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 어린 시절, 겨울 풍경의 추억
[82호] 어린 시절, 겨울 풍경의 추억
  • 이창연 주필 장로
  • 승인 2020.01.2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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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날씨는 옛날 어린 시절에 겪었던 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영하 십 몇 도에서 영하 이십 몇 도까지 수은주가 내려가니 살을 에는 듯 추웠다. 온통 중무장을 하고 다녀도 춥기는 매한가지였다. 더욱 옛날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집 밖으로 나가면 몰아치는 찬바람에 전깃줄이 자지러지듯 이잉 이잉 소리 내 울어댔다. 문고리를 쥐면 손가락이 쩍쩍 달라붙었다. 문풍지 틈으로 황소바람이 밀려들었다. 웃풍이 세어서 항상 코를 훌쩍 거렸다. 머리맡에 둔 잉크병과 자리끼(숭늉)도 꽁꽁 얼어붙었다. 유리창에 낀 결정체 모양도 또렷한 성에가 가득 끼었다. 1950~60년대 유, 소년기를 난 이들에겐 참 모질게도 춥던 겨울의 기억이다.

그 시절 한 겨울엔 개구쟁이들 놀 거리가 풍성했다. 미나리꽝 얼음판에서 팽이치고 썰매를 지쳤다. 자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에 제기차고 연을 날렸다. 산토끼를 몰아 잡는답시고 뒷산을 헤맸다. 가뜩이나 짧은 겨울날이 허망하게 어두워졌다. 논바닥에 삭정이 모아 불 피우고 언 손발을 녹였다. 나일론 점퍼와 양말에 불구멍내고 집에 돌아와 혼이 나기도 했다. 새총 만들어 참새 잡다 시원찮으면 한밤에 손전등 들고 동네를 돌았다. 초가 추녀에 사다리 걸치고 손 디밀어 곤히 잠든 참새를 낚아챘다. 그 시절 농촌 풍경은 천둥벌거숭이처럼 겨울을 나면서도 읍내 목욕탕엔 명절에나 갔다. 팔꿈치, 무릎, 발뒤꿈치엔 늘 떼 딱지가 앉았다. 손등이 터서 죽죽 금이 갔다. 가끔 부엌의 한켠이 목욕탕이 되었다. 커다란 고무함지박이 욕조가 됐다. 엄마가 목덜미를 박박 밀어주다가 등짝을 때리며 “까마귀가 하나씨(할아버지의 비속어)라 부르겠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쯤 손등이 위로 오게 치켜들고서 용의(容儀)검사를 받았다. 용의검사에 불합격하면 그 추운 날 우물가에서 찬 물로 씻고 와야 했다. 그때 아이들은 동상을 달고 살았다. 벌겋게 부어오른 손등 발등이 밤이 되면 무척 가려웠다. 동상을 가라앉힌다며 생콩을 갈아 덕지덕지 발랐다. 뜨거운 세숫대야에 물에 담뱃잎이나 담배가루를 풀고 손발을 담갔다. 콩 자루에 발을 묻고 자기도 했다.

요즈음 다시 신문에 오를 정도로 동상환자가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스키, 스키보드를 즐기는 10대와 20대가 많이 늘어난 원인이라 한다. 평창 올림픽을 기해 열기가 더해진 원인도 있고 추워져도 야외 레저 활동이 수그러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세월은 기억에 달콤한 당의(糖衣)를 입힌다. 또, 깻 자루와 콩 자루, 옥수숫대 두른 고구마 통가리, 띄어 놓은 메주… 시골의 안방은 곡식들과 함께 겨울을 났다. 요강도 방안에 들어와 호강을 했다. 호박단추를 단 할아버지 옥빛 마고자엔 풍년초(종이로 담배 잎을 말아 피우던 담배) 냄새가 누룽지처럼 눌어붙고, 아주까리(피마자)기름 발라 쪽을 찌던 할머니 손에선 고소한 냄새가 났다. 웃풍이 세 늘 냉기가 돌던 방, 아이들이 들락거리는 통에 할머니는 종일 문단속을 해야 했다. 꽃잎이나 댓잎을 붙여 멋을 낸 문고리 주변엔 손 떼가 반질반질 했다. 저녁 무렵이면 생솔가지를 고래(아궁이 깊숙한 곳)에 밀어 넣어 군불을 때 아랫목은 절절 끓었다.

요즈음 아이들은 윗목과 아랫목이라는 말 자체를 모른다. 이 생솔가지가 타면서 나는 매캐한 연기가 방안 가득 했지만 사나흘은 깨지 않고 잘 것만 같이 이불속은 편안했다. 사각사각 풀 먹인 이불 홑청 속에 대 여섯 명이 한 깍지속의 강낭콩처럼 고갤 내밀고 야스락거렸다. 기성세대는 격어 본 이야기이기 때문에 실감나는 이야기지만 풍요 속에서 자라온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다.

이렇듯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지내온 세대들과 자녀들의 문화는 차이가 심하다. 교회에도 이런 통하지 않는 문화가 얼마든지 있다. 한해가 가고 다른 한해가 시작되는 것은 우주의 영속적인 흐름에 비춰보면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 것이지만 사람들 개개인에겐 여러 다른 상념과 감회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것은 삶의 부질없음에 대한 인식일수도 있고 새로운 날에 대한 기대일수도 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오십년을 압축 성장 했기에 그 옛날을 잊고 산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를 만들겠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가 한국이다. 설날 아침 못 살던 옛날을 추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갖자.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전 NCCK 감사

CBS방송국 전 재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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