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에 조명하는 숨겨진 신앙 거장 F. S. Miller선교사(한국명 민노아)
부활절에 조명하는 숨겨진 신앙 거장 F. S. Miller선교사(한국명 민노아)
  • 김성수 지역기자
  • 승인 2018.03.31 2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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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권 선교의 아버지, 한국 찬송가의 대부, 전도지의 왕
-초라한 사진 한 장, 이면에 감춰진 신앙 거장의 면모
-경기남부, 중부권 곳곳에 교회를 설립한 전략적 선교사
-예수교(민노아)학당 교장, 실업교육, 의료선교 강조한 실용주의자
-유우머 겸비한 문학가, 금주가 지어 부르며 금주•금연 절제운동

충북 사람들은 프레드릭 S. Miller 선교사(1866-1937, 한국명: 閔老雅)를 충북 선교의 아버지라 부른다. 1892년 11월 15일 부인 안나 리네이크(Anna Reinecke)와 함께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한국에서 45년간 봉직하는 동안 서울에서 9년 동안 활동하였고, 1902부터 청주에서 37년간 활동하면서 경기남부와 중부권 복음화를 위해 그의 젊음과 온 생애를 바쳐 헌신하였다.

 

중부권 선교의 개척자

Miller 선교사가 내한하여 처음으로 맡은 일은 마펫이 맡고 있던 “예수교학당”(현 경신학교)을 물려받은 일이다. 그는 교명을 “민로아 학당”으로 개칭하여 자신의 교육 방침대로 보통반과 특별반(실업반)의 새로운 학제를 만들어 실용교육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이때 민족지도자 안창호(安昌浩) 선생 등 제자들을 길러냈다. 조사 김흥경과 함께 1895년 연동교회 설립의 기초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구체적인 선교행위가 없는 교육선교를 지양하라는 선교본부의 지시에 따라 민노아학당은 1897년 10월 문을 닫게 된다.

그 후 아직 장로교의 발길이 미치지 못한 경기남부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선교하기 시작한다. 당시 청주는 호남과 영남을 잇는 교통 중심지여서 한강 이남에서 몇 째 안 가는 5일장이 열리고, 특별히 우시장이 유명하였다. 또한 기차역 조치원이 가까이 접근이 편하고, 발전 가능성이 많은 지역으로 판단하였다. 1900년 조사 김흥경과 함께 청주시장에 답사와 전도를 위해 내려왔다가 놀라운 소식을 접한다. 오천보, 문성심, 오삼근 등이 죽산 둔병리교회 사경회에서 참석하여 예수를 믿고, 이들이 돌아와 자생적으로 교회를 세웠다는 말에 크게 고무된다. 그는 조사 이찬규를 보내 오천보의 집을 매입하여 세운 교회가 충북 최초의 교회인 신대교회이다. 이뿐 아니라 보은, 회인, 괴산 그리고 경상도 상주까지 교회 설립하는 일을 지도하였다.

Miller 선교사는 충북 사람들의 심성을 귀하게 보았다. 조용하고, 점잖을 뿐 아니라, 학식이 있고, 배움에 열의가 있는 것을 느끼고 청주 선교본부의 설립을 강청하여 1904년 가족과 함께 청주로 이거한다. 아직 선교비 지원이 되지 않았는데도 자비를 들여 무심천이 내려다보이고, 청주 시장거리와 우시장을 내려다보는 남쪽 탑동 언덕 산지 5만여 평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 청주에서는 처음 보는 붉은 벽돌의 2층 양관을 건립하였다. 이것은 청주의 명물이 되었다.

그는 1936년 12월 정년 은퇴하고 필리핀과 중국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와 1937년 청주에서 별세하였다. 한국에서 선교한지 45년째 되던 해 그의 유언에 따라 청주에 묻혔다. 그의 아내와 두 아이의 무덤이 그의 여름 별장이었던 양화진에 묻혀 있음에도 자신은 청주를 떠나지 않았다. 그를 위한 기념일도 없고, 작은 흉상 하나 없으며, 기념관도 없고, 그저 초라하게 돌아다니는 사진 한 장, 꾸미지 않은 작은 기념비 하나가 고작인 사람이지만 그는 신앙의 거장이었다.

전략적 선교사: 밀러선교사가 설립한 교회들

충남 홍성군 홍주성 서문 밖에 자리 잡은 홍성제일교회도 1900년, F. S. 밀러 선교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이며, 지역 내 많은 교회를 육성한 어머니 교회이기도 하다.

죽산교회는 충북 첫 교회인 청주 신대리교회의 모교회나 다름없다. 죽산은 구한말 한양서 경상도로 통하는 교통 요지였다. 죽산교회도 F. S. Miller 선교사에 의해 설립됐다. 민노아 선교사는 둔병리에서 사경회를 인도했다. 이 사경회에 청주 사람 오천보, 문성심, 오삼근 등이 은혜를 받고 신대리교회 공동체를 시작한 것이다. 1901년 세워진 청주 신대교회, 1903년 세워진 괴산 제일교회에 이어, 1904년 11월5일 시작된 청주읍교회는 충북지역 세 번째 개신교이지만 ‘충북의 어머니 교회’로 통하고 있다. 청주제일교회 출신 선교사와 목회자, 신자 등이 주변 지역 교회들을 보살피거나 전도해 묵방리, 화죽, 문의, 쌍수, 청안교회, 청주 제2교회(지금의 중앙교회) , 대전제일교회 등을 세우는 등 초기 충북과 중부권 교회의 매개체였다. 안성시 모교회인 안성제일교회도 민노아 선교사가 1902년 12월 설립했다. 이 교회는 안성지역 최초의 유치원을 설립해 많은 기독교 인재들을 배출했다. 조치원, 추풍령, 홍성, 안성, 죽산, 청주 등지의 교회들은 그의 숨결로 세워진 교회들이다. 1907년 독노회에서 노회를 분립하기 위해 시작된 1911년 경기·충청 노회의 초대 노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교육자로서의 민노아

1904년 개화사상의 영향으로 문을 연 광남학교를 이은 청남초는 1908년 민노아선교사가 청남학교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청남학교의 경우 한글과 우리 역사, 성경 등을 가르쳤고 밤에는 부인들을 위한 ‘청신여학교’도 열었다. 그는 청동학교, 청서학교, 청북학교 등을 세워 이 지역에 신교육을 보급했다. 1936년에는 신사참배 거부로 휴교당하기도 했다. 그는 1936년 정년퇴직했지만 1937년 10월6일 71세의 나이로 생을 마칠 때까지 청주에 남아 교육과 사회운동, 문서선교에 힘썼다.

찬송가 작사자, 편찬자

F. S. 밀러는 재능이 탁월하여 1894년 언더우드가 가사와 악보가 공존하는 한국 최초의 찬송가를 발간할 때도 번역과 편집에 참여하였다. 1908년 한국 최초로 장로회와 감리회가 연합으로 찬송가집을 발행할 때도 편집에 참여하여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는 특히 음악적 재능이 있어 찬송가를 많이 작사하였다. 한국어의 음절, 운율, 강약 등의 특성까지 꿰뚫고 있어 한국인에 맞는 찬송가 편집에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작사 또는 편집한 찬송가는 주로 성경을 토대로 이루어졌으며, 1905년 26편이 수록되고, 현재 한국찬송가공회가 발행한 찬송가책에는 5곡이 실려 있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곡들이다.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427장 “맘 가난한 사람” 451장, “예수 영광 버리사” 588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 그가 작사한 곡들이다.

문서선교의 아버지, 전도지의 왕

민노아 선교사는 위트와 유머도 있고,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재한(在韓) 선교사 가운데 가장 성실하고 꾸준하게 문학 부문에서 활동해 온 선교사로 전해진다. 그의 저서는 40여종에 이르며, 한국 선교 역사상 어떤 선교사보다 많은 문서를 남겼다. 그는 한국 이야기를 많이 쓰고 간행했는데, 그 중 영문판인 “우리의 친구들(Our Korean Friends)", "한국의 젊은이들(Korean Young People)"이 미국 뉴욕 레벨 출판사(Fleming H. Revell Press)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신학지남에 여러 편의 글을 기고하였다. 특히 민노아 선교사는 순수 한글로 된 금주, 금연, 사회 계몽 및 문맹 퇴치를 강조한 전도지를 많이 제작 배포하였다. 그래서 그는 ”전도지의 왕“, ”소책자의 사도“, ”문서 전도의 창시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말이 있다. 한국 교회를 위해 살다간 수많은 선교사들이 있었고, 그들 모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그 발자취마다 온 세상 열매로 자라가고 있다.  F. S. Miller 선교사도 그 중의 한 분이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운 발자취는 숨겨두기에 너무 아쉽다. 지난 2016년은 그의 탄생 150주년이었다. 그러나 그를 위한 기념예배도, 그를 기억하는 세미나도 없었다. 이제라도 그의 숨은 면모를 찾아 기념하고 자취를 남길 때, 더 빛나는 업적으로 기억될 것이고, 그의 선교의 열정과 헌신이 더 아름답게 열매 맺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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