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기독교미술과 믿음의 발자취 ②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성체논쟁
[전문가 칼럼] 기독교미술과 믿음의 발자취 ②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성체논쟁
  • 임재훈 목사
  • 승인 2020.05.3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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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는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이 추구한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미를 완벽하게 구현한 화가이다. 그는 르네상스 만능인(Uomo Universale)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만큼 독창적이고 혁신적이지 못하였지만 두 사람이 도달한 성과를 집약하여 서정적이고 우아하면서도 동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함으로 19세기 전반까지 고전주의 미술의 규범을 이루었다.

라파엘로, 자화상, c.1506, 패널에 유화, 47,5X33cm,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라파엘로, 자화상, c.1506, 패널에 유화, 47,5X33cm,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라파엘로는 이탈리아 중부 우르비노에서 몬테펠트로 가문의 궁정화가이며 인문학자였던 조반니 산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궁정의 분위기를 접하였으며 움브리아 파를 이끌던 제단화가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1446-1523)의 공방에서 도제수업을 받았다. 경건하고 감미로운 화풍의 페루지노는 콰트로첸토 시기 화가들이 몰두한 자연의 충실한 묘사를 통한 감각적인 미보다도 종교적 감성이 스며있는 고상한 미,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였다.

스승의 영향은 ‘종교적 미술과제를 위한 가장 수준 높은 교회적 감각을 지닌 화가‘(헤겔)로 라파엘로를 성장시킨다. 그는 1504년 피렌체에 와서 레오나르도의 구도와 조형을 통한 회화적인 풍요로움, 미켈란젤로의 웅장함과 역동성을 지닌 조각적인 견고함, 브루넬레스키 건축의 리듬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미술이론과 기하학, 도나텔로 조각의 고결함을 수용한다.

2.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 재위 1503-1513)는 아비뇽시기를 극복하고 ‘세계의 머리’(Caput mundi) 로마를 재건하려한 선임자들의 의지를 강력하게 계승하였다. 그는 고전주의 미술과 건축의 장려를 통해 고대의 위용을 갖춤으로 로마제국에 버금가는 영광을 기독교 세계의 수도 로마에 재현하고자 하였다.

그가 르네상스 대가들을 로마로 불러들여 브라만테에게 성베드로 대성당 재건축(1506)을 위임하고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1508)를 제작하게 하였으며 라파엘로에게 바티칸 집무실을 장식하는 벽화(1509)를 주문한 것은 영원한 로마를 재건하려한 일관된 정책의 예술적 표현이었다.

3. 라파엘로의 대표작 아테네학당과 성체논쟁은 화가의 양식과 주문자의 정책이 일치한 경우로 전성기 르네상스 고전주의 정신의 정수이다. 작품이 그려진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은 교황처소에 있는 개인도서실과 접견실로 사용된 공간으로 르네상스기 이상적인 군주가 지녀야할 인문주의적 소양을 과시하기 위해 궁정에 설치된 스투디올로(Studiolo)와 같은 곳이었다.

서명의 방 네 벽면과 천장에는 신학, 철학, 시학, 법학 등 당시 학문의 네 영역을 주제로 하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졌다. 작품에 만족한 교황은 연이어 벽화 연작을 주문하였는데 엘리오도르의 방, 보르고 화재의 방에 그려진 작품들은 라파엘로의 회화양식이 베네치아 풍의 색채회화에서 미켈란젤로의 해부학에 기초한 인체구조의 표현으로 빠른 속도로 변화하였음을 알려준다.

라파엘로, 아테네학당, 1509-1511, 프레스코, 500x770cm, 서명의 방, 바티칸 사도궁
라파엘로, 아테네학당, 1509-1511, 프레스코, 500x770cm, 서명의 방, 바티칸 사도궁

아테네학당(Scuola di Athene, 1509-1511)은 웅장한 르네상스양식의 건축공간을 배경으로 중앙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고대의 철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이 대칭적으로 배치된 화면구성을 지닌다. 궁륭과 연속된 아치, 도리아 양식의 건축적인 배경은 브라만테의 성베드로 대성당 설계에서 영감 받은 것으로 라파엘로를 로마에 초대한 동향선배에 대한 오마주가 담겨있다.

화면중앙의 입구에서 걸어 나오며 대화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원근법의 소실점에 배치되어 관람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레오나르도의 모습으로 그려진 플라톤은 왼손에 자연에 대한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Timaeus)를 들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킴으로 자연/지식의 근원이 이데아/천상에 있음을 나타낸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왼손에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을 들고 오른손을 펴 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킴으로 현실/윤리에 관한 학문이 자신의 영역임을 나타낸다.

라파엘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학당 세부, 1509-1511, 바티칸 사도궁
라파엘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학당 세부, 1509-1511, 바티칸 사도궁

플라톤의 발아래 화면 제일 앞의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한 헤라클레이토스는 팔을 괘고 앉아 사색중이며 그 왼쪽의 피타고라스는 음악의 조화에 관해 쓰고 있고 오른쪽의 허리를 숙이고 컴퍼스를 든 유클리드는 브라만테의 모습으로 기하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 뒤에는 지구의를 든 프톨레마이오스, 천계를 들고 있는 조로아스터, 라파엘로가 소도마와 함께 서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발아래 계단에 기대앉은 이는 견유학파 디오게네스이다.

등장인물 각자가 지닌 모습과 행동, 제스쳐로 영혼의 지향성과 내면의 감정을 나타내는 방식은 레오나르도, 도나텔로의 영향이며 인물들의 역동적인 구성과 표현적인 에너지는 미켈란젤로에게서 터득한 것이다.

서로 다른 시대의 철학자들이 한 공간에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사색, 강의, 토론, 집필 등의 학문 활동을 하는 모습은 절제된 고요속의 묵상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성스러운 대화’(Sacra Conversazione) 도상과 달리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의 활기를 나타낸다. 고대 철학자들과 동일시된 동시대 미술가의 모습은 중세의 장인에서 르네상스기 인문학자로 격상된 미술가의 지위를 나타내며 동시에 고대와 현대의 대화, 고대의 부활을 의미한다.

4. 같은 방에 그려진 성체논쟁(Disputa del Sacramento, 1509-1511)은 이상화된 풍경을 배경으로 천상과 지상의 영역을 한 화면에 묘사하고 있다. 바닥의 원근법 선의 소실점에 위치한 지상의 제단에 놓인 성체는 천상의 성부와 성자, 비둘기 형상의 성령과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체 주변에는 과거와 현재의 교황과 주교, 성인, 신학자들이 성체의 의미에 대해 활기차게 지적으로 토론하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라파엘로, 성체논쟁, 1509-1511, 프레스코, 500x770cm, 서명의 방, 바티칸 사도궁
라파엘로, 성체논쟁, 1509-1511, 프레스코, 500x770cm, 서명의 방, 바티칸 사도궁

하지만 논쟁이라는 제목과 달리 전체적인 분위기는 라파엘로의 원근법적 구도와 인체, 자연을 재현하는 화풍에 의해 고전주의 미술이 지향한 균형, 조화, 비례 그리고 질서와 안정된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다. 직사각형 모양의 서명의 방 네 벽면 중 마주보는 넓은 두 벽면에 그려진 아테네학당과 성체논쟁은 분리된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한 쌍을 이루는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도상학적 의미체계를 이룬다.

라파엘로, 아테네학당(철학)과 파르나소스(시학), 1509-1511, 서명의 방, 바티칸
라파엘로, 아테네학당(철학)과 파르나소스(시학), 1509-1511, 서명의 방, 바티칸
라파엘로, 성체논쟁(신학)과 법학과 세 덕성, 1509-1511, 서명의 방, 바티칸
라파엘로, 성체논쟁(신학)과 법학과 세 덕성, 1509-1511, 서명의 방, 바티칸
라파엘로, 서명의 방 천장화, 신학, 법학, 철학, 시학(위에서부터 시계방향), 1509-1511
라파엘로, 서명의 방 천장화, 신학, 법학, 철학, 시학(위에서부터 시계방향), 1509-1511

아테네학당에서 플라톤이 오른 손으로 가리키는 진리의 근원으로서의 천상(이데아)은 아직 비어 있다. 이 비어있는 공간이 성체논쟁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 천사들로 채워진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에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구약의 예언자들과 고대의 무녀들이 예언하고, 티치아노의 피에타(Pietà)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구약의 모세와 고대의 무녀(Sibyl)가 예언하듯이 고전 고대 철학이 추구한 진리가 기독교의 예견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로써 서구문명의 원류를 이루는 양대 정신사조인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종합을 지향한 르네상스 정신의 시각적 구현이 나타나고 있다. 12세기 이후 가톨릭교회의 주류신학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15세기 후반 피렌체를 중심으로 재발견되었던 신플라톤주의 등 철학과 신학의 종합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서명의 방 벽화는 이 세상 것에 대한 지식인 철학이 신성한 것에 대한 지식인 신학과 대립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인문주의와 기독교를 결합하여 ‘다시 태어난 로마’를 재건할 수 있다는 이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16세기는 교황청 주도에 의해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이 구현하려한 고전주의와 이상주의적 유토피아와 달리 북유럽과 남유럽, 개신교와 가톨릭 간에 성체를 둘러싼 진정한 토론과 교회의 현실적 개혁이 필요한 시대였다.

그 시대에 진정으로 요구되었던 것은 현실세계에 대한 미화가 아니라 개혁이었던 것이다. ‘라파엘로 이후’ 교회사에서는 종교개혁(Reformation, 1517)과 로마의 약탈(Sacco di Roma, 1527)이라는 격변의 시기가 그리고 미술사에서는 매너리즘이 도래함으로 이상과 고전을 추구했던 르네상스 미학이 해체된다.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 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과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 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과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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