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성스러운 한 끼
[예술과 목회] 성스러운 한 끼
  • 손원영 교수
  • 승인 2020.05.30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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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 평소 친분이 있는 경향신문의 박경은 기자가 『성스러운 한 끼』(서해문집, 2020)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보내주었다. 이 책은 ‘종교와 요리’를 주제로 하여 기자답게 현장감을 살려서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인데, 그는 내가 펼치는 예술목회운동이 이 책을 쓰는데 적지 않은 교훈을 주었다며 나에게 고마움을 표해주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보내준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코로나-19로 가급적 자기격리를 실천하는 이 때, 독서만큼 좋은 소일거리도 없거니와 더욱이 뜻을 같이하는 동지의 옥고를 읽는 일은 매우 기쁜 일이다. 실제로 독서를 마친 후 그 여운은 마치 좋은 포도주를 마신 후 입가에 남아있는 잔향처럼 깊고 길기만 하다.

책 내용 중에 ‘교황의 요리책’이라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에서 박경은 기자는 2015년 교황청 근위대의 취사병인 가이서(David Geisser)가 쓴 책 『부온 아페티토』(Buon Appetito)를 소개해 주고 있다. 여기서 ‘부온 아페티토’는 이탈리아어로 ‘맛있게 드세요’라는 뜻이다.

이 책은 교황청에서 즐겨 먹는 요리와 전․현직 교황이 좋아하는 메뉴, 그리고 조리법을 담은 책으로 소개되어 있다. 특히 프란시스코 교황, 베네딕크16세 교황,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갖고 있는 식습관과 좋아하는 음식을 소개하고 있는데 흥미롭게 다가왔다.

간단히 교황들의 식습관을 소개하면 이렇다. 우선 프란시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아르헨티나식 엠파나다와 페퍼 샐러드(Argentine Emphanadas on Pepper Salad), 소엉덩이살 요리(Colita de Cuadril), 둘체 데 레체(Dulce de Leche), 알파호레스(Alfajores), 피자 카바요(pizza a caballo)를 좋아한다. 모두 아르헨티나에서 대중적으로 많이 먹는 인기 음식들이다. 엠파나다는 아르헨티나식 만두이고, 둘체 데 레체는 남미지역의 대중적인 디저트이다. 그리고 알파호레스는 일종의 쿠키이고, 피자 카바요는 아르헨티나식 피자이다.

한편, 베네딕트 16세는 독일 바이에른 출신답게 레겐스부르크 소세지 샐러드(Regensburg Sausage Salad)를 좋아한다. 주지하듯이 레겐스부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자 고대와 중세의 유산이 잘 보존된 곳으로서, 삶아 먹는 소시지인 레겐스부르거(regensburger)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그리고 폴란드가 고향인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식 만두인 피에로기(Pierogi)를 좋아하고, 특히 일명 ‘교황의 크림 케이크’(Papal Cream Cake)이란 디저트를 좋아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1999년 고향 폴란드 바도비체(Wadowice)를 방문했을 때, 그는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돈을 모아 시장의 빵집에서 즐겨 사 먹던 크림 케이크를 추억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케이크는 ‘교황의 크림 케이크’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필자는 위와 같은 세 교황의 음식 이야기를 읽으면서 잠시나마 수많은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되었다. 먼저 ‘우리 주님이신 예수께서는 과연 어떤 음식을 좋아하셨을까’부터 시작하여, ‘성경을 볼 때 우리는 ‘교리’(dogma)라는 딱딱한 눈이 아니라 ‘음식’(문화 혹은 예술)의 눈으로 다시 읽을 수는 없을까‘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상을 하였다.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식습관과 같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크게는 십자가의 삶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물론 우리가 예수와 똑같은 식습관을 가질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분이고, 우리는 21세기 극동아시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와 우리의 식습관이 같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예수와 똑같은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음식을 어떻게 대하였는지와 같은 태도는 우리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은 모방으로부터 출발하여 궁극에 이르고, 더욱이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삶’(immitatio Christi)이야말로 결코 십자가를 지는 어려운 것에서부터가 아닌 아주 작은 예수의 삶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앞에서 소개된 교황들처럼 예수의 식습관을 상상해 보았다. 과연 예수께서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셨고, 또 궁극적으로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했을까? 복음서가 예수를 ‘술꾼이요 먹보’(눅 7:34)로 소개한 것을 보면, 그는 분명 ‘혼밥’과 같은 엄숙한 식사습관 대신 벗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식사를 강조하였을 듯 싶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그가 먼저 제자들에게 찾아가서 손수 물고기를 숯불에 구어 아침식사를 차리신 것을 보면(요 21:9-13), 요리는 당시 습관처럼 아랫사람이나 혹은 여자만 하는 소위 ‘허드렛일’이 아니라 지도자라면 응당 누구든지 해야만 하는 ‘섬김의 일’임을 보여주었다. 마치 불가(佛家)에서 음식이란 생존수단이 아니라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예수에게 있어 음식이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먹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표현하는 하나의 행위예술이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 ‘행위예술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 번쯤 예수의 식습관을 따라 이웃과 더불어 음식을 나누는 술꾼과 먹보도 되어보고, 또 스승과 가장들은 제자나 가족들을 위해 풍성한 아침식사를 근사하게 차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처럼 예술목회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성스러운 한 끼’의 행위예술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손원영 교수
손원영 교수
서울기독대학교
예술목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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