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연의 시 ‘해변의 아인슈타인’
하재연의 시 ‘해변의 아인슈타인’
  • 장준식 목사
  • 승인 2020.04.18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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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지한 언어를 가지고

낯설고 어두운 술로

나의 이름을 꺼냈습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ㅡ 하재연의 시 ‘해변의 아인슈타인’ 부분, 시집 <우주적 안녕>에 수록

생각해 보면, 나는 ‘고문서’를 읽는 고전학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선 나는 성경을 읽는다. 신약은 2천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구약은 3천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구약성경의 기록이 바벨론 포로기에 행해진 것이기에 2천 5백년 정도의 역사를 지녔다고 말해야 하지만, 그 이전에 구전으로 구약의 이야기가 전해져 왔으므로, 3천년이 되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초대교부들의 문서를 읽는다. 디다케나 바나바서신 등은 1세기 문서이고, 순교자 저스틴의 문서는 2세기 문서다. 그러므로 못해도 19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문서들이다. 그 이후 교부들의 문서도 100년 단위로 나오기 때문에, 못해도 1000년의 역사를 지닌 문서들을, 나는 읽는다.

고문서들을 읽다 보면, 그들의 삶의 자리와 그 삶의 자리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그들의 고군분투가 느껴져 마음이 짠하다. 현재의 자리에서 그들의 삶의 자리를 들여다 보면 그들의 언어는 ‘무지한 언어’이다. 아직 생각이 다 발전하지 않았고, 특별히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현재의 지금보다 더 명확하지 않다. 가령, 초대 교부문서들에서 발견되는 기독론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론에 비하면 ‘무지한 언어’의 진술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무지한 언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삶의 자리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이성의 힘을 발휘하여 ‘진리’를 발견하려고 애쓴다. 그들의 ‘낯설고 어두운 입술’에는 갈망과 용기와 희망이 묻어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입술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묻어난다. “나는 인간입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잃고 산다(잊고, 가 아니다). 아니, 어쩌다 우리가 누구인지 발견한다. 어쩌다 발견된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 자신을 깜짝 놀라게 한다. “나는 인간입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인간은 왜 자신이 ‘인간’인 것을 그토록 자주 잃어버리는가. 고의인가, 실수인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리는 것은 축복인가, 재앙인가.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리는 인간의 습성은 이어지는 시구(詩句)와 같다. “파도는 끝없이 돌아와 안녕, 인사를 하고, 안녕, 작별을 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어느 때는 안녕, 하면서 만나지만, 금새, 안녕, 하면서 작별을 한다.

아인슈타인은 해변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우주로 돌아가는 기차에 탑승”하여 지구를 떠나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 기차에 그저 손을 흔들며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보듬어 안았을까.

“신학은 인간학이다.”라고 누가 말했다. 정말 그렇다. 성경이든 초대교부의 문서든, 그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다. 하나님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 누구가 말했듯이, 우리가 고통 받는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충분히 인간(fully human)’이지 않아서 그렇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도, 성경을 쓴 선지자들도, 그리고 초대교부들도 결국 하나님에 대한 상상과 발견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은 ‘충분한 인간되기’이다. 해변의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다. 그는 해변에 서서 우주를 바라보며 ‘인간’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인간입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비록 ‘무지한 언어를 가지고 낯설고 어두운 입술로’ 꺼내는 부끄러운 고백이라 할지라도, 이것이어야 한다. “나는 인간입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이 고백을 간절히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인간은 희망이다.

장준식 목사(미국 실리콘밸리 세화교회)<br>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장준식 목사(미국 실리콘밸리 세화교회)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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