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옹진군 기독교 전래사
개신교가 옹진군에 들어온 것은 김대건 신부의 순교사건(1846. 9.16)보다 30년정도 앞선다고 할 수 있다. 1816년 서해안 일대 해도 작성과 탐사를 위해 파송되었던 영국해군 제독 바질홀(Basil Hall)대령과 머레이 맥스웰(Marray Maxwell)대령이 그해 9월1일 대청도에 상륙하여 성경을 나누어 주고간 사실이 있다. 이는 개신교가 최초 조선에 성경을 전해준 것이라 하겠다.
그 후 1832. 7.17, 칼 귀츨라프(Karl F.A. Gutzlaff)선교사가 옹진군에 와서 잠시 전도하고 남하하여 보령군 고대도 갔다가 선교교섭 실패로 홍콩으로 돌아갔다.
그 후 영국 장로교선교사가 중국에 왔다가 한국에 선교왔던 로버트 토마스(Robert J. Thomas)선교사가 1865년 백령도에 선교 차 와서 전도 한후에 그는 중국으로 되돌아갔다가 그 다음해인 1866년 다시 와서 평양 대동강 가에서 순교하였다. 옹진군이 국토 분단 이전에는 황해도 장연군, 벽성군과 경기도 부천군 등으로 나뉘어 있었음과 같이 개신교의 전파과정과 그 교세 분포역시 구 황해지역과 경기지역이 양상을 달리한다.
지난날 부천군에 속해있던 북도, 대부, 자월, 영흥, 덕적 등은 인천 내리교회와 서울 정동교회를 배경으로 해서 감리교회가 크게 전파되었는가하면 구 옹진군, 장연군 등지에 속해있던 백령도, 대청도, 송림등은 장연을 배경으로 한 장로교가 크게 전파되었다.
3. 옹진군에 세워진 교회
1) 옹진군내 휴전선 이북지역은 34개 감리교가 세워졌고 그 교회는 다음과같다.
장현리교회(황해도 옹진군 가천면 장현리 219), 어화도교회(옹진군 동남면 어화도리), 용호도교회(옹진군 동남면 용도도리), 전당리교회(옹진군 동남면 건당리), 마산교회(옹진군 마산면 온천리 262), 강령교회(옹진군 부민면 강령리), 천산리교회(옹진군 부민면 천상리 611), 봉도리교회(옹진군 부견 봉도리), 수동교회(옹진군 북면 삼산리), 본영교회(옹진군 북면 화산중리), 고랍동교회(옹진군 공서면 동문외리), 염불리교회(옹진군 서면 속오리), 소강교회(옹진군 서면 읍저리), 식여리교회(옹진군 용천면 기린도리 512), 전당리교회(동남면 전당리 264), 봉소리교회(북면 동오리 59-11), 도답동교회(서면 동문외리 28), 기린도교회(용천면 기린도리120), 도원리교회(마산면 도원리), 강령교회(부민면 강령리 152-1), 안락리교회(흥미면 안락리 298-4), 취야교회(교정면 국봉이 151-4), 이목교회(옹진읍 냉정리 148), 지남리교회(교정면 지남리 219), 죽천교회(옹진읍 단청리), 청단교회(무하면 영양리), 용수동교회(옹진읍 송정리 57), 청암교회(청룡면 영양리), 용매교회(청룡면 용매리 492), 동산리교회(청룡면 1068), 신촌교회(충화면 만송리 410), 팔학리교회(내성면 팔학리), 율동교회(가천면 삼괴리), 문개교회(내성면 오봉리 53)
2) 구세군교회는 2개 교회가 세워졌다.
괘암리교회(옹진군 흥미면 괘암리)와 석포리교회(옹진군 흥미면 석포리)이다. 그리고 장로교회는 23개 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백령도를 중심으로 장로교회는 다음호에 게제하기로 한다.
황기식 목사
총회역사 전문위원
아산동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