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평] 무례와 배려 사이에 흐르는 강
[뉴스비평] 무례와 배려 사이에 흐르는 강
  • 안기석 장로
  • 승인 2019.11.21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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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나우 캡처

오늘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승객들은 모두 몸이 부딪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침묵 모드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덕분이지요. 지하철의 현실은 불편해도 스마트폰에서는 드라마와 게임과 채팅의 가상세계로 몰입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디선가 중년의 남성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몰라도 “예수님 믿어야 구원받고 천국 갑니다”는 취지의 말을 반복해서 했습니다. 마치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하기에 별로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지하철 안이 워낙 조용해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갑자기 한 청년이 “그만 하세요. 듣기 싫어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중년의 남성이 전도의 대상으로 삼은 청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청년의 거부에도 멈추지 않고 중년의 남성은 ‘예수님 믿어라’고 조곤조곤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누가 신고했는지 지하철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지금 지하철 내에서 종교 활동하시는 분은 즉시 하차하셔서 종교시설 내에서 활동하시기 바랍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 기억났습니다. 우리 집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노방전도 하시는 집사님이 들렀습니다. 어머니는 그분이 올 때마다 식사 대접을 정성스럽게 했습니다. 그분은 조그만 앰프를 매달은 자전거를 타고 울산의 재래시장에 나가서 빈터에 자리를 잡고는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같은 애잔한 동요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모이면 신나는 찬송가를 들러주고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시장의 왁자지껄함 속에 스며들던 그분의 하모니카 소리와 ‘희망의 메시지’와 경청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대가 달라지긴 했지만 서울 지하철의 중년 남성과 울산 시장의 노방전도자 사이에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따지고 보면 지하철의 중년 남성은 예전에 지하철의 객차 사이를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다니던 사람들에 비하면 점잖고 교양도 있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은 전도의 대상자에게는 ‘쾅쾅쾅 문 열어’라는 듯한 무례한 태도로 비쳐졌을 것입니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등 SNS 등에서도 자신의 일방적인 생각과 느낌을 강요하는 듯한 무례한 메시지를 올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견디지 못한 참여자들은 스스로 떠나는 수밖에 없지요. 시장의 노방전도자는 시장의 소음 속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배려의 기술’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얼마전 신문의 1면을 장식했던 축구선수 손흥민의 ‘기도하는 손’을 떠올려 봅니다. 한국인으로서 유럽 통산 최다골을 기록하는 ‘승리의 순간’에도 자신의 기쁨은 누르고 경기하다가 다친 선수의 ‘고통의 순간’을 기억하며 쾌유를 기원하는 모습. 무례와 배려의 사이에는 나의 주장이나 느낌이 아니라 타인의 침묵과 표정의 의미를 감지할 수 있어야 건널 수 있는 큰 강이 흐르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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