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과 평화, 미학과 윤리]⓷
[영광과 평화, 미학과 윤리]⓷
  • 심광섭 목사
  • 승인 2020.01.1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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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榮光, Δόξα)은 하나님에게 속한 고유한 권능이고 멋이며 숭고하고 장엄한 아름다움(美)에 대한 성경적 이름이다(특히 시편 96편, 시 29:9; 사 6:3). 영광이란 하나님의 광채, 하나님의 찬란한 빛, 하나님의 본질을 뜻한다. 영광은 하나님의 내재적 본질을 말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밖으로 드러나는 당신의 아름다운 광채와 찬란한 광휘를 의미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참 선한 아름다움(美) 자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났으며(고후 4:6),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남이며(요 17:1), 그리스도는 영광의 통치자(regnum gloriae)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여 완전히 구원하고 하나님은 만유의 주님이 되신다(고전 15:28).

독일어의 영광(Herrlichkeit)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이 Herr, 주님 혹은 주인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탁월한, 뛰어난, 거룩한, 찬란한 등의 뜻을 지닌 hehr(헤:르)에서 유래한다. 이 단어는 ‘오래된, 백발의 존경스러운’ 등의 뜻을 지닌 hoar와 관련된다. 따라서 영광은 이 세상의 경험을 뛰어넘는 무엇인가 거룩한 아름다운 것을 의미한다[그륀, 『예수, 생명의 문』, 151]. 영광은 무궁한 아름다움이요 신비함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의 영광을 약속한다.

“내가 나의 모든 <영광>(כבוד,kabod)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나의 거룩한 이름을 선포할 것이다. 나는 주다.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출 33:19).

나는 <영광>이 기독교 미학과 예술신학의 근본 이미지라 생각한다. 미학은 단지 ‘미’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아름다운 힘’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기독교 미학은 마음바탕(心地)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교리의 긍정이나 예전의 수행이나 도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환한 얼굴”(시 4:6; 31:16)을 보는 기쁨과 즐거움에 있음을 밝히는 학문이다. 기독교 미학은 ‘나 자신만을 위한 나’를 움직여 ‘하나님을 위한 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나’로 변화되는 창조적 에너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기독교 미학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이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구원은 아기 예수가 자라서 심령이 아름다워지듯이 미학에서 온유하고 겸손한 사랑의 형상으로 완성 된다.

<평화>(εἰρήνη)는 온 땅에서 실행되어야 할 하나님의 덕(德), 곧 윤리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평화의 힘은 매우 연약하다. 보티첼리의 그림에서처럼 평화의 왕 아기 예수는 포대기도 없이 벌거벗은 알몸 그대로 깔개 한 장 위에 놓여 있다. 그의 알몸에 어느 날 수의(壽衣)가 입혀질 것이다. 아기로부터 니은(ㄴ)자 동선을 따라 오른쪽에 죽음의 어두운 세력이 우글대는 무덤 같은 구덩이가 파져 있다. 세상에서 평화와 영광에 이르는 길은 멀고 먼 아득하고 험한 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통해 선포된 이 영광과 평화의 복음을 바보처럼 믿고 따른다.

예수 탄생은 영광과 평화의 기쁜 소식이다. 예수 탄생에서 기독교 미학과 기독교 윤리가 서로 조응한다. 예수 탄생에서 영광과 평화가 포옹하고, 미(Kalos)와 선(Agathos)이 입을 맞추어 그리스인들이 추구했던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아름답고 선한 것)가 실현되고, 하늘과 땅이 접(接)하며, 기독교 미학과 윤리가 교감한다. 평화는 땅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아름다움)이 반사된 빛이고, 영광은 평화의 미적 표현이다. 영광 없는 평화는 지루하고 평화 없는 영광은 공허하다. 영광의 하나님은 일하고 가르치고 역사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숨결이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즐기고 논다. 이래서 영광(榮光)은 영적인 빛, 곧 영광(靈光)이다.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 성령 안에서 영화롭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vita christiana)을 영성(靈性)이라 한다. 영성은 칭의와 성화 그리고 영화의 국면, 곧 요즘 얘기하는 영성형성(spiritual formation)으로 드러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윤리적 삶만이 아니라 미적 삶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영을 품수(稟受)받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생각(교의학)과 행실(윤리) 이전에 자발적이고 직접적인 느낌과 직관(미학)으로부터 시작한다.

신앙의 과제는 교의학이나 윤리로 다 해명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는 미학을 통해 삶의 근본적인 요소들의 친밀한 유대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성화(聖化)는 윤리이고 영화(榮化)는 미학이다. “미학과 윤리학은 통(通)해야 해요.” 진공묘유(眞空妙有), “만상(萬象)이 공(空)으로 가는 길에 윤리학이 있고, 공(空)이 묘유(妙有)로 통하는 길에 미학이 있다.” 시인 이성복의 말이다. 만상이 평화로 가는 길에 윤리학이 있고, 평화가 영광으로 통하는 길에 미학이 있다. 한국 기독교는 언제까지 미학을 교회 안으로 드려놓지 못하고 겁내할 것인가?

미학은 윤리보다 낮고도 높다. 미학은 아랫것들과 진정한 공감이 생기는 지점으로 내려간다는 점에서 윤리보다 낮고, 얼굴만 보아도 좋은 아랫것들의 자유한 사랑과 사랑의 자유가 곧 위의 것이라는 점에서 윤리보다 높다.

불의에 대한 항거, 폭력에 대한 저항, 고통의 인내도 필요한 것이고 좋지만 하나님은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이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향유하기(누리기) 위해 이 세계를 변화시키려”(몰트만) 하기 때문이다.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변화시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시 120:6,7)의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윤리의 목적은 곧 미학인 바, 하나님을 향유하기 위함이고 영화롭게 되기 위함이다. 윤리는 ‘하나님의 향유’(frui Dei) 앞에서 잠잠히 스러진다. 하나님의 영광, 땅(인간세계)의 평화, 자연의 아름다움(시편 19)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완상(玩賞)하고 참되게 인식하는 여여(如如)한 창조의 세계다.

심광섭 목사 전 감신대 교수(조직신학/예술신학)예목원 연구원
심광섭 목사
전 감신대 교수(조직신학/예술신학)
예목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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