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한국교회 2세대, 다음 세대를 위한 내려놓음의 리더십 下
[기획특집] 한국교회 2세대, 다음 세대를 위한 내려놓음의 리더십 下
  • 김유수 기자
  • 승인 2020.01.0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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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인구 절벽과 고령화에 맞물려 심각한 저성장 국면을 맞이했다. 교회의 재정과 성도 수, 특히 청년 성도들이 매년 줄고 있다. 그러나 저성장보다 더 심각한 한국교회의 문제는 윤리·도덕적 측면에서 교회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다양한 형태의 교회 운동과 목회 모델들이 등장했지만,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회 리더인 목회자의 리더십이다. 그러나 현재 1세대 목회자들의 리더십은 다음세대에게 모델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1세대 목회자들은 대형교회 비리와 세습 이슈로 다음세대 목회자들에게 무력감과 박탈감을 안기고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가스펠투데이는 기획특집으로 미래세대를 위한 목회 리더십을 제시하기 위해 다음세대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는 살아있는 복음의 메시지를 찾고자 탐방한다. 특히 목회 현장에서 나온 경험과 비전을 들어보고 한국교회 목회 2세대가 가져야 할 목회 리더십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이에 가스펠투데이는 ‘내려놓음’의 리더십을 몸소 실천하며 은퇴 후 다음세대 목회자를 위한 사역과 선교적 삶에 앞장서고 있는 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 은퇴)를 찾아가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래목회 리더십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교회 초대 개척자들은 부흥을 이뤄냈지만, 한국교회를 대형교회와 작은 교회로 양극화시키고 말았다. 이러한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대형교회와 소형교회의 양극화가 아무리 심해도 목사들이 노조를 만들면 안된다. 교역자가 노조가 되고, 큰 교회가 회사가 되면 절대로 안 된다. 상생하기 위한 답은 간단하다. 큰 교회에서 주머니를 열고, 작은 교회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나는 목회하면서 10년간 작은 교회 157개와 같이 공동체를 만들었다. 활동에도 공동체 교회들의 성도 수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목회자들의 때깔은 바뀌었다. 작은교회 목사들이 큰 교회를 볼 때 벌레 씹듯 하다가 우리가 몇 년을 목사님, 사모님들과 찬양팀, 기도팀을 만들며 함께 활동하니 이내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위로받았다. 낯빛이 흙빛이던 한 목사님은 회복 받아 한 시찰에서 선교사로 파송받기도 했다.
작은교회와 대형교회가 각자의 입장에 서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못 하니 갈등이 깊어진다. 인류 역사에 양극화가 해결된 역사가 없다. 그저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큰 교회를 했다는 것이 자랑이 되면 안 된다. 무엇보다 모두가 예수의 영성으로 운동해야 하는데, 그것은 자기 포기다. 어렵겠지만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가난한 영성을 찾고 그것을 당연시해야 한다. 끝까지 예수의 영성을 잃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양극화 해소 방법이다.

다음 세대 미래목회를 위한 리더십은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나?

종래의 교육 세미나는 대부분 유명목사의 대형 세미나였다. 우리가 하는 교육 사역인 다윗의 물맷돌은 광야의 영성을 가진 묻혀있는 강사들을 찾는다. 그리고 핵심그룹을 만들어 강의하고 대화한다. 강의만으로 사람을 키울 수 있나? 예수님이 언제 교육으로 제자들을 키우셨나? 예수님은 대화하셨다. 플라톤과 논어의 교육도 다 대화였다.

우리는 소위 노가리 타임을 가져야 한다. 목회자가 설교를 써서 설교하는 구조를 얘기하는 담론 구조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모두가 대형교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이 구조를 용감하게 바꿔나갈 수 없는 것이다. 젊은 목사들에게 메시아, 그리스도, 크리스토스, 기독을 분별해보라고 하면 이것을 아는 놈들이 별로 없다. 목회자들이 생각을 안 한다. 그러니 교인들이 성경을 알 수 없다. 교인과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도의 강론이 없고, 그래서 메시지가 교인들에게 닿지 않는다.

나는 지금 설교를 칠판을 놓고 대화하며 한다. 더 발전하면 묻고 대답하고 한다. 시골에서 할머니 6명인 교회에서 사역했을 때, 가난해서 돼지 종자를 받아다가 방에서 키우는 분과 예배드렸다. 그분은 교회 나가면 위로받고 잘해주니 오신 것이지, 성경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었다. 그러나 알고 모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할머니들의 눈높이에서 성경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그런데 다들 강단 목회만 연구하고 있다. 여러 명 앞에서 설교한다고 정답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그룹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전도단체 외 신학교에서는 소그룹 운용법을 안 가르친다. 예수님은 교회 건물도 없이 12명과 목회 하셨는데 루저가 아니셨다. 그런데 지금은 대형교회 설교 시스템 안에서 모두가 루저가 되는 구조를 살아가고 있다.

교회가 지역과 사회로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사회적 목회’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지역사회에서의 교회의 역할과 사명은 무엇인가?

성경에 나오는 초기 기독교 교회에는 사회와 교회의 구분이 없었다. 한국교회 초기에도 교회와 사회는 간극이 없었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 단절된 것은 성장시대의 산물이다. 성장시대에는 교회들이 담을 쳤고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만 교인이 됐다. 교회는 안에 있는 교인들에게만 전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전도도 없어지고 세상을 위한 신학도 없어졌다. 지금은 세상 관공서와 학교도 담 허물기를 한다. 그런데 교회는 아직도 높은 담을 쌓아가고 있다. 안된다.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는 교회는 아무리 큰 교회라도 사라져 버린다.

나는 민중신학을 하며 훈련받는 평신도 신학을 목회에서 실천했다. 사역할 때 세상을 위한 다양한 사역을 계획하니 한 까다로운 권사님이 비본질적인 것에 낭비한다며 나를 쏘아붙였다. 나는 권사님께 무엇이 본질이고 비본질인지 보자고 했다. 결국 그분이 마음을 움직이시고 열심히 함께 해주셨다.

용감하게 여러 부서들을 만들며 다양하게 지원했다. 오토캠핑 선교회도 생겼고, 바다낚시 선교회도 생겼다. 그중 목공소인 백향목 선교회가 가장 잘 됐는데 그 수가 50명이 넘었다. 그중 3분의 1만 우리교회 교인이었고, 3분의 1은 다른 교회 교인, 3분의 1은 안 믿는 사람이었다. 안 믿는 사람이 늘어서 자기 팀이 교회에서 봉사하는 날이라고 주일에 세 시간 식사 당번을 하고 가기도 했다.

교회에 천 개의 소그룹이 있고 교역자가 복지관과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에 수백 명의 직원이 있지만, 금전 사고가 한 번도 안 났다. 재정은 투명성과 건강성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투명성만 강조한다. 하지만 첫째는 건강성이다. 우리는 가용자산의 51%를 바깥에 줬다. 선교사 지원과 학교 복지재단 장학금만 6억이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것 목회활동비와 경조비 정도였다. 일단 재정사고가 없다면 70%는 성공한 것이다.

돈에서 투명하니 다음은 인사문제다. 인사에 있어서 측근을 인사하면 안 된다. 나는 지금까지 돈 찔러주는 장로, 성도가 없었다. 우리 교회는 장로를 6년 임기제로 하고 복지, 중보기도, 재정, 법률 등에서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으로 공정하게 선출했다. 절대 측근을 두지 않았다. 집사람도 마찬가지다. 집사람은 12,000명 가르쳤는데 측근이 없다.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공격적으로 교회를 줄여보고 싶어서, 교회를 동서남북으로 가르는 것을 추진했는데 잘 안 돼서 할 수 없이 종교법인을 만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다 내려놓을 수 있었나?

결국 영성은 예수를 살아내는 것이다. 말씀을 삶으로 살아야지, 말로만 떡을 하면 오천 명이 굶어 죽는다. 말씀을 살아내는 운동을 해야 한다. 내가 해온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라는 말을 내가 못 보여주면 전부 허구가 된다. 그래서다 내려놨다.

나는 하나님 은혜로 큰 교회를 하고 조금 이름이 났는데, 대형교회 목사들이 세습으로 쌓아온 것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면서 나라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광성교회를 63세에 내려놨다. 청빙위원회에도 일절 안 들어갔다. 원로목사도 끊어버리고 교회에 나를 위한 작은 방 하나도 안 남겼다.

그런데 나라고 아쉬움이 없겠나. 나는 신학교에서 처음 나왔을 때 어려운 곳을 찾아 탄광촌 교육전도사로 갔다. 그때의 야성이 남아서 교인이 만천 명 되는 교회까지 왔다. 그런데 어제는 민통선 안 해마루광성교회에서 나까지 11명이 예배드렸다. 만 명을 내려놓고 열 명에게 설교하는 것이 한편으론 좋지만, 한편으론 쓸쓸하다. “내려놓고도 왜 섭섭한가? 시원하지!”라고 호기 있게 말해도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허전한 마음이 왜 없겠나.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길이다. 욕심은 끝없는 빅뱅이고 끝까지 창대해지는 것은 저주다.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 욕심을 접어야 한국교회에 앞날이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담고 있는 기도가 있다면 들려달라.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혁혁했던 한국교회 불꽃이 사그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꽃은 오늘도 떨기나무를 태우고 계신 줄 믿습니다. 혁혁했던 왕자 시절의 모세를 사용하지 아니하시고 80 나이의 노구를 떨기나무 불꽃으로 부르신 것처럼, 한국교회가 떨기나무처럼 보잘것없는 존재가 됐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한국교회를 들어 사용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광야의 영성’과 ‘내려놓음’이 있게 도와주시고 다시 한번 예수의 영성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세대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여 다른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이 바른 영성을 바통 터치 할 수 있도록 좋은 영성의 주자가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시며,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교회가 다시 한번 떨쳐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의 유일한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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