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곱 살의 절망
[에세이] 일곱 살의 절망
  • 강명순 대표
  • 승인 2020.01.10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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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에서 자라난 엉겅퀴 같은 가지들이
다 뽑히고 한 알의 사랑이 심겨져
꽃 피우기까지는 또 얼마나 걸릴까."
강명순 목사
빈나 2020 운동 디딤돌대표,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이사장

“나는요, 높은 집에 살고 싶어요! 4층 꼭대기요.”

“왜요?”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자살하려고요.”

사춘기 청소년도 아니고, 삶에 찌든 아줌마도 아니고, 신용불량자 아저씨도 아닌, 세상에 나와 겨우 칠 년밖에 살지 않은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아이는 엄마가 이혼 후 집을 나가 큰아버지, 아버지, 사촌 형, 형과 함께 남자만 다섯 명이서 4층 옥탑방에 살고 있었다.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다니, 나는 무서워서 못할 것 같은데. 4층 집에선 누구랑 살 거예요?”

“아빠랑 형이랑요. 근데 그 집도 제가 망치로 뿌겨버릴(부숴버릴)거예요.”

“그러면 망치가 필요하겠구나. 이사 가면 내가 망치를 선물로 사다줄까?”

“그러면 망치로 또 뿌겨버릴 거예요.”

“어휴, 힘도 세구나. 망치로 집을 부수면 안되는데… 그럼 망치 선물 말고 개나리꽃이나 많이 사다줘야지. 4층 꼭대기에 개나리를 심으면 진짜 이쁘거든.”

“개나리꽃이 있으면 다 찢어버릴거예요.”

“왜 찢으려고 해?”

“너무 많아서 찢어버릴 거예요.”

“많으면 가지를 잘라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돼. 그 사람들이 다시 심어서 개나리가 또 피고 좋을텐데….”

“나뭇가지는 썩어요.”

“왜?”

“내가 물을 안줘서요! 나뭇가지가 다 썩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가 없어요.”

“그럼 그 높은 집으로 이사 갈 때 내가 뭘 사다주면 좋겠니?”

아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난 아무것도 받고 싶지 않아요!”

이것이 내가 아이와 만난 지 일 년이 다 되어갈 즈음에 가장 길게 나눈 대화 내용이다.

잘생긴 얼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답답한데 일곱 살 어린아이의 입에서 ‘자살, 부수다, 찢다, 썩다, 아무것도 받기 싫다’ 이런 단어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다니….

사실 이 이아는 쉼터에 온 후 3개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3개월 동안 분노치료 훈련을 받으면서 조금씩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빠가 폭력적이지 않은데 아이에게 그런 말들이 나온다는 것은 아마도 아이의 형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추측되었다. 간혹 아이가 속상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그때마다 형이 자신을 때리거나 못살게 굴었다고 하는 걸 봐서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형은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인데, 일터에서 늦게 돌아오시는 아빠 대신 철없는 동생에게 밥을 해먹이고, 옷을 입히고, 같이 놀아주고 챙겨줘야 하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갑작스레 자신에게 주어진 동생에 대한 모든 책임, 집을 떠난 엄마데 대한 미움과 큰 아빠네 옥탑방에 얹혀사는 아빠의 무능력함에 대한 조절할 수 없는 분노가 동생에게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형과 동생 모두 피해자인 셈이다.

이 아이들의 마음에는 마땅히 누려야 할 엄마아빠의 사랑과 보살핌 대신 스트레스와 분노가 꽉 차 있다. 이 아이들의 찢긴 가슴이 회복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그 마음에서 자라난 엉겅퀴 같은 가지들이 다 뽑히고 한 알의 사랑이 심겨져 꽃 피우기까지는 또 얼마나 걸릴까.

-‘부스러기 사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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