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호] Happy New Year가 아니라 Happy New Ear이다
[80호] Happy New Year가 아니라 Happy New Ear이다
  • 정성경 기자
  • 승인 2020.01.09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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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과 시대의 언어를 경청하는 귀,
그리고 즐겁고 복된 뉴스를 많이 들어서
담는 귀를 말한 것이다."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다. 막 떠나보낸 기해년(己亥年)을 돌아보니 한 해 동안 잘도 많은 글을 써왔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게 된다. 내용이나 수준은 둘째 치고 그렇게 쓸 수 있는 건강과 기회가 주어진 것이 우선 감사하다. 글을 쓰면서, 먹고 마시는 것도 크게 부족하지 않게 알아서 잘 먹고 잘 마시고 살았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주 오래전, 문학에 뜻을 두었던 젊은 시절에는 ‘글은 대체 왜 쓰는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을 주절거리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 쓰는 것은 문학적인 글도 아니고 아주 아닌 것도 아닌 얼치기다. 글 쓰는 거 말고 다른 것도 잘할 수 있었는데 언론사에서 밥을 먹은 죄(?)와 ‘뿌리깊은나무’ 한창기 사장님의 권면 때문에 글 쪽으로 와버렸다. 그래서 허위허위 시난고난, 끈질기게 쓰고 있다. 쓴 것을 되돌아보고 다시 훑어보니 그 많은 글 중에서 오롯이 나의 언어인 것이 정말 얼마나 될까하고 놀라게 된다. 어디선가 보고 인용한 것도 있고, 썼던 글을 다시 우려먹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지난해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불거졌지만, 크고 작은 표절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문제는 혼성모방이니 패러디니 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지식재산이나 저작권에 대한 인식과 보호/준수 개념이 부족하다. 이론으로 잘 아는 사람들도 말과 실제가 달라 실망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글을 쓰면서 이와 같은 문제들을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해 동안 쓴 글을 들척이며 인용과 표절의 차이를 재보고 스스로 점검했다.

세밑을 맞는 동안 여러 사람이 책을 보내왔다. 주로 에세이집인 책들을 펼쳐보며 많은 말과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금도 기억에 남은 책이 있다. 2015년 마지막으로 12월 30일에 선물로 받은 정진홍 울산대 석좌교수의 ‘짧은 느낌, 긴 사색’이라는 저서는 그야말로 긴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특히 글쓰기 자체를 이야기한 프롤로그가 인상적이었다. 정확하게 요약할 자신은 없지만, 짧은 글이 환영받는 시대에 긴 글을 쓰는 괴로움과 그 의미에 대해서 그는 아주 긴 글을 썼다. ‘왜 이렇게 길게 썼을까, 좀 간략하게 이야기하시지’ 하면서 읽었지만, 그분의 집필 의도는 바로 그것, ‘만연체(蔓衍體) 긴 글을 쓰고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주 낡은 투로 말한다면, 그 글은 아무래도 모르는 것이 많아 끝없이 묻고 깊이 살펴 알고자 하는 사람[學者]의 몫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결론은 아래와 같다.

‘긴 글을 읽으면서도 느낌이 간헐적으로 튀어 행간을 메우고, 짧은 글을 읽으면서도 그것이 낳는 끝없는 사색의 가닥들을 놓치지 않는 경험이 내 삶을 채우고 이끌어갈 수 있어야 비로소 긴 글과 짧은 글이 빚는 갈등에서 우리는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바로 책의 제목 ‘짧은 느낌, 긴 사색’의 고갱이인 것 같다. 긴 글과 짧은 글의 갈등이 긴 글과 짧은 글의 조화로 바뀔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글을 많이 쓰면서도 긴 글과 짧은 글의 문제를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정한 분량으로 제한된 글을 마감시간 이내에 쓰는 데 익숙해져 주로 정해진 길이의 글을 써왔다. 읽기 쉽고 간명하게, 한 글자라도 더 절약하면서 쓰는 것만을 미덕으로 생각해온 것이다. 가능한 일인지 아닌지 몰라도 새해에는 나도 제법 긴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러려면 내 숨이 길어져야 되겠지 생각하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다른 재주도 없으니 다만 성실하고 근면하게 글을 쓰면서 되도록 깊고 넓게 생각하도록 하겠다. 글을 통하여, 글과 함께, 글 안에서, 글의 힘에 기대어 살고자 한다. 이 대목은 기독교 예배의 ‘마침 영광송’을 베껴 먹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올해에는 알프레드 디 수자가 노래한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해피 뉴 이어 인사를 드린다. 이 해피 뉴 이어는 Happy New Year가 아니라 Happy New Ear이다. 내 멋대로 해석하면, 남의 말과 시대의 언어를 경청하는 귀, 그리고 즐겁고 복된 뉴스를 많이 들어서 담는 귀를 말한 것이다.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전 NCCK 감사
CBS방송국 전 재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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