼럼]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자라나는 신뢰와 연대의 소망
[데겔칼럼]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자라나는 신뢰와 연대의 소망
  • 문상현 교수
  • 승인 2020.06.01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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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의 모든 담론이 감염병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맞춰지고 있다. 이는 학술공동체와 저널리즘 영역뿐 아니라 일상의 담론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에서 지난 수십 년간 겪은 그 어떤 위기와 혼란을 무색하게 할 만큼 코로나19는 전일적이고 압도적인 공포가 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적은 나의 가족과 이웃을 숙주 삼아 일상적으로 행해 왔던 접촉과 관계를 통해 번성하고 있다. 그 적과의 싸움 방식이 마스크로 대화를 차단하고 손 씻기로 접촉의 흔적을 지우며 타인과의 거리두기라니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절망적인가. 모름지기 사회란, 공동체란 무엇인가? 사랑하는 대상과 침을 튀기며 수다를 떨고, 친밀한 스킨십을 통해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며, 조금이라도 가까이 붙어 우리가 같은 문화와 정서를 공유하는 구성원임을 확인하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염병은 우리의 존재론적 근거와 목적을 파괴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가장 큰 두려움은 신체적 위해가 아니라 고립과 단절의 일상화로 인한 사회적 연대의 소멸일지 모른다.

최근 kbs, 시사IN, 서울대가 공동으로 수행한 코로나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가 화제다.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대해 응답자의 95.8%가 ‘지키고 있다’고 했고, 외출 시 항상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답변 역시 80.3%에 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높은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한다면 응답자 중 97.4%가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들이 밝힌 동참의 이유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내가 확진자가 될까 봐 두려워서(63.7%)'보다 '나로 인해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더 두려워서(86.0%)' 지키겠다고 답한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감내하는 이유가 다른 사회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란 뜻이다. 또 다른 질문들의 결과도 의미심장하다.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다'라는 질문에 28.9%가 그렇다고 답한 작년 12월과 비교해 코로나19를 겪은 올해 5월에는 응답자의 57%가 긍정적으로 답한 것이다. 과거 OECD 조사에서 늘 얼굴을 붉히게 했던 낮은 사회신뢰도(trust)에 반전이 일어나는 신호처럼 보인다. 또한 '한국은 희망이 없는 헬조선 사회'란 명제에 대해 '그렇다'는 답변이 작년 57.4%에서 올해 25.9%로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규정했던 ‘헬조선’이란 용어의 효용이 끝났다는 의미이다.

K-방역의 일시적 성공과 동경하던 선진국들이 드러낸 무능력으로 인해 생긴 착시일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조사결과는 사회적 연대의 소멸에 대한 우려가 기우임을 어느 정도 암시한다. 보이지 않는 공포와 이로 인해 강제된 고립과 단절의 일상이 오히려 공동체와 사회적 연대의 귀중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와 국가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한낱 허상임을, 나를 나답게 하고 나의 안위를 지키는 것은 결국 나의 이웃과 내가 속한 공동체뿐임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반사회적이고 반공동체적인 규율 속에서 그동안 불가능해 보였던 신뢰와 연대의 소망을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문상현 교수 <br>​​​​​​​(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br> 한국교회언론연구소 연구위원)

문상현 교수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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