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학자 로저 헤이트(Roger Haight)라는 이름은 한국 신학계에 조금 낯설다. 그런데 그가 쓴 ‘신학의 역동성’(Dynamics of Theology)이란 제목은 조금 익숙하다. 왜냐하면 ‘신학의 역동성’이란 제목은 과거에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쓴 ‘믿음의 역동성'(Dynamics of Faith)이란 제목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폴 틸리히와 로저 헤이트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아마도 로저 헤이트는 폴 틸리히가 교수로 있었던 시카고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폴 틸리히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은 신학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로저 헤이트는 이 책의 제목을 ‘신학의 역동성’이라 이름 붙이고, 폴 틸리히의 저작을 책에서 많이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로저 헤이트는 예수회 회원으로서, 그의 기본적 신학의 바탕은 개신교가 아닌 로만 가톨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신학의 역동성’이란 책에서, 로만 가톨릭의 신학을 바탕으로 개신교 신학을 폭넓게 수용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신학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그래서 로저 헤이트의 ‘신학의 역동성’은 특정 교단의 신학적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어떤 그리스도인이라도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신학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로저 헤이트는 신학의 구성요소로 신앙, 계시, 성서, 종교 상징, 방법 이렇게 다섯 가지를 순차적으로 제시한다. 이 다섯 가지의 구성요소 중 가장 독특하다고 여겨진 요소는 바로 계시였다. 일반적으로 신학계에서 계시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렵게 여겨진다. 그리고 계시라는 말 자체에 일종의 신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계시가 가진 딱딱하고 어려운 이미지를 걷어내고 따뜻하고 인격적인 계시에 대해서 언급한다.
“기독교 계시의 내용, 말하자면 그 대상은 바로 인격적인 사랑의 하나님이다. 그리고 계시의 과정 자체는 이런 하나님과 만남(encounter)의 경험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132쪽)
로저 헤이트는 이 책에서 계시가 단순히 종이에 적혀 있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인격적인 역사의 매개체로서 나사렛 예수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그에게 계시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의미하며, 계시의 인격성을 바탕으로 계시를 재해석하는 것이 바로 신학의 과제라고 강조한다.
“신학은 인간의 구체적인 문제들, 즉 인간이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직면하는 모든 쟁점과 관련하여 계시를 해석함으로써 계시의 역동성을 따라야 한다.” (151쪽)
로저 헤이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신학은 차가운 비인격적 신학이 아니라, 따뜻하면서도 인격적인 신학이며 동시에 지금 우리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역동적으로 반응하는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살아 숨 쉬는 신학을 지향하는 ‘신학의 역동성’은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통찰을 얻을만한 여러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깊고도 넓은 조직신학의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은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