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만 5천 명의 소도시 조치원읍. 소도시만큼 조용한 이곳에서 29년 간 한 교회를 섬겨온 목회자가 12월 마지막 주에 사임한다. 원로목사나 은퇴목사를 하지 않고 후임 목회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새로운 길로 떠나는 이는 바로 조치원영락교회의 신동설 목사다.
약 29년이란 시간 동안 한 교회를, 250여 명의 성도를 섬겨왔음에도 어떠한 직책도 맡지 않고 스스로 떠나는 신 목사는 ‘세대교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후대 목회자들의 녹록치 않은 현실에, 선배 목회자로서 후임자가 마음 편히 사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의 주변에서는 ‘원로목사로서 은퇴하면 남은 여생, 대형교회 은퇴목사만큼은 아니더라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텐데...’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보낸다. 하지만 신동설 목사와 그의 사모는 이미 모든 것을 교회와 성도들에게 다 주고, 아니 오히려 빚진 자로 12월 마지막 주에 길을 떠난다. 이에 본지는 조치원영락교회로 찾아가 신동설 목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29년간 섬긴 교회에 모든 것 주고 떠나다
신동설 목사가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사역해 온 이력은 아래와 같다.
신 목사의 약력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29년 동안 교회 안팎에서 수많은 눈물과 땀을 흘리면 지금 이 순간까지 오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굳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인가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삶의 언저리에서 지나온 족적을 살펴보니, 감히 상상하지 못할 일들을 감당하며 살아왔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전적인 은혜였음을 깨닫고, 제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 인생인가를 매우 잘 알게 됐죠. 그래서 감사한 마음만 가지고 길을 떠날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는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자신보다 순수한 목회자가 많다고 언급했다. 일생을 수고하고 헌신했음에도 좋은 소리 못 듣고 은퇴하는 이들이 지금도 있다고. 신 목사는 그들의 억울한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고, 그들이 수고하고 헌신하면서 세운 교회에 더는 의의 분쟁으로 분열되고 상처 입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신 목사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상처 받지 않길 바라는 것이 나의 간절한 소원이며, 이를 위해 사역했던 교회를 아무런 대가 없이 떠날 수 있는 계기”라며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자식들을 위해 제 몸을 주고 떠나는 가시고기와 갑오징어, 해마처럼 저 역시도 다 주고 떠나기 위해 준비해왔고, 또 다 주었으며, 더 주겠노라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동설 목사는 지난 29년 동안 조치원영락교회 담임목사로, 목회자로 많은 사역을 해왔음에도, 교회를 위한 사임이라며 은퇴비는 절반만 받기로 결정했다. 또 지난 해 결의했던 2021년 본봉 제공에 대한 것도 취소했다.
신 목사는 또 교회 재정의 부담을 덜기 위해 그동안 타고 다녔던 차량을 팔고, 판 금액 1,350여 만 원을 교회에 헌납했다. 이 외에도 사택에 대한 십일조와 3년 후 드릴 헌금까지 합하면 약 1억 원의 헌금을 교회에 내고 가는 셈이다.
모든 것을 다 주고 가기 때문에 신 목사는 한 달 동안 살아야 하는 생활비는 약 67만원이 전부다. 그에게는 2020년 운영을 시작하기로 한 기독교 사회·문화 연구소의 임대료와 월세 등의 금전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신동설 목사는 주님의 교회를 위한 결정이기에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했다.
“비록 제 자신은 금전적으로 힘들게 됐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한 결정이자 내 욕심을 내려놓은 셈이니 마음은 가볍습니다. 걱정되는 부분이 많지만,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그저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 ‘제가 가야할 길을 위해 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그의 고백은 감사함과 함께 눈물이 되어 교회 모퉁이 바닥을 적셨다. 기자는 신 목사에게 하나님은 이런 사정을 다 아실텐데, 이렇게 다 내려놓지 않고 교회를 안 떠날 방법은 없었는지 질문했다.
신 목사는 ‘내려놓음’이라고 답한다. 그의 모든 사역들이 어떤 이에게는 스펙인 듯, 자랑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자랑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신 목사는 자신의 모든 사역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간 동안에 맡을 수 있던 자리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동설 목사는 “29년 간 사역했던 교회를 내려놓는 이유도, 그 동안 제 자신의 외부 사역들로 인해 교우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듯해 결정한 일”이라며 “주변에서는 외부 사역을 내려놓고 교회 목회를 하라고 조언하지만, 외부 사역들 역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사역이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신 목사는 자신이 사역했던 교회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가 29년 동안 사역했던 조치원영락교회 예배당은 구석구석까지 그의 손길로 지어진 곳이다. 그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교회인데도, 오히려 소중한 곳이기에 내려놓고 떠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신 목사는 “조치원영락교회는 제가 몹시 사랑하는 교회이다. 때문에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회복되고, 부흥해서 주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존귀한 교회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는 지금까지의 사역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사역들은 본인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던 사명자의 삶이었다며, 그렇기에지금처럼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고백한다.
“목회자라는 직분은 제가 이루고자 했던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역의 자리들 역시 제가 맡으려고 하지 않았고, 맡은 이후에도 하나님이 내려놓으라는 징조, 혹은 사인이 있을 때 내려놨던 직책들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그저 내려가라는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며, 이것이 사명자의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임을 믿고 지금까지 달려왔기에 이렇게 내려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동설 목사의 선택은 오로지 하나님의 교회를 끝까지 사랑하고, 목사란 직분의 올바른 사명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그의 고백이 성직자의 순명인 것이다.
신 목사와의 인터뷰를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 몸을 실으며 기자는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길을 떠나는 그를 향해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까’라는 질문을 떠올린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신 목사의 남은 삶은 가난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 곳으로 스스로 발걸음을 옮기는 신 목사지만, 그의 길 뒤로는 신 목사와 같은 선택을 하며 동행하는 동역자들이 생길 것이라 믿는다. 그저 다른 이들이 신동설 목사의 선택에 기도로 응원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