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복음화 밑거름되어 은혜 정원에 잠든 이들
대구지역에 최초로 복음이 전해진 것은 1893년 4월 22일이다.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베어드(Wiliam Martyn Baird 배위량 1862~1931) 선교사가 경상도 북부지방 전도 여행차 서경조 전도사, 박재용 등과 함께 조랑말을 타고 부산을 출발해 동래·밀양·청도를 거쳐 대구에 들어온 날이다. 대구에 최초로 세워진 대구제일교회는 이날을 교회 창립일로 정해놓고 있다.
대구지역 개신교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곳이 은혜 정원이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의료선교 박물관에 있는 은혜 정원에는 14개의 묘석(墓石)이 있다.
우리가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가족들이 여기에 고이 잠들어 있다. 지금도 이 민족의 복음화와 번영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리라.
은혜 정원(Garden of Mercy)은 대구·경북 지방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순교한 선교사들과 그들의 자녀가 묻혀 있는 곳이다. 20대 젊은 나이에 순교한 선교사가 있는가 하면, 태어난 지 10일 만에 죽은 선교사의 갓난아기도 있다. 장로교 선교사뿐 아니라 침례교, 구세군 등의 선교사도 있다. 서울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와 같은 순교성지이다.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을 뿐이다(She is not dead but sleepth)”
넬리 딕 아담스는 대구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인 아담스 (안의와.安儀窩)의 아내이다. 1897년에 3개월 된 아들 에드워드(안두화,安斗華)를 안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남문안예배당(대구제일교회)의 유년주일학교를 만들었고 신명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며 남편을 도와 교육과 선교에 힘을 썼다. 대구지역 첫 번째 여자 선교사였다. 그녀는 날마다 대구지역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다양한 선교활동을 하는 열성을 보였다.
1909년 넷째 아이의 유산 후유증으로 43세의 나이로 숨져 은혜 정원에 묻힌 최초의 외국인이 되었다. 넬리 딕의 쌍둥이 자매 진(Jean)도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서 그곳에서 순교하였다. 장남 에드워드(안두화)는 계명기독대학(계명대학교)을 설립하였다.
넬리 딕 선교사의 묘에는 ‘She is not dead but sleepeth’ 문구가 적혀 있다.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고 아직도 이 땅과 한국인들을 위해 자신의 영혼은 살아서 기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